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뒷발질 하는가?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님은 바울을 이방의 사도로 세우시며 “내가 너를 저희에게 보내어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요, 또 그들이 죄들의 용서를 받고 내 안에 있는 믿음으로 거룩히 구별된 자들 가운데서 상속 유업을 받게 하려 함이라”(행 26:18) 말씀하셨다.
사단의 궤계 중의 하나는 사람이 자신의 처한 실상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마약과 알코올, 성중독자들이 그것을 인정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 보라.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명백한 일을 그들은 계속해서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끊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그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 기록했다.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들의 죄를 해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한번 죽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는 끝난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선행이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게 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선행이나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걸레와 같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이 에수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넓고 쉬운 길을 찾으며 자기의 길을 찾아 헤맨다.
바울이 받은 두 번째 명령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돌아가게 하도록” 하는 일이다. 오늘날 세상은 온통 어두움으로 휩싸여 있다. 아비가 자기의 딸을 성적으로 능욕하고, 동성애, 미성년 원조교제가 공공연하고, 동물을 학대하면 법적 제재를 받으면서도 정부의 낙태 허가에 의해 오늘날 수백만의 어린아이들을 죽고 있다. 인간의 가치가 짐승만도 못한 세상이 되었다.
또한 언론들은 연일 사람들의 감정을 격동시킬만한 이슈들을 쏟아 내고 있다. 정치가들도 법조인들도 민심이라는 이슈에 감정적으로 매몰된다. 설혹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하거든 여론에 이끌려 속전속결한다. 이성적 사고와 법치주의는 사라지고 끝없는 소문과 난리의 장단 맞추어 사람들의 감정을 만족 시키려 한다.
바울이 받은 세 번째 사명은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이다. 우리도 한 때는 사단의 권세에 붙들려 있었다.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였고 베드로는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명은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진리를 보게 하고, 그들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인도하며,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단의 족쇄를 풀어 해방시킬 수 있는 권능은 오직 예수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자유케 하면 진실로 당신은 자유하게 되리라” 증거하였다.
그럼에도 아직 하나님을 믿으며 예배를 드리며 성경을 읽으면서도 예수를 핍박하고 뒷발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순간 죄의 문제가 종결되었고 완전한 의인이라 자부한다. 그러면서도 성경대로 살지 못하고 종교생활에 빠져 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베드로는“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너희에게 나으리라”(벧후 2:21) 책망 하였다. 예수는 종교가 아니다. 의인의 삶의 증거이다.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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