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혼을 창조주에게 의탁하라-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봄을 여는 겨울의 문턱에서 또 한 청년이 육체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어야 하는 비보를 들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명을 달리하는 세대에 한 청년의 죽음이 무슨 대수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예수를 믿으면서도 정체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할 때 탈동성애운동가인 나는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ㅇ
더구나 이 청년은 나사렛대학교 재학생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케 살기를 무던히도 애쓰던 학생이다. 내가 이 청년을 대한 것은 작년 여름밤 전화를 통해서이다. 이 청년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잠을 자미 못하고 있었다. 그후 지난 상해 방문 중에 이상한 문자를 보내 왔었고 상담학교 개강 건으로 문자를 보내니 그 어머니가 애통하며 전화를 받았다. 이럴 때마다 내 존재의 무익함에 대해 자괴감에 빠진다.
나 역시 청년기에 몇 번의 자살을 경험한 일이 있지만 오늘날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고 살아도 어떤 제재 받을 일이 없는 세상인데 마음으로 눌려 오는 죄의 고통이 얼마나 견딜 수 없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해마다 이런 비보를 들어야 하는 나는 하늘을 보는 것조차 버겁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의 육체의 고난은 모두 끝난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논리이며 믿음의 실상이다. 그럼에도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모두 육체의 정욕으로 인하여 큰 전쟁을 겪고 있다. 이 또한 큰 자던 작은 자던 예외가 없다.
오늘 유명을 달리한 이 청년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을 누구와 나눌 수 없다는데 있다. 차라리 이 형제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고통을 부모형제나 교회에 말하였다면 마음의 짐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나만 겪고 사는 것이 아니다. 죄성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육체와 전쟁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육체의 고난을 주께서 지셨기 때문에 죄를 이길 힘이 주어졌다. 죄의 유혹과 육체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그를 이길 힘이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오늘 베드로사도는 우리에게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벧전 4:19) 하였다. 내 혼을 주께 맡기고 선을 행하는 일에 열심하자.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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