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한계를 극복하는 지혜”

이요나 2009. 7. 4. 18:57

한계를 극복하는 지혜”

 

(눅 1: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모세와 함께 아침마다 일본어로 누가복음을 공부할 때가 어제만 같은데, 모세는 벌써 장가들 나이가 되었다. 그만큼 내가 늙었다는 증거다. 지금까지는 나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요즘들어 눈이 침침해지는 것을 보면 나이는 별 수 없는 가 보다. 아무래도 열두 명은 세워놓고 가야하는데 갈 길은 멀고 눈앞은 나날이 가까워진다.

 

오늘부터 시작한 누가복음이 계시록까지 내처가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나 혼자 달려 나가는 열정이 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 글들이야 내 인생과 함께 지나칠 것이지만, 이 작은 노력이 긴 밤을 지새야 할 아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가복음 1장은 단연 천사 가브리엘이 압권이다. 그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났을지 우리로 아는 바 없지만, 그는 오백여년의 침묵을 가르고 고고한 모습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 앞에 나타났다. 성경에서 그를 처음만난 다니엘도 오백년의 틈을 가르고 나타난 이 장엄한 광경을 하늘에서 보고 있었을 것인지...

천사 가브리엘은 제사장 사가랴에게 ‘사가랴야, 너의 간구함이 들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나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서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이다’ 말하였다.

 

내용상으로 볼 때 별로 어려운 말은 없다. 얻지 못하던 아들을 나면 기쁠 것은 당연하고, 주 앞에 큰 자가 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의 최대 소망이다. 또한 포도주나 소주를 마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그가 이미 모태로부터 나실인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증거로서 이스라엘의 사람 중에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말을 알아듣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스가랴는 여기서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장장 오백년의 침묵을 깨고 창조이래 최고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순간에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그는 바보 아니면 실성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에게 있어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역사책이었는가 보다

 

인간은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머리로 생각한 결과만을 놓고 믿으려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현실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사가랴는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성경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 하였다. 사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의인이란 말을 들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도 성경에 기록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살지 않으면 의식주자로 변질된다. 우리는 이들을 모두 실존주의자라 한다.

 

사실 가브리엘이 전해 준 메시지는 모두 구약에서 언급된 내용들이다. 이미 예고된 사실들이 때가 되어 전달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주의 오심을 목전에 두고, 되어질 일들을 성경으로 받은 우리는 그의 오심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모두가 믿음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 누가는 서두에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라고 증거하였다. 이는 성경이 앞서 미리 말한 바,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에 관한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구분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며 내일의 오늘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미 이루어진 일들을 살펴보는 것은 내일의 일을 아는 지혜이다. 성경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시간을 초월하여 한 선에 서 있다. 그러므로 가브리엘은 지금도 있다(요나).

'세미한음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마음..육신의 정...  (0) 2009.07.18
“왜 믿을 수 없는가?”  (0) 2009.07.11
예루살렘의 기쁨  (0) 2009.06.27
“진리와 비리의 갭”   (0) 2009.06.21
“하나님의 깜짝 쑈”  (0) 200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