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누가 기독교 교리를 결정하려 하는가?

이요나 2010. 10. 2. 17:06

누가 기독교의 교리를 결정하려 하는가?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님께

김수현 작가님 이번 주간은 매스컴에 오르내린 이슈들로 많이 힘드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각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내 주장에 동의하도록 이끌어낼 수는 없지만 작가의 인격에 손상을 받을 만한 비난을 받게 되면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인터넷 다음 미디어에 올라온 기사를 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실려 있더군요.

 김수현 ‘인생은 아름다워’ 동성애 비난광고에 “웃음도 안 나와” 반응

김수현 작가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전혀 내 마음 힘들지 않아요. 근데 메이저 신문인데도 돈만 내면 말 안 되는 광고도 받아 주나 봐요. 참나…."라고 광고에 대해 평했다.

덧붙여 "이번 주 경수(이상우)·태섭(송창의)의 제자리걸음에 유독 불만이 많으네요. 하하하. 난들 왜 제대로 보여 주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일단 경기하는 시청자 무서워 방송사 경기하고 제작사 경기하고, 나는 무서운 거는 없지만 써냈다가 잘리는 굴욕을 당하느니 그만두자였어요. 진짜 이성애 커플 러브신보다 더 아름답게 보여줄 수 있는데"라 밝히기도 했다(출처: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100929172111852)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한국 드라마계를 장악하고 있는 칠십의 여걸임에도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연약한 그릇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수현 작가의 명성

 

어떤 흥미 때문에 “인생은 아름다워”를 시청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김수현 작가님께서 주말마다 전개하시는 내용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성애 성향 속에서 번민과 연민과 애증의 세월 속에서 한편으로는 남들이 느낄 수 없는 애틋한 사랑도 가졌던 사람이지만 지금 작가님께서 그려 내시고 있는 동성애자들의 사랑의 이야기는 사실 현실감을 상실하였습니다.

 

드라마의 귀재, 언어의 달인, 국민작가라는 칭송을 받으며, 시청자들을 미료 시키신 김수현 작가님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국보급임에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향후 100년 동안 그 보다 더 현실적이고 감동적인 인생들의 이야기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만큼 김수현 작가님은 우리 국민들 고달픈 마음을 후련케 하신 분 중에 하나입니다.

 

김수현 작가께서 이처럼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작가님의 드라마 가운데로 사람을 집중케 한 것은 작가님의 드라마가 각 사람들의 인생을 대변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쏟아내고 가슴에 품은 말들을 거침없이 속 시원하게 쏟아 박장대소하며 마음을 풀어 놓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금번 SBS 주말 드라마 “인생의 아름다워”는 한국인 밥상과 서양식탁을 섞어 놓은 것 같고 한복에 양장을 곁들여 입은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이런 감정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작가님께서는 이 작품을 쓰시면서 동성애자들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또 많은 동성애자들과의 교제와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내면적 성향과 성격적 특성, 그리고 생활습관들을 연구하셨을 것이며, 칠십 경륜의 인생철학과 풍부한 사고력, 그리고 심연의 통찰력을 통해 밤과 낮을 초월하는 해산의 고통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인생은 아름다워의 문제점

 

그러나 나는 ‘인아’를 볼 때마다 매회 넘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앞뒤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작가님의 고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냥 웃고 넘어가자는 숨은 마음도 있겠습니다만 자신의 연륜으로도 충실하게 그려낼 수 없는 표현 장애의 고통이 신경질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나 역시 매주 설교를 하면서도 ‘참 잘했어!’ 하고 자찬할 때보다 스스로 부끄러워 고꾸라질 때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실패의 존재감으로 해서 사람들은 더 나은 인생을 창출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의 애정행각을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보여 지는 수준으로 그려 내실 수 있는 것도 김수현 작가님만이 가진 탁월한 능력이 아닌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주말 TV 앞에만 서면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아야 한다는 순수한 철학을 가진 나에게 외국에서 갓 시집 온 며느리가 끓여낸 된장찌개를 먹어야 하는 니글거림은 무슨 까닭일까요? 혹시 내가 목사라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입장이라서, 못된 거부감이 솟아 오른 것일까요? 아니면 과거의 아픔들이 지옥문을 열고 쏟아져 나온 악마들이 하늘의 아들로 살아가고자 하는 순수한 내 마음을 훼방하는 것일까요?

