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믿음에 부활을 담다(고전 15:1,2)

이요나 2021. 4. 4. 09:41

부활을 향한 믿음

 

(고전 15: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인도서 15장의 주제는 부활이다. 부활절인 오늘 부활에 대한 주제를 다루게 되어 매우 흥미롭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복음의 핵심이며 종결이며 성경의 대미이다. 만약 우리 교회에 부활이 없다면 이는 실체가 없는 복음으로 세상의 신화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부교회에서 부활에 대하여 의심을 갖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오늘 바울이 부활의 문제를 다루며 서두에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알게 하노니”,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2)고 선언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만약 사도가 전하는 부활에 대하여 믿지 않으면 구원도 부정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한 것이다. 그만큼 구원과 부활은 복음의 시작과 끝이 되기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3절에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증거하였다. 여기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성경대로라는 증거로서 강조하므로 우리가 받은 복음이 우발적 기사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적 실체임을 증거한 것이다.

 

만약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의 대한 실화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들의 인품과 성장과정과 시대적 상황을 소상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아무나 쓴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며 시대적 보증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이라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오백여 형제들에게 일시 보이시고 하늘로 오르신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교회 안에서 부활에 대한 의심이 화두가 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을 훼방하는 영적세력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12,13) 책망하였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의 총제척인 이슈이다.

 

종말을 사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고전 15:29)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구절은 성경 해석사 속의 미스테리다. 스탠리는 13개의 해석을 내 놓기도 하였다. 어떤 이단 해석자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을 위해 대신 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였고, 아직까지도 어떤 교회에서는 죽은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30절 말씀 곧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고전 15:30) 라는 바울 사도의 절규를 주목해야할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그 당시 박해의 시대에 죽음을 무릅쓰고 복음의 확증을 위해 세례를 베풀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며 세례를 이어간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끝으로 바울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42) 선언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에게 일어날 휴거 이벤트이다.

 

그러나 우주만물 중에 첫 행사요 마지막이 될 부활 이벤트는 모든 사람들이 초대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하여 모두 부활에 참여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수 없다고 확증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활에 초대받은 우리는 그날을 상실치 않기 위해 달려간다. 아멘^^(이요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