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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4장-3)제발! 원수 앞에서 코 들지 말자구요

이요나 2007. 2. 21. 10:39

(창세기14장-3)제발! 원수 앞에서 코 좀 들지 말자구요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14:21-23)

 

우리는 앞에서 인생의 행복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내적 조건인 기쁨의 충만을 이루는 여섯 가지 방법을 살펴보았다. 또한 하늘의 복의 전달자 멜기세덱의 자격과 위치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이제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하늘로부터 오는 복이 전달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복을 빌었다"고 말하며"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히 7:7)고 진술하고 있다. 그야 그럴 것이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또한 그는 멜기세덱은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만나 복을 빌었다고 기록하였고(히 7:1) 또 아브람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다고 하였다.(히 7:6) 이 말씀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두 번에 걸쳐 복의 빎을 받은 것인데 그 첫 번째 이유는 그의 믿음의 보상이고 그 다음은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서 맺어지는 조건부 축복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축복에 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하자.

 

먼저 이것을 해석함에 있어 우리는 이스라엘 랍비들이 성경 해석의 방법 중 가장 중요시하는 "쏘드"(Sod)라는 비유적이고 내면적인 신비적 의미를 찾아내는 하나의 상징적 그림언어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 아브람이 멜기세덱 왕에게 준 것은 전리품이었을 것인데 하늘의 왕이신 멜기세덱이 세상의 물질이 뭐 대단한 것이겠는가?

 

더군다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용한 것도 아닌 탐욕의 열매들인데 말이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주어지는 어떠한 상징성을 내포한 그림 언어인 것이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 아브람에게 먼저 나와 영접한 것은 소돔 왕이었다. 그는 섬김과 배반의 성경 숫자 속에 있는 욕정의 사람이다. 그가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오는 하나님의 사람 아브람을 영접한 것이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라!

우리는 삶 속에서 승리 다음에 꼭 실패를 발견하게 된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자. 바다를 걸어가던 위세는 곧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 갔고 주를 따라 죽겠다는 믿음의 맹세는 곧 저주로 변하여 주를 부인하고 만다. 그러나 성령의 강림 이후 그는 성전 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놀라는 사람들을 향하여 "왜 너희는 이 일을 우리의 권능과 믿음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우리를 쳐다 보느냐"(행 3:12)라고 자기를 부인하였다.

 

사도 베드로의 위기는 바로 이때였다. 주께서는 늘 경솔한 성격 소유자인 베드로에게 이렇게 경고하셨다. "시몬아 사단이 밀 까부르듯 너를 청구하였으나 내가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너는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건히 하라".(눅 22:31-32)

 

성경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절대로 사람과 영광을 같이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시록 4장을 보면 네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신 주께 돌릴 때에 이십 사 보좌에 앉은 장로들이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자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인간과 영광을 나누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게 하신다.

 

*원수 앞에서 춤출 일 없잖아!

소돔 왕이 패한 전쟁에서 318명의 소수의 사람을 이끌고 승리한 후 승전고를 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 교만한 소돔 왕의 영접을 받는 아브람을 생각해 보자. 백이면 백 누구나 그쯤 되면 코를 들 수 있다. 승리의 술잔에 취하여 자기의 공로와 위엄을 자랑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승리를 자기의 영광으로 취하지 않고 오직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승리를 꿈꾸며 묵묵히 그를 지나 살렘 왕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의 것 즉 부와 영광이 아닌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을 원하며 멜기세덱에게 나아간 것이다. 이는 그가 믿음의 눈으로 그가 의의 왕이며 평강의 왕임을 알 수 있었고 그에게만이 영원한 생명을 이룰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영생이 유일하신 생명의 본체에게 있음을 깨달을 때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이러한 지혜를 얻은 아브람은 그의 믿음의 눈 속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구하시기 위하여 몸과 피를 바쳐 사랑하실 미리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났다. 멜기세덱은 이러한 믿음의 사람 아브람을 위하여 복을 빌어 "천지의 주재시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한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더욱 가까워진 이 때에 사는 우리 즉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인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왜 아브람은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렸으며 멜기세덱은 어떠한 의미에서 그를 다시 축복하였는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