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12:9) 크리스챤과 질병!

이요나 2007. 2. 27. 12:52

(고전12:9) 크리스챤과 질병!

 

우리는 지혜와 지식과 믿음의 은사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부분은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문제이고 또 많은 분량이므로 이미 [TOP테마강좌] 성령은사 게시판에 올려 놓았음으로 그곳을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은사는 주께서 그의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것으로 저금통장처럼 우리 임의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이 받은 은사들을 남용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이들은 장차 주님으로부터 책망과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은 신유은사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좀더 세밀한 것은 [성령은사] 게시판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지혜와 지식과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과 관련하여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그의 교회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면 신유와 능력과 예언은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을 위하여 주신 은사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 은사들은 대인관계 속에서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관계로 많은 사역자들이 무지하여 성도들을 미혹하고 잘못된 길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신유은사가 처음으로 발생된 것은 창세기 20장에 기록된 아비멜렉 왕의 처들의 닫힌 태를 여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해하지 못하게 하신 후 아브라함의 기도함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15장 26절에서 "만약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이것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킬 때 질병을 내리지 않으시겠다는 조건부 언약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사역을 시작한지 10여년 동안 한번도 병원을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잔병치례를 하던 내가 이처럼 건강한 것은 참으로 신기하기만 합니다.

 

또한 신명기 32장 39절을 보면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하셨고 또 다윗은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시103:3)라고 여호와를 송축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질병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신유은사는 예수님의 사역에 나타난 중요한 표적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수님의 선교활동을 살펴보아도 질병의 치료는 복음활동과 쌍벽을 이루는 절대적으로 나타나던 현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9장35절에도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고치시기 위하여 파송 하셨습니다.

 

또 성경은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느 동네에 들어 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왔다 하라"(눅10:8-9) 명하셨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는 "믿고 주께로 남녀의 큰 무리가 나오니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길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행5:12-16)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의 일입니다.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난 신유의 역사였습니다.

 

사도행전 28장 8절을 보면 "보빌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병을 고치는 것은 복음 전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는 사역이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성도들에 관한 하나님의 신유의 약속을 신약성경 야고보서 5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올리브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5:14,15) 그러므로 이 은사는 우리 교회에 주신 은사로서 믿음의 기도와 함께 주신 것으로 죄의 고백과 함께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이러한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연약함과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희생의 댓가를 치루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부르심을 입은 우리를 향하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을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다"(벧전2:24)고 증언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53장 5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이사야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는 그의 상함으로 우리가 나았다(you are healed)라고 하였지만 베드로는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you were healed)을 강조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빌라도는 예수를 병사들에게 넘겨주어 채찍을 때리게 하였습니다.

 

채찍을 때리는 이유는 죄수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목적입니다. 즉 자백을 위한 고문이지요. 죄수를 기둥에 묶어서 등이 구부러지게 한 후 납 조각과 동물의 뼈나 유리조각이 달린 아홉 줄의 가죽 채찍(cat-o'-nine-tails)으로 등허리를 마구 쳐 내립니다.

 

살이 터지고 피가 흘러서 어떠한 사람도 견디지 못하고 거짓 자백이라도 해야 하는 무서운 형벌입니다. 이것으로 40대를 맞으면 사람이 죽게 되므로 혹시 잘못 헤아릴지 모르기 때문에 39대를 때리는 전례가 되었는데,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로마 병사들에게 이러한 형벌을 받을 번하였었습니다.(행22:24-29)

 

성경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들의 뼈를 꺽은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들의 다리 뼈를 꺽는 것은 빨리 죽게 하기 위하여 입니다. 병사들이 예수의 다리 뼈를 꺽으러 왔을 때 주께서 이미 죽은 것을 보고 그들은 다리를 꺽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을 쏟아 내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그의 뼈가 하나도 꺽이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이루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깨뜨린(broken) 나의 몸이니 받아 먹으라"이라 기록되었지만 이것은 그의 뼈가 깨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그들에게 채찍에 맞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하신 말씀처럼 그가 채찍에 맞으심은 우리의 질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입니다. 주께서 이유 없이 매를 맞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질병과 연약함을 담당하기 위하여 채찍을 맞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잘못 행하여지고 있는 성찬식을 지적하면서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나니"(고전11:24-32)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찬을 대하는 사람들이 이것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깨뜨리신 그의 몸이다 라는 의식 없이 하나의 종교의식으로 행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병을 고칠 수 없었다는 말한 것입니다.

 

주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드시며 "떡을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20) 하셨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이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은 많은 교회들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의 죄사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가 맞음으로 우리가 나았다"는 말은 지내쳐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이 부분을 도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피 흘리심은 기억하면서 몸을 깨뜨리신 것은 기억하지 않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 씀을 통하여 우리가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기 위하여 제일먼저 "주께서 채찍으로 맞음으로 우리가 나았다" 라는 말씀을 믿어야 할 것이며 주께서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신유의 은사(gifts of healing)을 주신 것을 믿어야 하며, 또 주님은 죄사함과 함께 이러한 권세를 교회에 주셨음을 기억하고 병자들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중에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채찍을 맞을 때 우리의 질병이 이미 나음을 입었음을 믿는 믿음을 갖고 그 말씀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기적의 은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