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1장-33장 강해) “평안의 시대”
(사33:6)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서론)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논할 때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 하나님은 불이시다’ 증거하고 있다. 이는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시는 대표적인 성품으로서 사랑은 그의 정서적인 요소이며, 빛은 그의 이성적 요소이며, 불은 그의 공의 판단의 요소이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서 31장부터 33장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을 발견하게 되는데 3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32장에서는 하나님의 이성적 성품을 그리고 33장에서는 세상 끝에 나타날 불의 성품을 보게 될 것이다.
I. 영적전쟁의 시대 (이사야 31장) – ‘사랑의 시대’
(사31:5)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
A. 애굽은 신이 아니다(1-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3)
이사야 선지자는 1절에서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려니와”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31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사야가 이 글을 쓰게 된 상황과 동기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31장 서두의 내용과 표현이 30장과 같은 것으로 보아 31장은 30장의 요약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이사야 선지자가 이러한 내용을 거듭거듭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이유는 이 메시지가 종말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메시지를 통하여 지금 내가 어디에서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인지 분변해야 할 것이다.
지금 유다는 맹호 앗수르 산헤립 왕의 총공격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그들은 북왕국을 제압시켰고 이제 명실공히 남유다 왕국을 멸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산헤립은 북왕국과의 전승을 통하여 그 형제 나라인 남유다의 전력을 꾀어 뚫고 있었고 그의 야망은 난공불락의 예루살렘을 탈취하므로 명실공히 세기의 통치자로 그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원대한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리석은 지도자를 만난 남유다는 앗수르의 공격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애굽에 구원 요청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애굽이야말로 능히 앗수르 군대를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발상으로 사자를 막기 위해 호랑이를 부르는 격이라 하겠다.
이들을 향하여 이사야는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경고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똑 같은 어리석은 짓들을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삶의 문제가 일어날 때 마다 주 여호와 하나님께 의지하려 하지 않고 세상의 힘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는데 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삶의 지혜에 대하여는 능히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답변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지혜와 생각이나 세상 사람들의 자문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
물론 세상에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가지 능력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 삶에 필요한 모든 이 땅에서 준비해 놓으셨고 또 삶의 환경 속에서 발생된 많은 문제들을 연구하고 터득할 수 있는 지혜들을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생활은 날로 과학적 탐구와 의학적 발전을 이루어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또 그 결과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간의 삶 속에 나타난 문제들을 이러한 과학이나 의학 그리고 학문과 철학과 이념과 같은 사람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산재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경계가 있음을 뜻한다.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대인관계 사회적 적응 그리고 또한 국가적 대응에 관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내면의 생각과 그 변화를 짐작할 수 없는 사람의 지혜로는 능히 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다.
더욱이 이스라엘과의 열방 국가와의 전쟁은 사람에 속한 것이 이니라 영에 속한 것이다. 이는 주께서 그들을 택하실 때부터 예고된 것으로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 가운데서만 능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지혜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수천년 역사 속에서 다람쥐 채바퀴돌듯이 항상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 모든 전쟁들의 원인은 그들의 영적 타락으로 인하여 그들의 마음을 주 앞에 바로 잡기 위해 주께서 주도하신 것이라 할 때, 그들이 그 전쟁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주 앞에 죄를 자복하고 전능자의 구원의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는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정의가 된다.
바울은 이를 말하여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증거하였다. 그러함에도 인간들은 어리석게도 문제를 만날 때마다 동일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요 시셋말로 정말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세상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은 그 마음이 주를 신뢰하지 못하여 하나님과 온전한 교통을 하지 못하고 그 눈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공중권세를 잡은 자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만족한 삶을 추구하므로 모든 일을 자기 생각대로 해결하려는데 있다 하겠다.
