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부류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62)
주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서기관이 주께 나아와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겠습니다”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58) 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이 구도자의 선택이 무엇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한 세력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또 제사장과 수많은 랍비들의 계파를 따른 세력을 구축하듯이 그 시대를 이적과 권능으로 풍미하는 예수의 세력을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최근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갈보리채플 신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그들은 갈보리채플의 목회이념이나 철학과 관계없이 아직 한국에 없는 갈보리채플 이름으로 신학교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소망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심도 깊게 가르칠 성경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그것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그룹은 예수께서 친히 부르신 사람이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셨다. 그러나 그가 답하기를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참으로 당돌한 친구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60) 명하셨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거부하는 사람같이 보여진다. 그러나 그는 그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율법의 요구를 다 하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사람의 도리 중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주의 부르심에 대한 장애물은 오직 율법을 거역하는 것 한 가지가 남았던 것이다.
또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하신 말씀은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참으로 냉엄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는 영적 우선순위를 말씀하신 것이다. 네가 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고 세상의 일은 세상에 맡겨 두라는 말씀이다. 그 모든 일이 주의 주권 속에 있음을 언급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헌신을 함에 있어 부모의 신앙에 억매일 때가 있다.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부모님이 부처를 믿기 때문에 아버지가 조상의 제사를 섬기기 때문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주의 택하신 자라면 결코 부모의 믿음에 매여서는 안 된다. 믿지 않는 부모의 승인을 받고 예수를 믿는 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뜻을 따라 내가 믿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세번째 구도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또 다른 사람이 주께 나아와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하였다. 이에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고 내치셨다.
때때로 여러 교단에서 공부한 신학생들과 사역자들이 갈보리채플의 목회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갈보리채플의 좋은 점을 말하여 교회들의 모순점들에 대하여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보따리를 싼다. 그들이 다시 오던 길로 돌아서는 것은 자기가 배운 신학적인 교리들을 우리 갈보리채플에서 함께 수용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배운 교회의 특성은 그대로 살리고 어떤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빨리 목사 안수를 받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갈보리채플 목사가 되는 것을 호락호락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갈보리채플의 목사가 되는 것은 오직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다른 곳은 모르겠으나 내가 있는 곳에서는 나를 부르신 이의 부르심이 없이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은 오늘 우리에게 우리 앞에 펼쳐질 교회의 패턴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께서 부르셨으니 오직 당신의 십자가를 마음에 담아 두겠나이다. 모든 것이 주 앞에 있아오니 주께서 친히 이루실 것입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우리 교회를 도와 주소서! 아멘 아멘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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