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12:7) 너의 봉사 유익한가?

이요나 2007. 2. 27. 12:56

(고전12:7) 너의 봉사 유익한가?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장 7절을 보면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은사는 가지고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의 집에 혼자 앉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지긋이 만족하고 즐기라고 주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은사가 주어지는 것은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으로 교회에 유익을 끼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은사를 부어 주시는 것인데 개인의 유익 개인의 덕을 높이기 위한 은사는 방언 밖에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방언의 은사가 아닌 다른 것은 모두 교회의 덕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고전14:4)」통역하는 은사가 있는 자는 그 방언의 은사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고전 14:5)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묵상의 시간에 그 사람 자신의 덕을 세우는 은사입니다. 이와 같이 개인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어지는 은사는 방언의 은사뿐입니다. 그 밖의 다른 은사는 사용하는 것에 따라 교회의 덕을 세우고 모두가 유익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배우는 동안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는 좀더 상세하고 구석구석 살펴보기로 합니다. 저는 우리가 함께 성령은사에 대하여 공부하므로서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오해나 무지들이 분명하게 해결되었으면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 . (고전12:7)」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성령의 은사에 대해 먼저 공부를 시작하고 다음에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령체험하기 테마에서 나에게 있어서 성령이 넘쳐흐르는 것과 내 안에 계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설명했습니다. 성령은 분명 우리 안에서 내주 하시고 있습니다. 내주 하심은 정말로 위대한 성령의 사역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지금까지 없었던 하나님의 또 다른 추가적(subjunctive)순수사역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면 그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가 진리 가운데로 인도되어 주(主)의 도를 깨닫게 되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이 우리를 통하여 밖으로 표출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선물이 바로 이것입니다.

 

*김치빠진 빠진 밥상*

신약에서 이 부분이 빠지면 우리는 완전히 김치 없는 밥상을 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이 부분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2%부족한 상태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아굴라와 브리스가가 발견한 아볼로의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또한 바울이 발견한 에베소의 제자들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 안에서 성령이 넘쳐흐르려면 우리 안에 먼저 성령이 내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과거 저는 높은 지대에서 하숙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고지대에는 수도가 올라오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때 동네 한 중앙에는 우물 대신에 펌프장이 있었습니다. 땅 속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 올리는 장치입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올라가면 밤새도록 폄프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땅 속에 있는 물이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펌프 속으로 한 초롱 정도의 물을 넣어야만 가능합니다.

 

성령세례는 이것과 다른 상태입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내주 함(En)과 흘러 넘침(Epi)은 다른 상태인데 바울은 지금 성령이 우리 안에서 넘쳐흐른 상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해방(解放)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부으심은 우리 안에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로 충만케 하고 흘러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성령의 흘러 넘침에 대하여 거론하고 있습니다만 성령의 목적은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목적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성도의 유익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위하여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위대한 지휘자*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은 정말로 말할 수 없는 커다란 유익이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이 우리 밖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것은 개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제 밤 텔레비전에서 러시아 고대 문화의 유산이라는 프로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프로에서 소개하는 많은 고대 교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위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경탄하였습니다. 그것을 건축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지을 수 있는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속에 잠재된 재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축이 완성되어 그 당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는 마음이 가슴에서부터 솟아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위대한 작곡가가 있다고 하십시다. 우리는 헨델이나 베토벤, 바하의 교향곡들을 들으면서 지금의 사람들로는 도저히 만들어 내지 못할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었음을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능력은 처음 그 사람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속에 있는 인스프레이션이 악보로 나타나고 교향악단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지휘자에 의하여 연주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지휘자로부터 연주된 것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줍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도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심으로 자신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가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최근 많은 옳지 않은 사람들에 의하여 성령의 은사가 자기의 명예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많은 성도들이 미혹되어 잘못된 믿음생활로 이끌려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연자멧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지 우리라"고 경고 하셨고 다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뜻대로 하는 자들이 들어 갈 것이다 말하시며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예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하는 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모르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 곁을 떠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사람들의 마음들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령은 자기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요15:26)따라서 우리는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성령의 은사인가 가짜 성령의 은사인가를 점검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성령없는 성령집회*

연일 기독교 신문 속에 성령신유 집회 성령전도 폭발 집회 광고가 대형으로 게재되고 있습니다만 그 광고를 볼 때 우리는 그 광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나 긍휼하심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 집회를 이끌어 가는 잘난 목사나 강사들의 사진을 볼뿐입니다.

 

그들처럼 성령의 은사를 이렇게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돈을 주고 사려했던 마술사 시몬에게 베드로가 어떠한 말을 하였는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네가 돈으로 하나님의 선물을 살 줄 알았단 말이냐? 네가 돈과 함께 망할찌어다!"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미리 아신 자들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성령의 선물(은사)은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교회와 성도의 유익을 위하여 성도의 삶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지혜의 은사를 서두로 하여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