B. 여호와의 능력 (4-9)
“그의 반석은 두려움을 인하여 물러 가겠고 그의 방백들은 기호를 인하여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9)
이에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를 향하여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가 불려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인하여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을 인하여 굴복지 아니할 것이라”(4) 전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비유는 너무 적적하다.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먹을 것을 움키려 할 때 목자들이 떼를 지어와서 소리를 지른다고 그것들이 놀래서 도망갈 리는 없다.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 땅의 모든 생물들 곧 새들과 짐승들과 물고기라도 모두 사람의 지배를 받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승들을 다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후로는 짐승들도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지혜대로 살아 가고 있으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주 여호와는 만군의 통치자이시다. 하늘과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은 모두 그의 권세 아래 있다. 그가 비록 아무도 당할 수 없는 큰 사자라도 자기를 창조하신 여호와를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과 그 영위에서 싸울 것이며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5-6) 권고하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주 여호와는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이다. 그가 창조하셨고 그 모든 생물과 사람과 영들까지도 그의 날개 밑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그 마음이 교만해져 자기를 지으신 주를 떠나 스스로 자기 지혜로 살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주 여호와는 그 택하신 백성들이 패역하였다 해도 그들이 돌아 오기를 기다리시며 그들이 구원의 손을 내어 밀면 언제고 그들의 대적들을 멸망시킬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그 택한 자들을 사랑하시는 주 여호와의 마음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9b) 증거하였다. 이는 택한 백성의 예배를 받으시는 여호와께서 그들로 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가 임재하신 처소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이다.
II. 의의 통치의 시대 (이사야 32장) - ‘빛(진리)의 시대’
(사32:15)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산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A. 한 왕의 오심(1-8)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1)
이제 이사야는 주 여호와께서 그의 나라를 온전히 통치하시기 위해 한 왕을 보내실 것을 말하여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라”(1) 증거하였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성군 히스기야의 통치를 언급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땅의 통치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미리 증거한 것이다.
먼저 이사야는 이 땅에 오실 통치자 주의 통치철학을 말하여 ‘의로 통치할 것이며,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라” 이는 매우 냉철하고 정직한 통치 철학이다. 그가 세상을 의로 통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만이 의롭기 때문이며 또 그가 모든 것을 지으셨고, 친히 아시며 그를 다스릴 능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공평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가 와서 통치할 때 나타나는 환경적 위상을 살펴 보자. 이사야는 그는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으며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으며, 마른 땅에 냇물 같으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과 같을 것이라 증거하였다. 이 말씀 속에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 누구라도 참담한 환경과 그 속성을 떠나 살 수 없는 조건 속에 있음을 전재하고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최고의 문명의 시대라 해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천기의 변화는 극복할 수 없다. 오늘날 동남아시아 일대를 휩쓸고 지나간 쓰나미와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가믐과 폭풍과 폭염으로 수많은 인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속수무책이다. 그 어떤 권세자도 이러한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주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에서는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그 모든 것을 다스리기 때문에 그 어떤 환난과 재난이 일어난다해도 그가 모두 해결하실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인격적 훼방을 받지 않을 것이다. 보는 자는 눈이 감기지 않을 것이며, 듣는 자의 귀가 기울여질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달을 것이며 또한 어눌한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3-4).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답하여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7:22) 하셨다.
계속하여 이사야는 그의 시대에 세우실 불의한 세상을 말하여 그는 어리석은 자를 존귀한 자로 세우지 않으며 궤휼한 자를 정대하다 말하지 않으시며, 불의하여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는 자의 심령이 마르게 하실 것이며, 궤휼하여 악한 계획을 베푸는 자와 빈핍한 자가 거짓된 말을 듣지 않으실 것이라 증거하였다.
이는 주의 나라의 통치조직을 말씀하신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아시는 주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정직하고 정결하며 온전한 자를 세워 주의 의와 공평함이 온 세상에 두루 나타나게 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정치판도를 보라. 집권자들이 자기 사람을 세우기에 연연하여 날이 갈수록 정치는 혼탁해지고 세상은 날로 부정부패와 불의로 가득차게 된다. 그러나 주의 날에는 절대로 그러한 일들이 없을 것이다. 이는 그가 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리기를 기뻐하였듯이 그도 자기 앞에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의로운 생명을 드릴 사역자들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8) 증거하였다.
