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전환과 복음의 혁명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 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막3:13-15)
열왕기하 2장에는 엘리야 시대를 마감하고 엘리사의 새로운 시대가 소개되고 있다. 엘리사의 사역은 여리고 성의 수질(水質)을 바꾸는 일로 시작된다. 그 성 사람들이 나아와 이 성은 터가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청원하였기 때문이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오라 명한 후 물의 근원으로 가서 소금을 던지며 여호와께서 이 물을 고치셨다 하였다. 이와 같이 복음의 혁명은 새 그릇의 준비하는 단순한 원리로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예정하신 복음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 중 열 둘을 사도로 세우셨다. 이스라엘에 있어 열둘이란 개념은 창조로부터 낮과 밤과 연월을 나누신 것과 같이 창조적이고 우주적인 하나님의 통치 질서로서 열두 사도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주권이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세우신 목적에 대하여 ‘함께 있는 것’과 ‘보내기 위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함께 있다’는 것은 공동체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로서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와 함께 거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과 그의 계획과 함께 거한다는 말이다. 또한 공동체의 금기는 분쟁과 분열로서 이는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 마음 속에 내재된 악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주께서 열 두 제자를 세우신 두 번째 목적은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도’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히3:1)이라 칭하였다. 또한 주님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었다’(요17:18) 말씀 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가 복음의 주권을 갖고 있으며 또 그의 나라를 위하여 사도를 세울 수 있다.
또한 주님은 열 두 제자를 보내실 때 두 가지 임무를 주셨습니다. 그 하나는 ‘전도’이며 다른 하나는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첫 번째 임무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예수께서도 내가 온 것은 전도를 위함이라 하셨다. 최근 많은 사역자들이 치유목회를 말하며 마치 복음의 목적이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는 일에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귀신과 질병에 신음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역의 목적은 전도이며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를 방해하는 귀신의 세력을 쫓을 수 있는 권세가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을 주셨다 하지 않고 권세도 있게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귀신을 내어 쫓는 능력이 주님께 속한 주권적 권세임을 의미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쫓는 능력이 마치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주님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셨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세우시며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이름을 바꾸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름을 더하셨다’는 데 그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개명은 ‘인격의 갱신’을 뜻하지만 이름을 더했다는 것은 그에게 ‘부족한 것을 채운다’는 의미로서 ‘인격의 보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복음 사역자의 인격혁명을 요구한 것이다.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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