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대신 화관을
(마 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5장에서 마태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고 시작하여 주께서 가르치신 산상수훈을 7장까지 기록하였다. 흥미롭게도 8장은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후의 일들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친히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자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말했다. 이 사람은 문둥병자임에도 주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답하셨다. 당시 문둥병은 치료 불가능한 저주의 병이라고 인식되어 문둥병자는 사회에서 추방당해 길을 걸을 때도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다.
이후 예수님은 본 동네라 불리는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때 로마의 백부장이 나와서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합니다”(6) 말하였다. 로마 군대 지도자가 목수의 아들 예수를 가리켜 “주여” 호칭한 것이다. 이는 그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때 주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8:7) 말씀하셨는데,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8) 말하며 “나도 남의 수하에 있어 내 군사에게 오라 가라 하면 그리하듯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말씀만 하셔도 네 종이 낳겠습니다“ 말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다.
예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10) 하시며 다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고하셨다. 우리는 주께서 하신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알고 있다.
세 번째 은혜자는 베드로의 장모이다. 마태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 들더라”(14-15) 기록하였다. 당시는 여인을 무시하던 시대인데 주님은 병든 여인의 손을 만져 고치신 것이다.
마태는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16-17) 증거하였다. 이는 이사야서 53장 5절의 말씀의 성취를 증거한 것이다.
예수님보다 700여 년 전의 이사야는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 라고 증거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언급한 것이다.
또한 그는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61:3) 증거하였다. 이로서 예수를 믿는 우리는 죄의 저주로 오는 재를 벗고 희락의 기쁨 속에서 주를 찬송하여 살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희락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찬송의 옷을 입고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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