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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9일 오후 12:09

이요나 2013. 5. 29. 12:10

용서란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의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성경적 용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전혀다르다. 

보편적으로 용서란 상대의 잘못을 없었던 것으로 바 준다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성경적 용서란 기억에서 조차 치워버린다는 개념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시편을 인용하여 용서에 대한 개념에 대하여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 10:17) 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기억지 아니한다는 말은 회계장부에 넣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주님은 용서에 대하여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하셨으며

베드로가 형제가 죄를 범하면 7번까지 용서하오리까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번씩 이른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다.

이는 용서는 수리적인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할 덕목이라는 말씀이다.

또한 예수님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시어 용서의 개념이 일시적 감정이되지 말아야 할 것을 명시하셨다,,

그러면 용서의 정의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
"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 17:4) 가르치셨다,

3절의 말씀은 형제의 죄에 대해 취해야 할 우리의 태도와 용서를 해야할 시기를 언급하신 것으로..

경계란 죄를 짓지 않도록 죄에 대하여 상대에게 사전에 통고하는 것으로..
죄를 지은 자는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님은 용서는 자신이 경계의 말을 듣고 회개할 때 용서하여야한다고 말씀하셨다,,
회개란 하나님 앞에 돌아서는 것이지만 자신의 잘못에 되한 고백도 포함된다.

또한 4절의 말씀은

용서는 그가 행하는 삶의 결과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였는가에 있음을 뜻한다. 하루에 일곱번 죄를 짓고 일곱번 돌아와 회개하였다고 할 때 그에게 회개의 열매는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네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때 내가 용서해 주마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제자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눅 17:5) 말하였다.'

이때 주님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눅 17:6) 하셨고 다시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눅 17:7-9) 라는  말씀하신 후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말씀하셨다,

이는 용서는 믿음에 속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로서 당연히 지켜야할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하신 것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믿음으로도 넘을 수 없는 마음의 벽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에게 잘못을 범하면 상대가 그리스도의 명령을 시행하도록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고백하여야 할 것이며

이때 우리는 주저 말고 용서해 주어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상 목표인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성경적상담협회 이요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