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으로 들어가는 문”
(요14:6,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보았느니라”
최근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지옥이다. 거져 얻을 수 있었던 마스크 한 장에 2만원이란다. 이제는 신종 바이러스가 해마다 치러야 하는 전쟁과도 되었다. 그만큼 계시록의 시대가 가까웠다는 뜻이다. 이런 고통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평안한 삶을 살수 있을까? 재물과 권세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동서고금 인류 역사 속에서 돈과 권세로 평안의 역사는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누가 오늘 내게 당신은 왜 예수를 믿었느냐 말하면 나는 평안이 필요했습니다 답할 것이다.
주님은 그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의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27)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자기의 평안과 세상의 평안을 대비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세상이 주는 평안을 인정하며 우리에게 너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고 계신 것이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가 주 앞에서 이스라엘을 섬길 때에 엘리사는 그의 제자 게하시를 데리고 수넴으로 들어갔다. 수넴은 ‘두 안식처’ 라는 뜻으로 이 지역은 엘리사의 주거지인 갈멜산과 왕의 별장이 있는 이스르엘 사이에 있었다.
열왕기하 4장에는 선지자 엘리사와 수넴여인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수넴여인은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대접하고 남편과 의논하여 담 위에 작은 방을 하나 지어 침상과 책상 도구를 놓아 그곳을 지날 때마다 머물도록 배려하였다. 엘리사는 그녀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 보고 생각이 주밀하다고 칭찬하였다.
본의 아니게 번번히 신세를 져야 했던 엘리사는 그녀의 집을 위해 무엇을 해 주고 싶어 수넴 여인을 불러 네가 원하면 왕이나 군대장관에게 부탁하여 너희 필요를 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나는 내 백성들 중에서 부족함이 없이 평안이 살고 있다고 말하며 거절하였다. 그래도 무언가 베풀고 싶은 마음에 그의 종 게하시에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물으니 수넴여인의 남편은 늙었고 그들에게는 아들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엘리사는 수넴여인을 다시 불러 내년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말하였다. 그런데 기뻐 날 뛸 줄 알았던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이여 나를 속이지 마십시요”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엘리사의 말대로 그 다음해에 아들을 낳았다.
수넴여인은 노년에 얻은 아들로 하여 더 없는 행복을 누렸다. 자식은 그 부모에게 큰 믿음과 소망과 기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 아비가 아들을 데리고 들에 나갔더니 갑자기 아이가 머리를 붙잡고 딩굴기 시작하여 그 아비는 아이를 어미에게 데려다 주었으나 아이는 어미의 무릎에서 죽고 말았다.
이에 수념여인은 죽은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 옥상 엘리사의 침상에 눕히고 남편에게 사환과 나귀를 청하였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남편은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닌데 어찌 그에게 가고자 하느냐 물었다. 그 때 수넴여인은 “평안입니다” 답하였다. 참으로 흥미로운 답변이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평안을 말하니 말이다. 그리고 수념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달려 나갔다.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 곧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달려간 것이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 당신은 어떠한가? 과연 당신은 하나님의 평안에 들어 있는가? 만약 당신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평안이 끼쳤다면 당신은 그 어떤 인생의 고통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근심과 두려움도 당신의 평안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평안은 인생을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