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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딛1:4)같은 믿음을 가진 참 아들

이요나 2005. 7. 7. 11:54
(딛1:4)같은 믿음을 가진 참 아들

(딛1:4)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에 네게 있을지어다

자, 이제 디도서입니다.  바울의 목회서신을 공부하면서 목회서신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채 목회일선에 뛰어 들었던 내가 참으로 민망하기만 합니다. 예전엔 겁도 없이 이것저것 아는 척 하며 달려나갔었습니다만 날이 갈수록 운신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식이 철이 들어 효도를 하려고 하였더니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은 심정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더이상 실수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남은 세월을 충실할까 합니다.

본 서신은 바울이 오랜 세월 자신을 따라 선교일선에서 헌신하던 사랑하는 제자 디도에게 쓴 편지입니다. 디도는 그에 대한 개인적인 내용이 크게 기록된 것은 없지만 사도행전을 비롯한 바울 서신 여러곳에 그의 이름과 사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디도의 이름은 갈라디아 2장1절에 처음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사도로 부름받은 지 17년 되던해 안디옥 교회에 발생된 이방인의 할례에 관한 문제를 확정 짓기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공회에 참석 하였습니다(갈2:1, 행15 참조).   

그 당시는 많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도 예수를 영접하여 교회 안에서 교세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중히 여기고 할례를 교회안에 실행시키려 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갈2:3)라고 증언하여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의 할례에 대한 갈등이 어떠하였는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인 디도가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이방인의 할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과  또한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돕기 위한 헌금 독려를 위한 바울의 편지를 갖고 고린도교회를 방문(고후2:4, 7:8)했던 것으로 보아  디도는 의협심이 강하고 조리 있고 설득력 있는 사람이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8장22절과 12장18절에는 헌금 모금을 위해 디도 외에 하나님의 교회에서 칭찬받는 형제가 동행하였다 기록되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동행한 형제를 누가로 보고 있으며 디도는 누가의 형제 또는 친척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서두에서  다른 서신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이라 말하여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보다 더 강한 어조로 삶에서 나타나야할 성도들의  신앙의 인격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성도의 세가지 인격
바울은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자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의 삶 속에  나타날 세가지 인격 즉  믿음과 경건 즉 성도의 신앙의 위엄 속에 역사하는 진리의 지식에 관한 것과 주의 강림때에  펼쳐질 영원한 생명 속의 하나님 나라에게 대한 소망에 관한 약속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란 교회에 얼마나 봉사를 하고 있으며 얼마나 헌금을 많이 내고 있느냐와 같은 외식적 행위로 믿음을 측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경건이란 삶 속에 나타난 성도의 위엄을 말한 것으로 오직 진리의 지식을 깨닫아 그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 미치는 성령의 내성적 역량입니다. 교회 오래 출석하였다고 하여 또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하여 경건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말한 성도들의 세번째 인격은 영생에 관한 소망입니다. 이것은 종말에 관한 지식으로 성도의 궁극적인 신앙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렀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의 목표가 천국에 들어 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 속에 펼쳐지는 그리스도의 나라는 창세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약속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상한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3절에서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에 관한 약속이 모두 전도라는 매개체로 전해졌고 이 전도의 권세를 사도에게 주셨음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 말씀은 우리가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결국 믿음과 경건에 이르는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약속은 오직 사도를 통해 성령으로 전달된  모든 말씀 즉 성경에 기록된 말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등한 시하면 그는 믿음과 경건함과 영생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는 말입니다.

  *같은 믿음의 참아들
바울은 4절에서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에 네게 있을지어다"하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롭게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라는 긴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예수'는 결국 같은 호칭이라도 그 사용된 순위에 따라 그 전달의 효과는 크게 달라 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 할 때 구속자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라 하면 곧 오실 메시야이신 구원자 예수님으로 전자는 이미 지나간 세월 속에 속하고 후자는 장차에 이를 그리스도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디도를 향해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이라 하였습니다. 바울이 제자들을 가리켜 아들이라 한 사람은 디모데와  디도와 오네시모(몬1:10)  세 사람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대를 이어갈 아들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 보내는 편지에서 디도를 가리켜 '형제'(고후2:13) 칭하였고 또 '일과 수고의 동역자'(고후8:23)라 하며 '동일한 성령으로 행한 자'라 칭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면 바울의 후계자로는 디모데가 최선두라고 생각하겠습니다만 어떤 면으로 볼 때 디도는 디모데에 비하여 어떤 경계의 권면을 받지 않은 제자였습니다.

우리가 바울 서신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울처럼 주의 은혜와 능력을 많은 받은 사도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은혜의 능력 가운데서 로마제국의 온 땅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 마다 나타는 주의 능력과 권능 속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수많은 제자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시아에서 나와 함께 하던 자들이 모두 나를 떠났다 하였으며 또 처음 내가 변명할 때 함께 하던 자들이 모두 나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바울 서신을 통틀어 살펴 볼 때 끝까지 바울의 옆에서 그의 동역자로 일을 한 사람은 열손가락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중에 복음을 위해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와 오네시모를 차세대 목회를 위한 영적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오늘날 나는 이 글을 보면서 10년 세월의 허무함을 되뇌이게 됩니다. 오직 한 길을 향하여 달려 왔건만 이제 정말 내 곁에 남은 자가 누구인가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뜻을 같이하여 동일한 성령 안에서 진리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헌신한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으며 나는 오직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어린 아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목회의 말년에 행할 중국과 일본을 바라보는 내 비전 속에서 나와 동일한 성령안에서 일과 수고를 함께할 아들이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