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에 대하여 글을 쓰고 또 무대 위에서 사랑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랑은 인생을 논하는 무수한 작가와 예술가들에게 주요 테마이다. 그러나 인류의 삶 속에서 수천년 동안 표현되어 온 사랑의 정의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허전하고 여전히 섭섭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비틀즈는 사랑을 정의하여 "All You Need Is Love" 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그는 욕망과 욕구 속에서 인생을 불태웠지만 사랑을 성취하지 못하였다. 플라톤은 사랑을 말하여 ‘심각한 정신병’이라고 정의 했다. 그로부터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심각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은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가장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대답이다’ 라고 정의하였다. 이처럼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인생의 목적이며 삶의 필요였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자기가 추구한 사랑을 얻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어갔다.
성경은 사랑을 정의하여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기록하였다. 이보다 간결하고 완벽한 정의는 없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는 성경이 요구하는 많은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알기 전까지는 사랑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자기만족을 위해 끊임없이 추구해야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랑이 갖고 있는 권위와 능력과 영광에 이르는 신성과 영생에 이르는 생명의 지혜를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사랑은 인간이 추구할 목적의 가치가 아니라 공존해야할 존재적 가치임을 증거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딜레마는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 가운데 내재된 사랑을 인간의 삶 가운데 실현할 것인가에 있다.
예수님은 재자들에게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설명하신 것으로, 보혜사 성령을 소개하실 때 하신 말씀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예수 안에 계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할 수 있는 것일까? 주님은 그 길을 말씀하여 우리에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요14:15) 하시며,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하셨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말한다. 또 많은 교회들이 사랑의 사도처럼 세상에 군림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들의 사랑에 많은 의심을 갖고 있을까? 이는 이들의 삶이 그들이 보기에 의롭지 못함을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이들이 말하는 사랑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건함을 볼 수 없고 또 이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실천한 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정의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실현되는 길이며 또한 우리가 성경이 요구하는 사랑의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