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9:28) “다 이루었다”
(요19:28)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 가시니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19)
A. 빌라도의 문책(1-5)
유대인에게 있어 왕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이 권세는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사를 통해서 통치되던 이스라엘은 사사들의 부패로 인하여 백성들은 왕을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들은 사무엘 선지자는 분노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떠난 것이니 그들의 뜻대로 해 주어라 말씀하시고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기름부어 첫번째 왕으로 세우셨다.
그러나 사울왕은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임으로 처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부다 나으니이다”(삼상15:22) 말씀하시고 유다지파의 이새의 아들 다윗을 기뻐하사 그를 왕으로 삼으시고 다윗은 나와 마음을 합한 자라 칭하셨다.
그러나 오늘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 예수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내어 주어 십자가에 못밖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왕 중의 왕을 유대인의 왕으로 삼기를 거절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방인 병사들은 비록 예수님을 채칙하고 조롱하였지만 그를 가리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라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희롱하였다. 실로 민망하게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모습이 되어 병사들에게 희롱을 당하신 것이다.
B. 빌라도의 갈등 (6-16)
병사들은 예수에게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혀 조롱하며 빌라도 앞으로 데려 오니 빌라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 말하였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소리질러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를 질렀다. 빌라도가 그들의 말을 거절하여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말하니 유대인들은 그가 스스로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였으니 우리의 법에 따르면 당연이 죽어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러면 왜 유대인들은 예수를 자기들의 손으로 법을 집행하지 않고 빌라도에게 처형을 의뢰한 것일까? 그것은 그들도 율법이 정한 바 예수님의 죄에 대한 증인을 얻지 못하고 또 율법에 무고한 피를 흘린 자의 손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간다는 말을 스스로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를 로마의 법으로 처형하려 한 것이다. 후일 베드로는 ‘그가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다”(행2:23) 고발하였다.
그들의 말에 더욱 두려워진 빌라도는 다시 예수께 “너는 어디로 왔느냐?”고 물었다. 이는 예수님의 실체를 물은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런 답변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이에 빌라도는 ‘내가 너를 놓은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위협하였다. 이에 주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11) 하셨다. 이와 같이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 애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 반역하는 것이다 라고 시위하였다.
C. 빌라도의 판결(17-22)
할 수 없이 빌라도는 예수를 박석이라는 돌을 깔아 높힌 법정에 앉아서 ‘너희의 왕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일제히 소리질러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 소리치며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다. 이에 빌라도는 할 수 없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병사들에게 내어 주었다. 십자가의 형벌은 예루살렘 북쪽 20미터 언덕의 해골이라 불라는 골고다 (calvaria-라틴어) 언덕으로 보내졌다.
그당시 십자가의 형벌은 로마 법이 정한 가장 큰 형벌이다. 이는 극악범죄자들을 처형하는 최고형으로서 가장 무시무시한 형벌이다. 십자가의 형벌이 내려지면 철고리와 짐승의 뼈를 깍아 단 채찍으로 마흔대에 한대를 감한 서른 아홉 대를 때린 후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스스로 질고 형장으로 가야 한다. 병사들이 한대를 감하여 서른 아홉대를 때리는 이유는 사십대를 맞고 살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지를 십자가에 묶고 굵은 대못으로 사지를 못밖아 세운 후 고통을 덜하게 하기 위해 신포도주를 먹이고 일찍 숨을 멎게 하기 위해 다리뼈를 꺾는다. 이렇게 예수님은 오른편과 왼 편에 강도들과 함께 못 박히셨다.
빌라도는 친히 죄패를 써서 히브리어와 로마와 헬라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하였다. 이에 대제사장들이 소리질러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종요하였다. 그러나 빌라도는 ‘나의 쓸 것을 썼다’ 답하였다. 이 일은 빌라도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이다. 그가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유대인의 왕’이라 쓴 것은 로마 병사들의 조롱과는 또 다른 의미로서 빌라도는 예수께서 죄인이 아니심을 알고 있었고 또 그가 성경에 기록된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의 왕 이심을 확신한 것이다.