B. 안일한 교회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9-14)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 지어다 너희 염려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9)
이제 이사야 선지자는 돌이켜 안일함에 빠져 주의 말씀을 소홀히 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9) 하였다. 이는 할 일없는 여자들을 향한 책망의 말이 아니다. 이는 부지런히 제자를 가르치고 그의 신랑을 위해 정결함을 지켜야 할 교회를 향한 메시지이다.
이사야는 그들을 향해 “너희 염려없는 여자들아 일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10) 하였다. 이는 일년 내에 멸망할 것을 예고한 것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장래 일어날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일락에 빠져 세월을 허비하는 교회들에게 수확을 거둘 수 없는 날이 이를 것을 통고한 것이다.
이사야는 그날이 이르면 그들은 당황하여 벗은 몸을 드러낼 것이며, 좋은 밭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위하여 가슴을 칠 것이며, 형극과 질려가 희락의 성읍과 기쁨의 집에 임할 것이며, 궁전이 폐하고 성읍이 적막하여 짐승의 굴혈과 초장이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세월을 아끼라 명한 것이다.
C. 우리에게 성신을 부어 주실 것임(15-20)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20)
그러나 주 여호와를 기뻐하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날이 이를 것이다. 이사야는 이를 말하여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받을 산림으로 여기게 되리라”(15) 증거하였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보라 그들은 2500년 동안 국가와 나라를 잃고 세상을 유리하는 백성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 아들을 기뻐하는 우리를 향하여는 주의 거룩하신 성령을 부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우리로 세상의 아름다운 동산이 되게 하셨다.
이사야는 계속하여 “그 때에 공평이 광야에 거하며 의가 아름다운 밭에 있으리니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16,17) 증거하였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사실 이 때에 살고 있다. 우리는 공평한 광야게 거하며 의의 아름다운 밭에 누어 화평과 평안과 안전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중에는 다시 안일한 여자들이 되어 일년 남짓한 통곡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말하여 이사야는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먼저 그 산림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18, 19) 하였다. 이는 주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이 먼저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받을 것을 예고 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셨다.
그러나 이사야는 주의 기뻐하심 속에 거한 우리를 향하여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으라”(20) 축복하였다. 이 얼마나 커다란 위로의 말씀인가? 나는 이 물가에 서서 주를 바라며 주의 날에 이를 아름다운 날을 기뻐하리라. 아멘 아멘.
III. 영광의 왕의 시대(이사야 33장) - ‘불의 시대’
(사33:17) “너희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
A. 구원의 주(1-6)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2)
이사야 33장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는 그리스도의 날에 구원의 마지막 행렬에 서서 영혼의 구혼을 외치는 애절한 탄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나와 함께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제 곧 울릴 영광의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한다. 만약 그때를 놓치면 이제 당신은 사망의 골짜기 속에서 오직 한 가닥 남은 마지막 열차를 타야 하는데 그 때에는 당신을 기다려줄만한 시간이 별로 없다.
이사야 선지자는 서두에서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를 하며 속임을 입지 않고도 속이는 자를 향하여 내가 학대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고 경고하였다. 이는 곧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이는 학대와 속임을 일삼는 권세들을 향한 말씀으로 바로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군왕으로 임할 때의 일일 것이다.
이 때가 되면 학대를 당하고 속임을 당한 자들이 주 앞에 나아와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2) 외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 보건데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을 따라 애굽에 들어 간 이스라엘 민족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시대에 이르러 400여년 동안 노예생활로 전락되었다. 혹독한 노예생활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이에 주께서 미리 예정하신 종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구속하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눈에 덮인 너울을 벗지 못하여 영광의 주를 따르지 못하여 결국 그들의 마음의 욕심을 따라 세상의 통치자와 결탁을 맺기를 주저치 않는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내어 준 후에야 그가 거짓의 왕이며 영혼의 학대자인 것을 깨닫고 주 앞에 부르짖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주께 들림을 받은 후 곧 이 땅에서 일어날 일이다.