 

어쨌든 지금은 영적전쟁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며 중보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니글거림을 참아야 하겠지만 이것은 비단 목사인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작가님이 동성애자의 내면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 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라도 보편적 인생의 경륜들은 공감할 수 있는 묵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성애의 세계는 마치 일곱색 무지개와 같아서 순수함으로 보여질 때에는 하얀 빛깔의 천사와 같아도, 그 마음에 욕정이 드리워지면 고운 일곱 색깔 속에서 독한 진액들이 쏟아내어 시커먼 도화지가 됩니다.

 

동성애자들이 자기들의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승화하든지, 어떻게 말하든지 그들에게는 진실성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습니다. 거짓과 위선의 영들이 그 마음을 송두리째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카멜레온보다 더 급변하고 요란스럽습니다. 솔직히 말하여 동성애자들에게는 작가님이 그려 내려는 순수한 사랑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SEX가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모든 삶이 오직 굶주린 성적 욕구로 귀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의미로 설명을 한다고 해도 태섭이와 경수에게는 경수의 아내와 그 딸이 갖고 있는 태초의 사랑은 내재하지 않습니다. 태초로부터 동성 간의 욕정은 물론 음행이나 간음 같은 더러운 것들은 결코 사랑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의 성생활 속에 허락된 남녀의 사랑이란 오직 부부간에 속한 잠긴 우물입니다.

 

그러므로 작가님께서 동성애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려 하려면 그들의 내면에 있는 감성을 먼저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 마음 자체가 소설과 같아서 남의 소설을 모방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고명하신 김수현 작가님이라도 그들의 내면을 현실로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 인생은 아름다워는 작가의 실패

 

물론 드라마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만 만약 드라마가 현실성을 상실한채, 환상적이고 가성적인 마음의 상태만을 이끌어낸다면 그 작품은 현실적 공감이 상실되어 보는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여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고명하신 김수현 작가님께서 지금까지 그려내신 작품들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희비애락을 리얼하고 또 순수하게 회자하여 기막힌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환상적 소망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나의 이야기, 내 어머니의 아픔, 내 아버지의 고뇌를 보며 잘못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진솔한 인생들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런데 김수현 작가님께서는 ‘인생은 아름다워’에 쏟아 부으신 찬란한 명성과 칠십의 경륜은 하루아침에 흙탕물로 차 버리고 말았습니다.

 

말이 여기까지 나왔으니 잠시 이해를 위해 드라마 속의 내용을 거론할까 합니다.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 때문에 아내와 어린 딸을 버리고 동성과의 침대 생활을 부각시키려는 어처구니없는 구도도 그렇고, 3대가 모여 사는 가부장적인 드라마 구도 속에 아들의 동성애적 성향을 정당화하려는 태섭이 부모의 대화들은 이 땅의 부모들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경수의 헤어진 아내와 어린 딸이 찾아 온 것을 놓고 투덜거리는 태섭이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첩 생활을 하는 딸을 둔 어미가 본처를 만나는 사위를 못마땅해 여기는 구도와도 같습니다. 시대가 좋아서 그렇지 옛날 같으면 사대문 밖에 끌려 나가 돌 맞아 죽었을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도를 작가님께서 한국인의 밥상에 올려놓으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의 회갑 잔치상에 보신탕 냄비를 올려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차라리 가난하여 김칫국에 밥을 말아 먹든지, 라면에 찬밥 한 덩이가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말해 아들이 동성애 커플로 살기로 작정을 하였더라도, 설혹 그것을 볼 수밖에 없는 부모라해도 부모는 그 자식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져 술독에 빠지거나 소망을 잃은 어미가 되어 자살할 약을 머리맡에 두고 사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아마 김수현 작가의 아들이 그러했다면 작가님의 성정으로는 벌써 인생을 깨박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김수현 작가님께서 열정적 사명감을 품고 쓰신 “인생은 아름다워”는 고명하신 김수현 작가의 수치의 명작이 될 것입니다.