II. 다 이루었다의 뜻은 무엇인가?(23-30)
“이 후에 예수께서 그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시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28)
A.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7언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다. 또한 그와 관련하여 나타난 일들이 모두 성경에 기록 말씀의 성취인 것을 알게 된다. 이미 주님은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말씀하셨다. 특별히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일곱의 말씀들을 음미해 보고자 한다.
주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처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기도 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첫번째 말씀이 자신을 십자가에 다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청원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그 첫째되는 목적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것이다. 이에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증거하였다.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을 해하는 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바로 인류의 죄가 사단의 권세 속에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로하여 인간은 자신도 알지 못한 체 죄의 권세에 매여 종 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주께서 자기를 부르실 때에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26:18)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은 태어남으로부터 그 눈이 가리워져 어둠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사단의 권세로서 예수님은 마귀를 없이 하러 오신 것이다.
성경 기록상 순서를 따른다면 요한이 기록한 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하신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는 사실상 마리아의 몸을 빌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으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섬겨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요한복음 2장에 언급된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어머니의 청탁을 듣고도 ‘여자여 나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신 말씀을 근거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당신과 나와 무슨 관계냐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위해서는 무엇을 할만한 때가 차지 못했다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여 사람들이 해야 할 1% 부족한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몸으로 낳은 아들이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채찍을 맞고 가시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록 자기가 낳은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그는 열달 동안 배 앓아 낳은 육신의 아들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의 십자가 처형을 두 눈으로 목격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 육체를 떠나 하나님께 가는 아들로서 아직 세상에 남아 살아야 할 어머니를 모셔야 할 의무가 그에게 있었다.
이에 주님은 그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가리키며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하고 그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 것이다. 이미 주님은 자기의 행하는 일들을 염려하여 나온 모친과 동생과 누이에게 ‘누가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3:34,35) 말씀하셨다. 우리는
복음사역자로서 이 말씀을 냉철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먼저 죄인들의 용서를 구하셨고 다음에 육친의
어머니의 안녕을 당부하신 것이다.
주께서 세번째로 하신 말씀은 옆에 함께 달리신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고 하신 말씀이다. 두 강도 중 하나는 예수께 말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네가 남은 구원하고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느냐고 조롱하였다. 이에 반대편의 한 강도가 그를 책망하여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나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말하며 ‘예수여 당신의 나레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23:42) 하였다. 이에 주께서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늘 나를 위하고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내 이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은 악행을 일삼다 사형을 당하는 강도를 자기의 이웃으로 삼으셨다. 이는 그 누구라도 그 어떤 순간에라도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낙원이란 믿는 자들이 들어가 부활을 대기하는 장소이다. 그는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 예수께서 그의 나라에 임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상의 네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이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극한 슬픔을 접하게 된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문선명 교도들은 이 말씀을 들어 예수님은 실패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고 말한다. 참으로 민망한 말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버리심에 대한 원망을 하신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서 버리심을 당할 수도 또 사망 속에 거할 수도 없는 거룩한 자이시다. 이는 하나님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 언약의 뜻을 다시 되새기신 것이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십자가에 목 박게 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뜻대로 이루어질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주님은 ‘내가 목마르다’(요19:28) 말씀하셨다. 요한은 이에 대하여 “이 후에 예수께서 그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시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28) 라고 기록하였다. 주께서는 성경에 자신을 가리켜 하신 모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라도 ‘목마르다’ (28)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육체의 갈급함을 위한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이 육체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라’ 말한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끝으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나는 과연 마지막 순간에 아무 꺼리낌 없이 나의 영혼을 주께 부탁할 수 있을 것인지 두렵다. 이는 그 모든 것이 다 주의 뜻대로 이룰 수 있을 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 누가 주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다면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고 자기의 육신의 부모를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사람들을 외모로 취하여 차별을 하였다거나 아직 나를 부르신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던가 나 자신의 육신의 연약함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였다면 그는 그 모든 것을 이루지 못하여 자기의 영혼을 주께 부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이 모든 말씀은 과연 자신을 위한 말씀인가 아니면 오늘 주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를 위하신 말씀인가? 우리는 주와 함께 십자가 위에 서서 자신을 각성할 필요가 있다.
