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4장) 방언은 끝났는가?
*서론*
오늘은 방언은 과연 끝났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방언이 뭐 대단한 것이기에 이처럼 왈가불가 할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에 왈가불가 길게 할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방언은 성도의 믿음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 교회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모두 방언 말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 준 것이 아니라고 전재되었지만 합당한 자에게 즉 주실 자에게는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동안 교회사 속에서 '방언은 끝났다'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내려왔습니다. 이들은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들어서 그렇게 주장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서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2장 뒷부분부터 문맥을 따라서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은 지금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을 비교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영원히 계속될 것과 끝날 것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따라서 8절에서 말하는 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과 일시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먼저 우리의 믿음생활은 한계의 삶 속에서 영원의 세계로 전환됨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아니 벌써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영원의 세계로 출발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육체의 장막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에게 범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은 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 새로운 영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이 이르는 법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죽음이라는 한계 속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 즉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이며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아직 한계 속에 살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이 육체의 한계를 벗는 날 우리에게 방언이나 예언이나 지식이나 신유나 모든 것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육체의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벗어나 영원의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에게는 더 큰 믿음, 소망, 그리고 무한의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끝나지 않는 영원 속에 속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
*방언은 끝나지 않았다! *
'방언이 끝났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13장의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리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8,9)는 말씀을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는 부분을 살펴볼 때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구분되어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9절에서 "우리가 부분적을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언은 예언과 지식과 또 다른 은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즘 많은 교회에서 이 부분에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방언으로 예언하고 방언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방언으로 예언하고 방언으로 가르친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예언과 지식은 사람이나 교회를 향하여 하는 것이고 방언은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나 교회 속에서 방언으로 예언하고 방언으로 가르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방언을 예언의 도구나 가르치는 도구로 사용한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14:2)고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가르치는 도구가 아니며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이나 계획을 전하는 도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성경은 완전한 계시인가? *
방언은 초대교회 시대에 국한된 은사라는 주장은 10절의 "온전한 것이 올 때"를 요한 계시록까지 완성된 성경이라고 해석하는 데서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근거가 아니고 그들의 추론일 뿐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완전한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먼저 방언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시록까지 완성된 성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의혹의 부분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면밀히 말하여 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를 완결한 책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알아야 할 지식과 이해해야 할 것들을 기록하여 주신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우리 성도들이 필요란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모든 계시를 다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0장을 보면 일곱 천둥이 발한 소리를 요한이 기록하려 하였을 때 기록치 말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 요한복음 16장 12절에서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말하노라"(고전3:1)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한계 속에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일들을 모두 계시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 한 것입니다.
* 알고 있는 것만큼 무지이다! *
초기 신학자들은 '완전한 것의 나타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해석이 문맥의 흐름상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은 계시적인 은사에 해당되지마는 방언은 그렇지 않음을 앞에서 설명하였습니다만 그러면 과연 우리는 완전한 지식을 알고 있는가 하는 의혹을 갖게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서 "우리가 이에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하였습니다. 나는 다른 부분에 비하여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말하여 성경에 대하여 무지합니다.
섹스피어도 "인간은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무지다"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특정 분야에 대하여 연구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음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도 그 일부를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것이 오면 모든 것을 얼굴을 대면하고 보는 것과 같이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서 "완전한" 이란 단어는 그리스어로 중성이므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니고 말씀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만 그들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영" 이 모두가 중성으로서 제3위 하나님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완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아멘으로 끝날 때 *
또 방언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임을 증명하는 말씀은 사도행전 2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순절 날 제자들이 기도 중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할 때 사람들이 놀라며 의혹하여 새 술에 취한 것으로 생각하고 조롱하였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2:17-20)고 예언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엘의 예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엘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세는 언제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또한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디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나는 우리가 사는 시대도 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언된 "말세"는 대환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증거된 대환난 시대의 징조 중 하나는 태양이 빛을 잃고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대환난에 대한 예고나 계시록에 나타난 대환난에도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과 동일한 태양과 달의 징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대환난 중에도 성령의 은사, 즉 예언과 가르침과 방언을 계속될까요?
요엘을 그에 대하여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예언도 페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와 연관하여 생각할 때 예언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 방언도 지식의 가르침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며 예언이 끝날 때 방언과 지식도 함께 끝나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따라서 방언의 은사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우리의 믿음 생활 속에서 떨어질 수 없는 할 중요한 은사로서 개인적인 기도생활 속에서 믿음을 굳건히 세우기 위한 중요한 은사로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나 회중 가운데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규제를 따라 질서를 갖어야 하는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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