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선한 목자

이요나 2020. 1. 3. 17:05


 

선한 목자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성경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비유는 양과 목자이다. 액자에 그러면 양과 목자의 평화로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양과 목자로 묘사하고 있다.

 

더욱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양과 목자의 이야기는 조상으로부터 그들의 삶과 직결 된 생활 속의 일이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도 그 당시 중동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양은 가족의 생명을 이어주는 중요한 가축이다.

 

특별히 모세의 율법에 명시된 유월절은 유대인의 삼대 명절 중 가장 큰 명절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의 대속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양과 목자의 이야기는 그들의 신앙의 토대이며 택한 민족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근거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6절에는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고 기록되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다름 아닌 양과 목자로 예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하신 것인데도 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예수께 말씀을 들을 때 도대체 이 양반이 우리에게 무슨 이솝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하고 비웃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양과 목자의 이야기는 우화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바로 이스라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도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두 가지로 전개된다. 먼저 주님은 양의 목자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양의 우리와 문지기를 언급하시며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 곧 양과 목자의 관계를 설명하셨다. 양은 자생능력이 없어 목자 없이는 생존하지 못한다. 그래서 좋은 꼴과 물을 먹이지 못하면 양들이 우리를 파헤쳐 엉망이 된다. 오늘날 교회 안에 분열이 나는 이유가 모두 이러한 원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에는 공동체 안에 공동 양 우리가 있어 각 주인들이 양들을 공동 우리에 넣어두면 문지가가 관리한다. 문지기는 주인의 얼굴을 알므로 아침에 문을 열어 주면 주인은 양들의 이름을 불러내어 양들을 앞서 나가 초장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문지기는 예언자, 세례요한과 같이 메스야를 증거하던 선지자들이다.

 

두번째로 주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 말씀하셨다. 이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초장의 임시 우리를 뜻한다. 이곳은 돌로 담을 두르고 한 쪽에 입구를 두었다. 밤이되어 미치 마을로 들어가지 못한 목자는 양들을 이곳에 넣고 입구 쪽에 가로 누워서 문노릇하여 이리와 같은 짐승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킨다. 여기서 주님은 양의 생명이 목자로부터 말미암고 또 보장된다는 원리를 설명하신 것으로 예수님은 선한 목자의 길을 설명하셨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가? 그렇다면 세간에 회자가 되고 있는 대형교회의 세습 문제라던가 교회재정 문제와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7:21)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오늘 삯군과 참 목자의 메시지는 우리 교회사에 매우 중요한 말씀이다.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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