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크리스챤의 딜레마(롬7:24)

이요나 2020. 10. 31. 15:31

크리스챤의 딜레마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6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인이란 칭의를 받고도 아직 죄의 문제에 얽매어 다시 율법으로 정죄를 받아야 할 사람처럼 살고 있다. 이것은 마치 이미 우리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육체는 시대를 역류하여 율법의 시대에 사는 것과 같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3가지의 질문을 하고 있다. 그는 먼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죄냐(7) 질문을 던지고 그럴 수 없다답하였다. 이는 율법을 죄악시한 크리스천들을 향한 반어법이다. 두번째로 바울은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물었고 그럴 수 없다 답하였다. 이것은 율법의 역할에 대한 변증으로 율법의 신성함을 증거한 것이다. 끝으로 그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질문하였다.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율법의 정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크리스천들의 고뇌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이다.

 

바울은 서두에서 형제들아 내가 법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물었다. 이것은 반어법으로서 은혜 속에 있으며 아직도 율법에 얽매어 살고 있는 크리스천을 향한 엄한 경계의 메시지이다.

 

솔직히 말해 나 역시 오래 세울 이와 같은 생활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과정들은 믿음의 경륜을 이루는 성화의 과정이라고는 말하지만, 사실 이는 크리스천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이 아니라 성경의 무지에서 온 것이라 생각할 때 그 책임은 교회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적응된 생활환경에 충실하고자 한다. 이러한 현상은 마음과 몸이 생활방법 속에 완전히 물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으로의 도전하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러한 정신이 없다면 인간은 계속 퇴보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독 종교적인 면에서는 사람들은 고유의 틀을 벗으려 하지 않는다.

 

두번째로 바울은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물으며, 그럴 수 없다하였. 사실 이 질문은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질문이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속성을 가진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선한 율법이 범죄한 우리를 사망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선과 악 사이에서 고통받은 인간의 고뇌를 말하여 자신이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백하며 다시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 고백하였다. 죄에 대하여 절대 무능한 인간의 고뇌이다. (예수를 믿고도 10년 동안 게이클럽을 운영한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바울은 육체와 죄의 속성을 고백하여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서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21-23)고백하였다. 이는 비단 바울의 고백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 땅의 모든 성도의 고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된 자의 고백이 이쯤되면 그의 가르침을 받는 우리들은 유구무언이다. 우리는 죄인이로소이다 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이 세상에 이 고백을 뛰어 넘을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닌 천사일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늘을 향하여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 통곡하였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8장에서 만나게 된다. (이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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