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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3 : 22)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사람”

이요나 2006. 12. 14. 19:01

(사도행전13 : 22)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사람

 

(행13:22) 다윗 왕을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의 강림과 함께 출발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가운데 나타난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그에 대항하는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훼방을 살펴 보았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기회를 포착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헤롯 정권과 결탁하여 그리스도인을 박멸하기에 혈안이 되었고 그로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마리아, 가이샤라 두로를 거쳐 사방으로 퍼져 나가 시리아 땅 안디옥에 이르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의 덕망있는 인물로 부각된 바나바의 헌신으로 개척되었다. 바나바는 시리아 진영의 구브로 섬에서 태어난 레위족으로 마가의 삼촌이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교회를 개척한 것은 안디옥은 시리아의 수도였고 자기가 태어난 문화권의 중심도시로서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안디옥 교회를 개척한 바나바는 좀더 체계적인 가르침을 위해 다소에 은거하며 이방인 사도의 준비를 하고 있던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와 함께 성도들을 가르쳐 그 제자들이 이방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림을 받게 되었다(행11:19-26).

 

I. 이방 선교의 준비와 그 흐름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1)

 

A.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와 교사

1절에서 우리는 이방인 선교의 전초지인 안디옥 교회를 이끌어 가는 중추적 인물들의 이름을 보게 된다.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안디옥 교회에 이처럼 많은 예언자와 교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바나바와 사울의 이름이 처음과 나중에 기록되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안디옥 교회가 어떤 특정 인물의 권위 중심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봉사의 기능별로 주신 은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 흥미로운 이름은 니게르라는 시므온이다. 니게르란 아프리카의 니제르 강을 기원으로 생긴 말일 것으로 오늘날 우리는 나이지리아라는 국가를 연상하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흑인들을 니그로라 칭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흑인일 것으로 추정되며 또한 이 사람은 로마군병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운 구레네 사람 시몬일 것으로 추측된다.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리비아의 중요도시이다)

   B.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심

2절에는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여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기록되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선교사를 파송하는 성경적 원리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이것은 오늘까지도 합당한 성경적 원리라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해외 선교사 파송 최다국이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감사할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우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가 주님의 뜻 가운데 있었는가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원주민들 사이에서 오늘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불미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주를 섬겨 금식 할 때에 성령께서 내가 시키는 일을 위해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셨다 기록하였다. 여기서 그들이 주를 섬겨 금식을 하였다는 것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는 지도자들의 믿음생활을 대변하는 글이다. 아마 여기서 성령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하신 것일 것이다.

 

또한 성령의 말씀을 받은 이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통하여 두 사도를 안수하여 보냈다. 여기서 우리는 안수가 초대교회에서 사역자를 세우는 역할로 수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각 교회에서도 목사를 세울 때 안수식을 거행하지만 성경은 주께서 바울을 사도로 세울 때나 또 그를 선교사로 세울 때나 또 바울의 제자 디모데(딤전4:14, 딤후1:6)를 세울 때에도 성령의 예언의 말씀을 따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C. 선교의 시작과 훼방

4절에는 또 흥미로운 말씀이 기록되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를 타고 구로보로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여기서 우리는 선교사로 파송받은 두 사람이 어느 지역으로 갈 것인지에 대하여도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2년 전 한국에서의 갈보리채플 사역을 정리할 계획을 세우고 일본과 중국과 미국을 두루 다니며 내가 나갈 곳을 주께 물었었다. 나는 내가 가려는 곳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으나 가는 곳마다 현지에서 문이 닫혀 다시 서울로 돌아 오고 말았다.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을 생각하니 요나가 당한 풍랑이 어떠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였다. 이처럼 목사라는 사람의 믿음도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후 나는 지금까지 나의 진로를 하나님께 묻고 있다. 주께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라면 복음과 관련된 모든 일정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나바와 사울은 그 수종자 요한(마가)를 데리고 안디옥 지역의 항구 실루기아로 내려가 구브로 실라미 항으로 들어가 섬을 직통하여 반대편에 있는 섬의 중심도시 바보(papho)로 나갔다. 그곳은 구브로의 행정도시로 총독이 거하고 있었다. 일행이 그곳에 이르니 바예수(예수라 칭함)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엘루마)가 총독 서기오 바울을 섬기고 있었다. 여기서 박수란 무당 마술사와 같은 자를 말한다.

 

이 때 총독 서기오 바울은 바나바와 사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으나 박수 엘루마가 총독으로 믿지 못하도록 훼방하였다. 이에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여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이에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덮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바울이 성령 충만함을 통해 귀신을 쫓아 내는 첫 경험이기도 하다. 결국 이로서 총독이 구원을 얻게 되었다.

 

D. 바보에서 밤빌리아의 버가 항으로 들어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들어감

그후 바울 일행은 파보에서 배를 타고 소아시아의 문 밤빌리아의 버가항를 통하여 해발 1000m의 고원도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들어갔다. 이때 수종자였던 요한은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다고 기록되었다. 아직 젊은 나이의 요한으로서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 선교여행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갈라디아 4장을 참조할 때 바울 일행들이 굳이 행로가 힘든 고원지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들어 간 것은 아마 이때 바울은 말라리아로 인하여 시달렸지 않았는가 싶다(갈4:13).

 

비시디아 안디옥에 들어간 바울의 일행들은 안식일에 회당으로 찾아 들어 갔다. 그 당시는 유대인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유대인 회당이 있어서 유대인들은 그곳에서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흥미롭게도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 바울 일행에게 설교할 기회를 주어졌다. 이로서 사도 바울의 첫 메시지가 성경에 등장하게 된다.