그러나 사랑의 주 여호와께서는 그때에도 그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예비하신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의 온전한 백성으로 양육하여 이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심판의 주께서 세상을 멸하실 것인데 그의 일어서심으로 인하여 민족들이 도망하고 열방은 흩어질 것이다.
이사야는 이 때의 모습을 말하여 “황충의 모임같이 사람이 너희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의 뛰어 오름같이 그들이 그 위로 뛰어 오르리라”(4) 하였다. 이는 마치 모세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올 때에 그 부녀들이 애굽의 집에서 각양 금은 보화를 취하고 나오는 것과 흡사하다. 이사야는 이들이 이처럼 당당하게 행할 수 있을 말하여 “여호와께서는 지존하시고 높은 데 거하심이요 공평과 의로 시온에 충만케 하심이라”(5) 증거하였다.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이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 택하신 종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말씀은 그대로 실행될 것이나 그 모든 일들이 그의 예정을 따라 성취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이르면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은혜를 입히실 것이다.
이사야는 6절에서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증거하였다. 이 말씀 속에는 우리를 깨우치는 은유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주 여호와를 온전히 경외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의 지혜와 지식이 주 여호와를 온전히 알 수 있었다면, 곧 세상을 살아 가는 능력과 또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의 권능이 주께 있음을 온전히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영혼의 학대자 곧 속이는 자에게 이끌려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듣기에 소홀하고 자기의 생각을 따라 세상을 살아가려고 힘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난 후에야 그는 주 여호와의 지존하심과 통치하심과 주께서 시온에 좌정하여 우리를 통치 하고 있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B. 타는 불(7-16)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14)
이사야는 그때가 이르면 주를 아는 보배로운 지식으로 충만케 될 것이며 그 영혼은 눈물과 고통이 없는 평안의 시대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또한 그날에는 세상을 다스리던 용사들은 울부짖을 것이며 평화를 외치던 사자들이 슬피 곡할 것이라 하였다. 이는 이들이 주를 알지 못하여 평화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있는 것으로 알았고 자기를 삼키는 자와 조약을 맺어 스스로 학대를 당하고 스스로 속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사야의 예언은 역사적 성취와 미래적 성취로서 이중성을 띠고 있다. 이 일은 이미 이스라엘 역사 속에 성취된 일로서 그들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얻지 못하여 스스로 구원의 주를 외면하고 앗수르를 대항하기 위해 애굽에 의지한 결과로 들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여기서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지 아니하며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레바논은 부끄러워 마르고 사론은 사막과 같고 바산과 갈멜은 목엽을 떨치는도다”(8,9)고 증거하였다.
여기서 조약은 대환난의 날에 적그리스도와 맺은 평화조약이다. 그는 유대인의 역사적 소망인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줄 것을 통하여 세기의 평화를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그 조약은 3년 반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파하여 수천년 동안 이어 내려온 이스라엘의 영광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사야는 이때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이제 일어나며 내가 이제 나를 높이며 내가 이제 지극히 높이우리라”(10) 하실 것이라고 증거하였다.
이사야는 11절에서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 민족들은 불에 굽는 횟돌 같겠고 베어서 불에 사르는 가시나무 같으리로다” 하였다. 만약 당신이 일생을 통해 이룬 소망이 뜬 구름과 같고 하늘로 날라가는 풍선과 같다면 당신이 이룬 소망은 허사일 것이다. 주께서는 이스라엘을 세워 열방을 낳을 믿음의 여인으로 세웠건만 그들은 자기 영화에 도취되어 그들이 쌓은 탑은 모래성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것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3:12,13) 기록하였다. 만약 당신이 금과 은으로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도 그 공력이 불을 통과하였다면 상을 받을 것이며 그렇지 못하였다면 해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일생은 말장 헛것이 되고 말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여호와의 성품 중 하나는 불이시다. 하나님의 불의 속성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그 하나는 태우는 불이요 하나는 온전케 하시는 불이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주를 증거하여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자라고 증거하였다.