B. “구약의 말씀을 다 이루셨다”
그러면 예수께서 다 이루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무엇이 이루어진 것일까? 누가는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변화산상에 올라 가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져야 할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다고 기록하였다. 아마 구약의 대표하는 선지자들과 말씀을 나눈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말씀하셨으며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뇨?’ 라고 기록되었으며 다시
22장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감이니라’고 기록하였다.
요한은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셨다’(요18:4)고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칠 일을 다 아셨다. 예수께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미 그가 세상의 죄를 담당하는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을 모두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다’(요17:4) 하셨으며 다시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으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서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습니다”(요17:8) 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서 우리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경공부를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후일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에 대해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주였노라’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주는 다윗이 미리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수족이 찔리게 되었으며 기록된 바와 같이 로마 병사들이 그의 겉옷을 나누며 누가 속옷을 얻을까 하여 제비 뽑았다. 또한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목이 갈하여 초를 마시우게 되었고 그를 때리는 자들에게 그의 등을 맡기며 그들은 그의 수염을 뽑혔다.
또한 주님은 그는 죽음에서 행악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게 되었으며 이사야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그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허물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고 그는 행악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게 되었다. 주님은 너무 잔인하게 맞아서 막달라 마리아는 그의 모양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구약에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말씀은 모두 성취되었다. 주께서 다 이루신 것이다.
C. 구속의 역사를 완성하셨다
요한복음 서두 부분에서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요, 또 그의 일을 마치려 함이라’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곧 인류의 구원에 관한 구속사를 언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이미 기록된 바와 같이 아이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여 하고 외친 것이다. 여기서 호산나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 곧 유대인의 왕은 그의 이름과 같이 구원자로 오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모든 생물을 만드셨으며 제 7일에는 쉬셨다고 기록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우리의 형상으로 창조하자 하셨으며 하나님과 같이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로서 창조하여 낙원이라 하는 에덴에 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함께 교제하며 살도록 하셨다.
그러나 사단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 첫 사람 아담은 그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의 뜻을 불순종하고 자신의 정욕을 좇아 사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로하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영원한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형상에서 떨어져 나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상실하였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간을 긍휼이 여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셨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로 하여 인간의 모든 죄를 없이하기 위한 화목제물로 삼으신 것이다. 그 구속사는 이미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고 주께서 친히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실행하신 것이다. 그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와 그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된 것이다. 주님은 이것을 모두 이루신 것이다.
어느 날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앉은뱅이를 고치시고 그의 침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일로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고소를 당했을 때 주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아버지의 일이란 바로 사람을 죄의 저주에서 풀어 온전케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것은 모든 인류를 죄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끝났다고 외치신 것이다.
D. 당신에 관해서는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이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 것도 없다. 가룟 유다는 주이신 그리스도를 팔고 후회를 하며 예수의 몸값으로 받은 은 주머니를 제사장들에게 던졌지만 그것으로 자신의 죄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다음 자신의 마음의 번민이며 영원한 회한의 고통일 뿐이다. 당신이 당신의 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분이 당신의 죄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죄들을 위해 모두 이루셨기 때문이다. 이미 구속의 일은 다 이루어졌다.
어느날 유대인들이 주께 나와 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물었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고 말씀하셨다. 또한 주님은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어느날 한 젊은 부자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주님은 ‘네가 온전케 되고자 하거든 네게 있는 것을 다 팔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고민하며 돌아가고 말았다. 그는 모든 것을 팔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재물은 우상인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
주님은 그에게 사람에 속한 계명을 말씀하셨다. 그는 내가 이것을 어려서부터 지켰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주님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사랑했다 하셨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 향한 계명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이 우선 된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첫 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신 말씀보다 ‘내게 있는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재물은 삶의 첫번째였고 그것이 영생의 주 예수를 좇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지금 당신의 삶에서 주를 전적으로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자인가? 돈인가? 아니면 명예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우상숭배자인 것이다.