 

II. 바울의 메시지 첫번째 주제 하나님의 증거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22,23)

  

A. 내 마음에 합한 사람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유대인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최고의 인격자로 격상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울의 메시지는 초대 왕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일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바울의 설교에는 고도의 전도적 전략이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바울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 왕을 이끌어 내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과 합한 자라 하셨다 증거하였다. 바울의 의도 속에는 이 시대에 과연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인가 하는 질문이 내포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나름대로 존경하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누구를 존경하고 칭송하려면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 할 것이다. 그가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다 하드라도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는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누구와 마음을 합하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그런 사람들이 서로 연합하여 당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칭송과 인정에 앞서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무어라고 증언할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솔직히 말해 하나님 앞의 우리의 존재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가 너무 막중하고 또 우리 존재 또한 형편없기 때문이다.

 

B. 하나님께서 다윗을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신 근거는 무엇인가?

바울의 설교는 다윗은 내 마음과 합한 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가 주께서 폐하신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로부터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바울도 증거하여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셨다 하였다. 이것은 다시 말하여 사울왕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지 못한 자라 폐하고 마음이 합한 자 다윗을 세웠다 하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다윗은 정말 하나님께서 인정할만큼 완전하고 고귀한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었을까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을 간음을 행한 자 살인을 행한 자라 기록하였다. 오죽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 네 손에 피를 많이 묻혔으므로 네가 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 하셨을까? 개인적인 죄의 목록을 살펴 볼 때 사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C.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사울의 죄와 다윗의 죄가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무엇이 죄인인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게 하였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사울왕과 다윗왕은 모두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왕의 안수를 받았다. 그로서 두 사람은 모두 선지자의 반열에 올라 예언자들 중에서 예언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사울 왕을 폐하신 사울왕의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왕에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도 남지 말고 몰살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울왕은 아말렉 왕을 살리고 짐승들 중에서 좋은 것을 전리품으로 삼았다(삼상13:13,14). 그는 영웅 심리에 사로잡혀 자기의 권위가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사울왕의 잘못은 그뿐이 아니다. 승전을 하고 돌아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자 할 때 제사장 사무엘이 늦어지자 제사장만이 집행할 수 있는 제사를 자기 손으로 행한 것이다. 이에 사울엘 선지자는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백성들의 지도자로 삼으셨다(삼상13:13-14)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과 다윗의 죄를 비교할 때 사울의 범죄는 회개에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으로 권위의 질서에 관한 것이고 다윗의 범죄는 육체의 속성을 이기지 못하여 행한 범죄로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통하여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약에서 갸롯 유다의 죄와 베드로의 범죄와 비교할 수 있다. 가룟 유다는 주의 경고하심을 받고도 스스로 그 말씀을 넘어섰고 베드로는 주를 부인하고 주께서 말씀하신 닭의 울음을 듣고 심한 통곡으로 회개를 하였다.

 

오늘 이 말씀은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 것으로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신적 권위와 질서이다. 우리가 다윗과 같이 왕으로서 행할 수 없는 간음과 살인을 하였다 하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의 성령의 인도함을 간구하는 성도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며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밟고 자기의 영광을 취한 자들은 결코 죄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모든 크리스챤은 죄 가운데 용서 받은 사람들이다 바울은 스스로 증거하여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의 진노의 자녀였드니 긍휼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람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1:2-4) 하였다.

 

  D. 흥미로운 것은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있느냐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을 사모하여 찬송하고 있었으며 그의 말씀을 향해 갈급해 있었다. 다윗은 시편에서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시25:1) 호소하며 다시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여 주소서(시25:11) 고백하였다.

 

또 그는 밧세바를 간음한 후 선지자 나단이 와서 그의 죄를 고하였을 때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하였다하였고 늘 주 앞에 깨어진 심령으로 나아가기를 힘써 기도하였다. 이처럼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 하여 주를 기쁘게 할 것인가에 마음울 두었다.

 

III. 하나님과 마음을 합했다 하는 것은 결코 인생의 행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였다는 것은 인생의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윗의 일생은 결코 사울보다 행복하지 않았다. 다윗은 늘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쫓기여야 했으며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마음의 유혹들과 싸워야 했다.

 

그는 아들들의 반란을 겪어야 했으며 친구의 배반으로 뼈 아픈 기억을 가슴에 새겨야 했다. 또 그는 많은 첩실들을 타고 들어 온 우상으로부터의 유혹과 싸워야 했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지켜야 했다.

 

물론 다윗은 하나님께 많은 범죄를 하여 하나님을 많이 실망 시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온 마음을 다해 주를 섬겼다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당신은 어쩌면 사울일 수도 또 다윗의 입장일 수도 있다. 만약 주 예수를 섬기는 당신이 당신의 육신의 생각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면 당신은 비록 성령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사울과 같이 버림을 받아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지 못할 것이다. 성경이 너희가 육신으로 살면 반듯이 죽을 것이로되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다윗과 같은 많은 범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심령으로 회개하여 주의 합당한 자가 되기를 힘쓰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귀중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와 마음을 합한 자가 될 것이다.

 

은혜와 사랑의 주님. 거룩하신 당신의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다 같이 죄 중에 태어나 죄 중에 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 은혜의 아들이 되었은즉 이제 우리로 하여 다시는 죄에 얽히지 않게 하옵시며 더욱 경건함에 정진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가 되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