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의 표 선한 양심-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갈수록 세상이 악해지면서 그리스도인의 삶도 강팍해 지고 있다. 부모가 어린 아이들을 유기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시대가 되었다. 하루도 끊이지 않는 악의 세태 속에서 이 종말의 날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정말 두려워 진다.
사람들은 나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겠지만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만 잘살면 되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 처음부터 누구와 함께 살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베드로 사도는 지혜로운 삶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관계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또한 믿는 사람들이 무엇인가 잘못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가는 주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열두사도를 세우실 때의 첫번째 덕목을 말하여 '자기와 함께 있기 위함'이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교회의 기초가 놓일 때 먼저 공동체적 관계성으로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으로 제사를 드려 창세전에 예비하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되돌려 놓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양과 목자의 관계가 되었고 이로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형제가 되었다.
오늘 베드로는 먼저 부부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일먼저 가정의 기초를 세우신 것과 일맥상통한다. 오늘날은 간통죄까지 폐기되고 동성애까지 만연한 세상이 되었지만 이 모든 것이 부부관계의 틀이 깨어짐으로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교회 공동체 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여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너희라는 관계성 속에 있다.
여기서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은 예수를 믿지만 아직 옛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사는 형제들을 자신도 그러했던 날들을 생각하여 그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이다.
지금은 내가 성적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목자가 되었지만 과거 예수를 믿으면서도 성도들 사이에서 행하던 더러움과 악행들을 생각하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 이는 믿는 형제들이 나의 악행을 참아주고 사랑하며 복을 빌어 준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하였다. 최근 나는 아무 이유없이 믿는 형제로부터 비방을 당하고 있다. 잠을 자다가도 분이 솟구친다. 아마 주의 권고가 없었다면 나의 조급한 성격은 화살이 되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의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하였다. 이는 곧 거룩함과 소망과 선한 양심을 지키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여 세상이 악하더라도 너는 선한 마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드라도 우리는 선으로서 악을 이겨야 할 것이다. (이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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