 

- 동성애는 종교적 교리

 

김수현 작가님께서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인류는 종교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종교는 내세를 다루고 있으며, 내세의 복은 현세를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귀결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는 생명을 중히 여기고, 의로운 삶을 구현하기 위해 마음을 다루며, 삶의 도덕과 윤리를 중요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종교의 가르침 속에서 성적 모럴은 금기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대선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정책 대결보다 후보자의 도덕성을 귀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 선거 때마다 낙태와 동성애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중히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는 생명이요, 하나는 도덕과 윤리 곧 종교적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 문제는 성경에 기록된 기독교 경전의 교리 중 하나입니다. 수천 년에 걸쳐 종교적 논쟁을 통해서도 바꿀 수 없는 진리에 속한 기독교 교리입니다. 더구나 종교적 교리는 신적 능력이 있어 그 누구라도 이를 바꾸려 하면 신과의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종교적 교리는 인간인 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적 교리는 정치나 법도 범할 수 없는 신적 영역입니다.

 

그런데 김수현 작가님께서 감히 여기에 손을 대신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기독교를 농락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민의 4/1이나 되는 기독교인들이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 향수를 느끼고 위로를 받으며 인생의 시름을 나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놓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악한 생각의 역사요 이는 더러운 영들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혹시 우리 기독교인들이 김수현 작가를 비방하며 자녀들에게 어떤 피해를 준 일이 었었나요? 교회로 해서 집안이 멸족을 당한 역사가 있었던가요? 아니 오히려 김수현 작가님 가계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친족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친족들의 기도 영역 안에서 김수현 작가님의 영혼은 빎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이 남지 않은 김수현 작가께서 작가의 양심을 벗어버리고 성경과 싸우기로 작정을 하신 까닭은 무엇인가요?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신들의 세상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 인생의 이치인데 얼마나 더 청청한 세월을 보세겠다고 감히 신의 영역에 손을 대신 것입니까?

 

창조자 신이 금하신 동성애를 한 치의 혀로 쐐기를 박고자 하신 의도는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만약 작가님께서 그만한 가슴에 쌓일 원한을 기독교인에게 받으셨다면 우리 한국의 성도 일천 만이 일어나서 사죄라도 할 것입니다.

 

또한 동성애의 문제는 비단 기독교적인 교리만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과 죄의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범종교적 문제라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어찌하여 신들과 전쟁을 자처 하십니까? 인류가 존재한 이래 신들과 싸워서 이긴 사람이 있었으며 또 하늘의 신 곧 하나님을 능멸하고도 살아남은 영혼이 있었습니까?

어찌하여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를 보고 기뻐하던 일천 만 기독교인들 가슴에 못을 박으려 하십니까? 못 박힘은 예수 한 분으로 족합니다. 우리는 죄인을 용서하고 화합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할 신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수호하려는 기독교인들이 분노하며 결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인권은 인간회복

 

혹시 김수현 작가님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돕겠다는 취지였을지 모르지만 기독교가 동성애자들을 핍박하는 일은 없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온전한 변화를 위해 애통하며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동성애자들을 정죄하는 곳이 아니라 죄성에 빠진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고 성경적 진리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운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주말 드라마는 하나님의 성도들을 모욕하고 거룩한 신전에 우상의 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고, 아직 거듭나지 못한 연약한 심령들을 더럽히는 크나큰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한 사람의 경륜을 갖춘 작가의 선한 양심으로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지으셔야 할 것입니다.

 

부족은 소생의 인생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낮이 열두 시간이요 밤이 열두 시간이라도 밤이 낮을 침범하지 못하고, 밤이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밤의 은밀한 일들이 인간 생활 속에서 정당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김수현 작가께서 이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범종교적인 이슈가 될 것입니다. 동성애는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 가운데서 정당화 하고 문화생활로 용납할 수 없는 도덕적 순결을 해하는 죄성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단호하게 지키려는 것은 성경적 교리가 무너지면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신념과 거룩한 정신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하버드 대학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작가 마이클은 그 책 마지막 부분에서 낙태와 동성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정의란 항상 공평적 속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둠의 세력은 결코 정의를 침범하지 못하는 진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정치와 법이라도 규정할 수 없는 인간의 영혼에 속한 종교적 문제를 한낱 드라마로 개혁을 일으키실 작정이라면 지금이라도 멈추십시오. 누가 뭐라고 말해도 신은 살아 있고 만군의 통치자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부디 일천만 성도의 한국교회를 적으로 돌리지 마십시요. 교회는 순교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부디 더 늦기 전에 양심의 소리를 따라 작가님의 인생의 마지막 열매를 아름답게 거두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010년 10월 3일

(사)한국성교육삼담자협회 'HOLY LIFE' 대표 이요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