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유다서강해

(유다1:24) 자기를 지킬수 있는 힘

이요나 2005. 11. 22. 15:59

(유다1:24) 자기를 지킬수 있는 힘

 

(유다1:24)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없이 없게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이제 유다서 마지막 부분을 공부하겠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앞섭니다만 지금까지 우리의 발걸음을 한발한발 인도하신 주께서 우리의 눈을 밝혀 주께서 기록하신 계시의 말씀을 우리로 보게 하실 것입니다.

 

유다는 17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기록하였습니다. 유다는 사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제로서 유대인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비밀에 관한 모든 것과 권세는 주께서 세우신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사복음서를 비롯하여 사도바울이 입곱교회에 보낸 편지와 목회서신 그리고 베드로가 쓴 편지를 통해서 교회와 성도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며 무엇을 조심하며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말씀을 한마디로 종합하면 그리스도 안에서의 거룩한 삶이라 하겠습니다. 그를 위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올바른 믿음생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교회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무리입니다. 다시말하여 교회 지도자로 나타난 거짓 교사들과 예언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방법이 무엇인가 살펴 보겠습니다.

 

I.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르라

유다는 18절에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가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이라 하였나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들의 가르침 속에서 가장 경계하여야 할 말씀을 언급한 것입니다. 성도의 더러움이 모두 이들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A. 정욕대로 사는 자

여기서 유다는 그들이 행하는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니라 믿는 자들로서 지도자 입장에 있는  자들로 자신들은 말하기를 가장 경건에 속한 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최근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정말 믿는 자들을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얼마전 거룩한 聖民을 신앙의 철학을 삼던 은퇴 목사의 아들이자 그 교회 담임 K목사가 세칭 꽃뱀이라는 여인에게 발목을 잡혀 20억을 요구하자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잠적을 했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또 많은 유명 목사들이 해외에 파리의 연인들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두 입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면서 경건치 않는 정욕대로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기롱하는 자들이란 하나님과 교회 앞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을 말한 것입니다.  

 

  B.당을 짓는 자

유다는 이들의 특성을 가리켜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기록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교회 지도자들이 육에 속하여 성령은 없는 자라 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입으로 성령을 외치고 있을 것입입니다.

 

여기서 '당을 짓는 자'라는 것은 교회의 분열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랜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교회가 분열되었습니까? 이 모든 교회가 원래 하나로 출발한 교회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를 보면 수백개도 넘는 교파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파에 들지 않은 우리 갈보리채플이 이단인것 처럼 인식되는 교회풍조입니다.

 

최근에는 이단적 요소가 확실한데도 교새가 커지자 주객이 전도되어 이단이 아니라는 교단과 합세를 하려고 하는 추세입니다. 더우기 독립교단이라 하려 또 하나의 교단을 탄생하고도 교단이 아니라 하는 단체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들을 가리켜 성령은 없는 자들이라 못박았습니다.

 

만일 누가 이 말씀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먼저 자신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단체에 소속하여 활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나도 그 소속 가운에 한 사람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을 불러내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II. 자기를 지키는 법

유다는 20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고하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물론 유다가 지칭하는 말입니다만 사랑하는 자라는 말은 성경이 믿는 자들에게 주신 최고의 인격적 호칭입니다.

 

이 호칭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냐에게만 속한 말입니다. 이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주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올라 오실 때 하늘로부터 들린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주를 향하여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서신에서 주와 함께 높은 산에 올라 주께서 거룩한 천사들과 만나 말씀을 나누실 때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라 증거하였습니다. 또 사랑하는 자라는 호칭은 사도요한이 주로부터 받던 애칭이기도 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서신에서 자신를 가리켜 주의 사랑하는 자라 칭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는 자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속한 인격적 호칭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A. 거룩한 메시지를 들어라

먼저 유다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하였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믿음이란 믿음의 주소와 인격적 요소를 언급한 것입니다.  믿음의 주소는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가 없이는 믿음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를 믿는다 할 때 그 믿음이란 바로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나의 교훈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라 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믿었다 하는 것은 주께 속한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믿었다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거룩한 믿음이란 이 믿음이 세속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말하여 거룩이란 이 땅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나타는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서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17:1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 믿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격을 언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B. 성령으로 기도하라

 유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두번째 방법으로 '성령으로 기도하라'하였습니다. 기도는 거룩한 하나님과의 교통의 통로이며 거룩함을 유지하는 수단입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 증거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받으신다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땅에 속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는 늘 자기 중심적이되고 맙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먼저 방언을 말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하나님의 은사로서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인 우리가 알 수 없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중 가운데서 방언으로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 때의 방언은 기도라는 것보다 일방적인 전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교회나 성도들에게 전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통역이 없으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인간의 생각에 의해 좌우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인간은 늘 자기 중심적이라 자기의 유익에 속한 것을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기도와 영의 기도를 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는 이 중에서 마음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의 숙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세속에 속한 관계로 늘 마음의 기도가 끊어지고 방해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깊은 묵상의 기도는 곧 영의 기도로 어어져 기도의 삼매경에 빠지게 됩니다. 아마 바울이 삼층천 하늘에 들어 갔을 때가 이런 경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C. 영생을 기다리라

유다는 자기를 지키는 방법의 세번째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여기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목적은 '영생에 이르도록'입니다. 만약 우리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거룩한 우리의 삶에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바울은 성도의 영생을 가리켜 만약 우리에게 부활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또한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첫 열매가 된 것은 그를 따르는 우리로 그 영광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성취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의 긍휼입니다. 긍휼이란 영생의 날이 이르기를 소망하는 성도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는 세상의 고통을 이겨내는 우리의 아품을 긍휼하신 눈으로 보고 계신 것입니다.

 

   1. 긍휼히 여기라

유다는 22절에서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라"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긍휼은 우리가 작어야 할 또한 우리가 베플어야 할 마음입니다. 유다는 이 긍휼의 마음을  의심을 갖는 자들에게 베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들도 우리와 같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세상 신에게 그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미치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의 긍흉한 마음이 미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2. 불에서 구원하라

또 유다는 23절에서 "또 어떤 자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렵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이 여기라"권면 하였습니다. 여기서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는 대상은 아직 구원의 반열에 들지 못한체 불시험에서 고통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모두 공력의 시험을 받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자신의 행함에 대한 판단을 받데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온전한 믿음을 발견하지 못하여 불시험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끌어 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3. 두려워 하라

유다가 끝으로 언급한 사람들 즉 '그 육체로 더렵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이 여기라' 경계한 사람들은 거룩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에 해당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들이 불시험에 있는 것이라면 구원의 긍휼한 손을 기다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성도의 직분을 업수이 여기고 자신의 유익과 정욕에 이끌려 거룩한 성도의 옷을 더럽힌 사람들은 차라리 그 옷이라도 뿌리쳐야만 할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동안 자신도 더러움에 물 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C.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

끝으로 유다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하고 종결의 인사를 맺었습니다.

 

유다는 여기서 우리의 지키심을 주 하나님과 예수께 의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과 열정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해 자신을 지킨다 해도 우리는 한계 속에 있는 인간들입니다. 다만 우리는 거룩한 말씀과 성령의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에 힘입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히 우리를 지켜 하나님 앞에 서게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는 오직 주께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세세토록 하나님의 보좌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모든 말씀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한 여름 평안히 지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