E. 공은 인간에게 넘어 왔다
영생에 이르는 공은 당신에게 던져졌다. 이제는 순전히 당신의 책임이라는 말이다. 이는 너무나 간단해서 말을 할 줄 안다면 어린아이도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주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영적인 문제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영광의 구속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던 날 성령 충만한 사도들의 복음의 메시지를 듣던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떻게 할꼬!”하고 탄식하였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 하였다. 그렇다 만약 당신의 양심이 당신의 죄를 고발한다면 속히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라. 주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을 영생의 문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곳에 진리의 영이 당신을 돕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다.
F. ‘다 이루었다’ 의 외침은 영광의 승리이다.
사람을 멸망시키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 사단의 세력은 이미 끝났다. 주님은 제자들에게세상 임금은 나와 상관이 없다 하셨다. 우리가 주를 믿을 때 사단은 더 이상 우리와 관계 없는 자이다. 그는 이미 패배했고, 세상을 구속하는 값은 십자가 위해서 치러졌다.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열려졌고 죄의 세상을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말씀하셨다. 후일 바울은 ‘우리가 수건을 벗고 주의 영광을 볼 때,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하여 그와 같이 되리라’ 하였으며 다시 ‘죄가 더 이상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라’ 증거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두 다 이루셨다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창조자의 선언이며 만왕의 왕의 판결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 장벽은 제거되었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다. 그에게 나아오는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으며, 문이 열려 있다. 아담이 하나님을 떠날 때 그는 자신의 선택적 의지를 사용했다. 이제 당신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도 똑같은 선택의 자유가 부여 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 같은 것은 볼 것 없다. 당신이 주 예수를 선택하는 동안 하늘의 수천의 천사가 박수를 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17) 하신 초청의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주어졌다. 그러나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당신의 영혼이 져야만 한다.
III. 성경의 성취의 목적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35)
A. 죽음 이후의 성취
요한은 31절 이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이후에 발생한 일들을 기록하였다. 그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였다. 유월절 주간의 금요일 즉 안식일 전인 유월절의 전날이다. 오늘날 이 날에 대하여 말들이 많지만 본절에서 말하는 헬라어 ‘파라스큐에’는 금요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또한 여기서 말한 육시는 로마시간으로 오전 6시경이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시간을 제 삼시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유대시간으로 로마 시간으로 환산하면 오전 9시다(참고 막15:25).
32절에는 군병들이 다른 사람들의 다리를 꺾고 예수 앞에 이르니 이미 숨을 거두었으므로 다리를 꺾지 않고 그들 중 한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쏟아졌다고 기록되었다. 요한은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함이라 자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증거하며 계속하여 요한은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36) 증거하였다. 요한은 여기서 우리에게 자신의 눈 앞에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이를 증거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라고 기록하였다.
요한은 흥미롭게도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기록하였다. 이는 스가랴 12장 10절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후일 요한은 밧모섬에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1:7)이라고 기록하였다. 세상은 지금 그날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주를 믿는 우리는 이 광경을 하늘에서 보게 될 것이다.
B. 믿음의 사람들
38절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었다. 먼저 예수의 제자이지만 유대인이 두려워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나아가 시체를 달라고 구하여 장례 준비를 하였다. 이에 예수님 사역 초기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에 예수를 찾아 왔던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과 세마포를 갖고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예수님의 시체를 쌌다. 그리고 못박히신 동산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었던 새 무덤에 시체를 안치하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를 만났던 사람들 중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주께 나 온 것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다가도 의로운 죽음을 보면 용기를 갖게 된다. 419의거와 천안문사건과 같은 일들이 아직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비록 죽어 무덤에 누웠지만 그의 죽음이 사람들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함에도 당신은 이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를 듣고도 양심을 외면하고 눈을 감을 것인가? 그러면 당신은 그를 찌른 사람들 행렬 속에서 주의 오심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 행렬 속에서도 당신의 존재는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늘이 구원받을만한 때요 은혜의 날이로다 기록한 것이다. 나는 속히 당신이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기를 기도한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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