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2:8) 지식이 저금통이냐?
(지식은사2) 지식이 저금통장인줄 아느냐?
하루는 주께서 제자들에 "사람들이 나를 무어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라고도 합니다"(마16:13,14)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으신 주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6-17)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알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 지식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지식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의심과 회의가 쌓이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영이 사람 마음 가운데 오셔서 우리가 예수를 자신의 주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지식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말씀이신 것을 그리고 장차 오실 것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지 아니하면 한 사람도 내게 올 자가 없다" 고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가 누구이심을 알게하는 지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지식의 말씀을 받았다해도 항시 써먹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의 주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그의 때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엘리사를 통하여 어떻게 지식의 은사가 나타났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지식의 말씀이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는 저장탱크가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실례를 성경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리야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엄청난 많은 영적 축복을 주셨습니다. 난세에 영웅호걸이 난다는 속담과 같이 그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였습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두 동강이가 나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져 통치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정치적 수단으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단을 세우고 아무나 제사장들을 세우는 바람에 그야말로 영적혼란이 극심한 시대였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나타났던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도 가장 영적으로 타락했던 시대로서 그 당시 아합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합은 이세벨이라는 이방여인과 결혼을 하였는데 그녀는 850명의 바알신을 위한 제사장들을 거느리고 갖가지 술책으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왔습니다. 겨우 하나님의 명목을 이어오던 남유다 왕국도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왕비로 맞는 바람에 후일 나이 어린 요아스를 제외한 왕자들이 몰살 당하는 환난을 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단은 이처럼 메시야를 낳을 혈통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끈질기게 역사하여 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 가운데에서도 꾸준하게 그의 종들을 보내어서 하나님에게 돌아오도록 권념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보다 북 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선지자가 더욱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적 후계자였습니다. 그를 어떻게 부르셨는지는 열왕기상19장16절 이후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벨므훌라라는 이름이 '목장의 춤추는 여인'이라는 뜻으로보아 그는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 '사밧'(살핌, 판단)은 매우 조심스럽고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는 그 아버지의 상속자로서 열심히 어버지를 도와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엘리사를 지명하여 주셨고 엘리야는 엘리사의 밭가는 일터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그 후 엘리사는 엘리야의 수종이 되어서 엘리야의 하늘 승천까지 섬김으로 하여 다른 선지자 생도를 제치고 엘리야의 영적 후계자자가 되었습니다.(열살19:21, 열하2:1-14)
*하나님이 알게 하지 않으심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부어주셨습니다.(열하2:9,10) 그 후의 엘리사의 행적을 보면 사실 엘리야보다 엄청난 일을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와 같은 일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일을 하리라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커다란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는 물에 빠진 도끼자루를 나뭇가지를 던져 넣어 떠오르게도 하였으며 보리떡 이십으로 일 백여 명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 엘리사에게도 아주 간단한 것을 알지 못했던 사건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열왕기하 4장 8절 이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엘리사는 그의 종 게하시를 거느리고 수넴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 마을에는 아주 현명한 여인이 하나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한 남편의 아내로서 엘리사가 지날 때마다 그를 강권하여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여기서 강권하였다는 말은 간청하여 모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말하여 엘리야의 숙소를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엘라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머물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자 엘리사는 그의 종 게하시에게 이 여인을 위하여 무엇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왕이나 군대장관에게 청하여 무엇인가 답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나는 내 백성들과 일반으로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거절하였습니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한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었습니다. 게하시는 그들에게는 아들이 없이 늙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에 엘리사는 그 여인을 다시 불러서 "내년이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은 "나를 속이지 마십시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늙어서 태가 닫힌 지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말대로 그녀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참으로 그녀에게는 노년에 맞는 아들로 하여 매일저녁 신나는 짜장면이었겠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아버지를 따라 들에 나가서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어미의 무릎 앞에 데려다 놓자 죽었습니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지요. 그러나 수넴 여인은 당황하지 않고 죽은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침상 위에 눕혀 두고 남편에게 말하여 말을 이끌 종 한 사람과 나귀를 준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여인은 초하루와 안식일이면 엘리사 앞에서 나아가 예배를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남편이 그녀에게 "오늘은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닌데 어찌하여 그에게 가려느냐?"고 의아해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그녀는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종에게 "내가 말하지 않거든 나의 달려갈 길을 천천히 가게 하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정말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의지가 확고한 여인이었습니다. 노년에 얻은 아들이 죽었는데도 그 죽음을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그녀는 엘리사에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녀는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녀는 갈멜산으로 달려가 엘리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멀리서 한 여인이 달려오는 것을 본 엘리사는 그의 종 게하시에게 "수넴 여인이 아니냐?"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믿음의 사람이 달려오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넴 여인이 말에서 내려 엘리사의 발 앞에 엎드려 엘리사의 발목을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나이는 먹었어도 엘리사는 나처럼 아직 총각이었나 봅니다. 게하시가 보니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감히 이방인 유부녀 주제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종의 발목을 끌어안다니... 지금부터 수 천년 전의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이것은 말도 안되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지금부터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기절초풍한 게하시가 나아가 그녀를 끌어내리려 하니 엘리사가 그에게 일러 "가만 두어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르셨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모르시는 일이..
예수님에게도 이러한 일에 대한 기록이 신약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어느 부분에 대하여는 하나님으로부터 제한을 당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2징 24절을 보면 사람들이 많은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었으나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아시기 때문에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빌립이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데리고 예수께 이끌고 왔습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비웃었었습니다. 그가 예수 앞에 이끌려 오자 예수는 그를 보고 "너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네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그의 속이 청결한 것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하셨습니다. 이에 나다나엘은 "랍비여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굴복하였습니다. 주께서는 그에게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하셨습니다.(요1:44-49) 제자들은 주께서 떠나실 무렵이 돼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나이다"(요16:30)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부활 후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하셨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성령에 관한 것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물으니 예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행1:7)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고난 받으시기 전에 종말에 있을 일들을 말씀하실 때에도 하셨던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무화과나무 비유를 말씀하시며 이와 같은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하시며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막13:29-3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이 허락할 때에만 열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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