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안식처
(왕하 4: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열왕기하 서두에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의 영적승계가 전개되었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와 함께 길갈에서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 건너편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그들이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을 걸을 때,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서 서로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시 하늘에서 떨어진 겉옷으로 요단강을 가르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부르짖었다. 오늘날 우리도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물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까지 여전히 똑같다. 그는 항상 거기에 계신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교회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일을 한 지도자들이 승천한 후 영적승계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멀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생활 방식 자체가 그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게 한 것이다. 우리는 문명의 편리함과 문화를 즐기는 것이 익숙해져서 영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엘리사는 엘리야와 달리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다. 엘리야는 가죽띠를 띠고 털이 많은 사람으로 말투가 거칠고 사교적이지 않은 개인주의자였다. 그에 비하여 엘리사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기 의견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우리가 이 두 선지자의 성품과 삶을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으로 구약은 복음의 모형인 것을 알 수 있다.
수넴은 엘리사가 거주하는 갈멜산과 이스라엘 왕의 별장의 중간 지점의 마을로 두 안식처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수넴여인은 우리에게 왕의 부귀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영적 지도자를 따를 것인가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본문에서 ‘귀한 여인’이란 사회적으로 유력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경제적으로 부유한 여인이라는 말이다. 이런 여인 같으면 영적인 것보다는 부귀영화에 관심이 있었을 터인데, 그녀는 엘리사가 지나갈 때마다 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며, 남편에게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줄을 내가 아노니 그를 위하여 담 위에 작은 방을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촛대를 두어 그가 지날 때마다 머물게 합시다” 제안하였다.
엘리사는 그녀의 주도면밀한 접대에 감탄하여 왕이나 사령관에게 무엇을 청해 줄 것이냐 물었다. 그때 그녀는 나는 백성 중에 거주하니 특별한 대우 원치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때 종 게하시가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남편은 늙었다고 귀뜸해 주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불러 명년 이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을 것이라고 말하니, 여인은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십시오 말하였다. 수넴여인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믿었지만 그녀는 현실주의자였다. (그후 그녀는 아들을 낳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급사하였다.)
이때 수넴여인은 죽은 아이를 엘리사의 침대에 눕히고 갈멜산으로 달려갔다. 이를 멀리서 보고 있던 엘리사가 너와 남편과 아이가 평안하냐 물으니 여인은 평안하다 말하였으나, 달려와서는 엘리사의 발을 껴안았다. 이를 본 게하시가 제지하려 할 때 엘리사는“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수넴여인의 커다란 고통을 엘리사에게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매우 좋아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도의 일을 모두 나에게 알게 하신다면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리 알게 한다면 나는 하나님보다 앞서 무엇을 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나님이 될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다.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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