정신과 진료 한 번 받았을 뿐인데… 무서운 'F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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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복잡해지고 스트레스가 늘면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수는 2004년 140만 명에서 지난해 160만 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단지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보험에서 배제되는 'F코드'=국제질병분류 기호에 따르면 정신과 진료를 받았을 경우 F로 시작하는 병명이 진단서에 기록된다. 보험회사는 진단서상의 F코드를 보험가입 제한 대상으로 삼고 있다. 상법상 '심신미약자와 심신박약자의 생명보험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규정이 그 근거다.
생명보험만이 아니다. 서울 월계동에 사는 박모(34.회사원)씨는 올해 초 집을 대상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려다 거절당했다. 2년 전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경력 때문이다.
그는 "우울증과 화재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D보험사 관계자는 "정신질환자들은 충동적이고 우발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사고 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들은 정상 상태에서 가입한 고객이 나중에 정신질환을 앓아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군대에서 정신분열증이 생긴 최모(24.경기도 성남시 정자동)씨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매달 15만원씩 보험료를 납부했는데 제대 뒤 보험금 지급을 받지 못했다"며 "사회생활이 어려운 것은 외상으로 인한 장애와 다르지 않은데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하소연했다.
◆운전면허.취업에도 어려움=실생활에서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정신질환자의 운전면허 취득을 제한하고 있다. 2002년에는 경찰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F코드가 있는 진료기록을 넘겨받아 운전면허 수시적성검사 자료로 이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찰은 지금도 근로복지공단과 보험개발원 등 정신질환 병력을 파악하고 있는 27개 기관에서 기록을 넘겨받아 참고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3년 "안전운전에 지장이 없는 정신장애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증상의 경중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권고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취업에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높다. 진료기록이 유출되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랑샘터 소아정신과 김태훈 원장은 "병원을 찾는 환자 열 명 중 한 명꼴로 F코드가 남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비보험 처리를 요청한다"고 전했다.
인터넷의 관련 카페 게시판에는 실제로 취업에 실패했다는 호소문이 올라오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한창환 보험이사는 "우울증 같은 가벼운 정신질환은 치료만 받으면 충분히 건강하게 살면서 일할 수 있는데도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차별로 정신과 치료를 멀리하게 하는 역효과를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정신질환=정신 기능에 이상이 있는 상태를 총칭한다. 스트레스.우울증.조증.불안 등으로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태를 뜻한다. 정신장애는 정신지체.발달장애.정신분열증을 비롯한 중증 질환이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뒤 '정신행동장애'로 판정되면 F코드로 분류된다. F 뒤에 숫자를 붙여 병명을 구별하는데 일례로 'F32'는 우울증이다. ▶박유미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yum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