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28:20)“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나니”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정점으로 이 땅에 살아 온 모든 인생들의 결산이 있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결산은 각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의 성과를 결산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영생의 문을 통과하기 위한 시험이 될 것이다.
그의 결산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나타내신 공의로 하실 것인데, 첫째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는 것이며 또 그 누구를 막론하고 현재 완료로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판단은 인생의 과거사를 계산에 넣지 않으므로, 믿는 자에게 있어서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되는 경주가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지위에 있었으며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의 가치기준이 어디에 속하였는가에 있다..
성경이 우리에게 경계하는 두 가지 죄된 속성은 탐욕과 욕정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하였고 음행하는 자는 성전을 범하는 죄를 짓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두 가지 속성은 모든 인생의 가치를 설정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어 사람들은 자기 침상을 넓히기 위해 싸우며, 넓고 부드러운 이불을 탐한다.
물론 인간에게 있어 욕망은 세상을 살아가는 외형적 가치수단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욕망이 없다면 그는 생명력이 없는 것과 같다. 또한 욕정은 생명을 체험하는 저울추로서 내적 가치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에게 있어 탐욕과 욕정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본능처럼 되어 버렸다.
더욱이 인간의 욕정은 자기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 것이 아니고 내 것이면서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차라리 이것이 남의 것이라면 간섭도하고 충고도 하고 제재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이 본능을 사모하여 스스로 노예가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존재를 가리켜 선한 뜻을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법이라 고백하였다.
최근 군포 여대생 살인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행각은 끔찍하다. 그러나 메스콤에 보도된 그의 얼굴은 평범을 지나쳐 ,선한 천사와 같다. 혹자는 그는 처음부터 유기된 백성으로 멸망받을 사단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악한 마음이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 다윗의 인생 속에서도 역사하였음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괘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마7:21-23) 말씀하였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이와 같은 죄성이 있음을 뜻한다.
성경은“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 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4:1) 경계하였다. 이는 너희가 믿음 안에서 자만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이것이 그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숙제인 것이다(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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