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2:5)진리와의 투쟁
(갈2: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하려 함이라
오늘은 갈라디아서 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바울은 복음사역 가운데 나타난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사도권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변론은 2장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글을 읽으면서 그 당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도전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사도행전 15장과 함께 살펴 보시면 그 배경을 짐작하실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의 말씀은 '복음의 진리'에 관한 것으로 크게 두 문단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바울은 5절에서 먼저
'복음의 진리'가 성도들 가운데 항상 있게 하기 위해 투쟁하였음을 기록하였습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는
베드로를 책망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두가지 주제 중 첫번째 단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 계시로 행함(1-2)
1절에서 바울은 십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이 때는 바울의 회심으로 때로부터가 아니고 회심후 삼년 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2절에서 바울은 '계시를
인하여 올라갔다' 기록하였습니다. 이 당시는 복음의 계시가 제자들에 의해 성령으로 기록되어가고 있던 시대로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인치신 자들을
통하여 성령의 계시로 교회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의 사건과 연루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에 의하여 파송되었음이 사도행전 15장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행전13:1).
또한 바울은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하였다' 증언 하였습니다. 유명한 자들이란 예루살렘 교회 가운데 세력을 구축하려는 사람들을
지칭한 것으로 그들을 사사롭게 하였다는 것은 그들을 공적으로 대하지 않고 개인적인 관계로만 인사를 나누었다는 뜻입니다. 요새말로 왕따 시켰던
것입니다.
그당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속에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초대교회에 일원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회심하고 주를 영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누가 주를 믿었다고 할 때 그들의 믿음에 의심이 간다고 하여 영입을 제재할 수 있는 명분은 없었던 것입니다.
문론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수장이 되어 사도들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었지만 그 당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란 회심한
유대인들이였고 그들 중에 오랫동안 유대의 지도자였던 유력자들은 자연적으로 세력 형성이 되었을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과 바나바는 그동안 이방인들 속에서 전파한 복음의 진리가 그들로하여 훼방받지 않기 위하여 그들과의 공론에는 붙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만이 있을리가 없었겠지요 마침 바울이 함께 데려운 헬라인 디도를 할례를 시켜 공론 조성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검은 속을 보고 있던 바울은 자신들의 사역에 관한한 그들과의 공론에 붙이지 않고 개인적인 만남만 하였고 그들이
디도에게 할례를 베풀려는 음모에 강하게 맞섰습니다. 바울은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다" 증언
하였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태도는 타협의 현실 속에 사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II. 진리의 투쟁(3-5)
바울은 4절에서 "이는 가만히 들어 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 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라"(4절) 기록하여 자신이 그처럼 완강하게 복음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것은 영적인 문제임을 시사하였습니다. 여기서 '거짓형제'라는 말은 매우 심각한 부분입니다. 바울이 '거짓 형제'라 한 사람들은 앞에서 잠간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들과 함께 예루사람 교회를 구축하고 있는 지도세력을 말한 것입니다.
형제란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혈족관계를 의미합니다. 다시말하여 한 아버지로부터 피를 나눈 형제를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를 여러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제일 먼저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된 사람의 관계입니다. 또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의 주인이며 선생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종이라 하고 또 그리스도의 제자라 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은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시며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의로운 일은 없다 하셨습니다. 주님은 친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신 것입니다. 또 주님은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에서 기다리심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는 주께서 자신의 피를 나누어 한 아버지의 아들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제 그보다 더 가까운 부부의 관계로 오십니다. 부부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한몸의 관계입니다. 이 일은 주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형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짓 형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에 초청을 받고 주를 믿어 죄사함을 받아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으로 함께 인침을 받은 그리스도의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저희가 가만히 들어 온 것은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 삼고자 함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우리의 자유 곧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당시 유대인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틀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 율법은 날이 갈수록 율법사들에 의하여 오늘날 말하는 탈무드라는 새로운 부칙이 제정되어 모든 삶에서 제재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누려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람을 정죄하는 율법에 묶여 그야말로 율법의 노예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은혜는 인간을 정죄하는 율법의 법에서 풀어내어 믿는 사람들로 그리스도의 은혜의
법안에서 자유인이 되게 하었습니다. 이제 주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인치심 속에서 한 형제로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자신의 생명으로 율법의 요구를 채우고 사망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은혜의 법으로 설정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성령의 강림으로 탄생된 교회에 임한 그리스도의 은혜와 자유함을 엿 본 유대교의 기회주의자들이 교회속에 잠입하여 들어 온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차별이 없이 모두 한 형제가 되는 그 진리의 법칙을 이용하여 그들은 주의 구속함이 없이 믿는 자들 속에 들어와
지도자 노릇을 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전 유대교 중 가장 세력있는 바리새인들 중에 유력했던 자로서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고 가만히 들어 온 교회속에서도
지도자의 입장에 서려했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이 초대교회 가운데 어떤 세력을 구성하고 있었는지는 사도행전 15장 5절에 자세히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문제로서 오직 영으로만 분변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쉽게 말하여 믿는다고 말하여 모두가 다 믿은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영적 현실 가운데서의 어쩔 수 없이 불가불 나타나는 세대의 모순을 꿰뚫어 보고 있던 바울은
그들과는 복음사역에 관한 일들을 의논하지 않고 개인적인 인사만 하였던 것입니다.
III. 복음의 화합(6-10)
바울은 그 당시 상황을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5절)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속에서 모세의 할례를 그대로 유지하려던 그들의 음모와 세력이 얼마나
강력하였는가를 증명합니다.
만약 바울이 헬라인 제자 디도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는 명분 아래 할례를 하게 하였다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룩하게 되는 복음의 진리는 무너지고 교회는 단번에 그들의 세력 가운데 다시 떨어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미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입장에 대해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든지 내가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해 준 것이 없다"(6절)고 선언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신다'는 바울의 선언은 갈라디어서의 또다른
부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으로 알고 줄서기에 여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복음의 진리 안에서의 굽히지 않는 투쟁과 노력은 사도들 속에서 힘을 얻어 결국 초대교회의 기둥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으로
하여 바울과 바나바로 이방인의 사도의 사역의 길을 여는 공식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계시로 진행된 복음의 진리를 향한 바울의
투쟁은 바울의 궅은 믿음의 실천으로 승리를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단락에서 사도들 가운데 역사하는 사단의 책략을 살펴보며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바울의 강해를 듣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