성경에서 나타난 여호와의 불은 창세기에서 제일 먼저 언급된다. 하나님은 죄인 된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 내신 후 에덴동산 동편에 화염검을 든 천사를 세우셨다. 구약에서 우리는 불의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신 것을 알고 있으며 택하고 부르신 종 이사야의 죄된 입술을 숯불로 제하시기도 하셨다. 또한 성령이 이 땅에 강림하실 때 혀의 불 같은 것이 각 사람들 위에 임하였으며 베드로는 이제 세상은 처음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은 것처럼 불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 먼데 있는 자들아 나의 행한 것을 들으라 너희 가까이 있는 자들아 나의 권능을 알라” 외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늘에도 유효한 것이다.
계속하여 그는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하리요 하도다” 증거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 속에 감추어진 두 가지 속성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어야 할 것이냐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일은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두르고 진쳐 있을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성 위에 서서 떨며 이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한 바 ‘불 속에 함께 거한다’ 라고 쓰인 히브리어 ‘드웰’(dwell)은 세가지 의미가 있는데 ‘손님으로 머무는 것’, 도피하는 것’, 다투고 싸우는 것’을 뜻한다. 만약 당신이 불 속에 있다면 그 불 속에 손님처럼 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도피할 것인가 아니면 불과 싸워서 이길 것인가를 선택하여야 한다.
우리는 얼마 전 티브이 생중계를 통해서 화왕산에서 정월대보름 불꽃놀이 속에서 수십 명의 생떼 같은 목숨들이 화마에 사라져버린 것을 목격하였다. 재앙을 날려보내려는 우상의 불이 생명을 제물로 삼고 말았다. 그 누구도 불 속에서 자신을 지키지도 도망하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속에서 칠배나 더한 뜨거운 풀무불 가운데서 온전히 살아 남은 믿음의 세 소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불에 던져졌으나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음으로 정금같이 살아 남았다. 그들은 불 속에서도 주의 손님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 만약 당신이 불 속에 손님처럼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당신은 불로 연단을 받아 더러운 것을 모두 태우고 정결한 정금으로 성화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죄악이 불을 두려워 도피하려 한다면 불은 당신을 삼킬 것이며 싸우려 해도 당신은 이기지 못하고 불에 타버릴 것이다.
이사야는 타는 불 속에서 주의 보장을 받을 사람들을 말하여 먼저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않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15)고 증거하였다. 참으로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몇이나 있을까 싶다. 이런 사람은 말씀에 온전하여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않는 성령의 사람일 것이다. 이사야는 이들은 주께서 견고한 바위와 같은 보장이 되어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할 것이라 증거하였다(16).
C. 왕의 강림(17-24)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22)
이제 우리는 영원한 시대를 미리 보게 된다. 이사야는 열린 문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실 왕 중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며 그의 통치의 날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 눈은 그 영광 중의 왕을 보며 광활한 땅을 목도하겠고”(17)라고 증거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도 전에 이러한 것을 말할 수 있었으니 그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장차 이 땅에 있을 일들을 말씀하시며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24:30) 하셨으며 또한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변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그 왼편에 두리라”(마25:31-33) 하셨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함께 보아야 할 일이기도 하며 칠년 대환난을 건넌 이스라엘 중에 있을 일이기도 하다.
이사야는 그 때에는 강포한 백성을 다시 보지 않을 것이며 말이 어려워 알아 듣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안정한 처소 예루살렘을 볼 것이며 그곳은 영영히 뽑히지 아니하는 장막과 말뚝처럼 견고할 것이며 그곳에 여호와의 위엄이 함께 하실 것이라 하였다.
이사야는 그때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말하기를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말할 것이라 증거하였다. 그들은 매우 쉬운 것을 어렵게 깨달은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주의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불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야 할 것이다.
당신은 이제 속히 스스로 불 가운데 있는 손님이 될 것인가? 불 가운데서 도망을 할 것인가 아니면 불과 다툴 것인가 결정을 해야만 한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당신의 시대는 평안함으로 가득 찰 수도, 부끄러움으로 가득 찰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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