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고린도전서

(고전16:18)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

이요나 2007. 2. 27. 13:10

(고전16:18)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들

 

(고전16:18) 저희가 나와 너희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주라

 

오늘로서 고린도전서가 막을 내립니다. 6개월에 걸쳐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만 좀더 깊은 사색과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바울 통하여 하시고자 했던 말씀들을 온전히 조명해 보지 못한 것이 자못 아쉽기만 합니다. 내 생전에 다시 고린도전서를 강해할 기회가 있을런지...늘 충실치 못함에 죄스러울 뿐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바울이 그의 서신을 통하여 말한 바 헌금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헌금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헌금이란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서 성도를 섬기기 위한 사랑의 실천임을 배웠으며 헌금의 위치가 크리스챤의 삶 속에 얼마나 높은 위치에 속해 있는 것인가를 살펴 보는 기회였습니다.

 

오늘은 헌금과 함께 우리 크리스챤의 삶 속에 가장 고귀한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5절과 6절에서 자신이 행하여야 할 목회 계획에 말하며 그에 필요한 준비에 대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는 언어는 마치 장성한 아들에게 아들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과 함께 일치되기를 권하는 것처럼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면서도 강권하는 부모의 마음이 역력합니다.

 

물론 바울이 말하는 바는 실로 성도들의 믿음의 실천에 가장 고귀한 부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만 그것은 물질과 헌신과 봉사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실로 오해의 요소가 돌발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처럼 조심스럽게 대하는 이유에 대하여 잠시 여러 가지 각도를 통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1장으로부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음을 공부해 왔습니다. 그들은 다른교회들보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입은 반면 그들의 태성은 정말 보잘 것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과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였습니다. 바울은 2장 26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미련하고 약한 존재였으며 천하고 없는 존재로서 세상에서 멸시 받는 존재들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무한 지혜와 능력을 받아 온세상의 자랑스런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자신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타난 권능으로 자신의 본래의 위치를 망각하고 정말 무질서하고 균형없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 가운데 욕되게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심장이 되어 그들을 가르친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도 겪으셨는지는 모르지만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육체의 향락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란 성정이 급박하고 고집이 강하여 전쟁터를 달리는 말과도 같으며 소금가마를 걸머진 나귀와도 같습니다. 바울은 시편32편에서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쾌락과 자기 교만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중심이어서 무엇인든지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생각하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자폐증 아동들을 살펴본 일이 있는지요? 또 결벽증 환자와 같이 특별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겪어 보셨는지요. 이런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자성된 성격이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2차적인 환경 속에서 생성된 특별한 성격으로 이것을 의학적으로 다중 성격자라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요나 목사가 어떻게 그런 것을 잘 아느냐고 하시겠지만 사실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였기 때문입니다 .

 

이 사람들은 대개 정적이고 감성적이여서 마음이 여리고 어떤 일에 쉽게 충동하며 흥분하며, 조급하며, 말의 실수가 많으며 또 피해 의식에 민감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배운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원리 중 꼭 가추어야할 2가지 원리가 결여된 사람들이며, 7가지 버려야 할 부분이 가득찬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며 야생마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임하니 어떠했겠습니까? 정말 안하무인이 되어 기고만장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제 그들을 향하여 나이든 아들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바울의 마음을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또 한가지 이유는 주변에서 바울을 비웃고 모함하려는 무리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있어서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바울의 복음전도를 방해 하며 늘 비방을 퍼부었습니다. 그들이 늘 비방하는 일들은 바울의 사도권과 또 성도들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과도 관계가 깊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적과 기적이 나타나는 곳에는 또 많은 물질과의 문제가 대동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러한 오해를 받지 않고자 바울은 헌금을 그들이 추천한 사람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전달되도록 하였으며 또 자신도 함께 하여 거대한 헌금이 전달되는 과정 중에 불미한 사건이 발생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했습니다.(3-4절)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서와 균형이 잃은 데에는 자신의 책임도 있음을 시인하면서 이제는 오며 가며 둘르지 않고 한 겨울 정도는 그들과 함께 묶을 것을 소망하고 있었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여만 가능한 것을 피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들 가운데 묶기를 원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그들과 함께 사제의 정을 나누는 일도 중요하지만 다음 사역을 향한 중요한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 갔을 당시 서원한 바가 있어서 머리를 깍은 일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의 복음을 위해 사도적인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갖었습니다. 물론 이방교회의 전초지로 안디옥 교회가 있었지만 아시아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을 연합하고 격려하여, 이방 세계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하나님의 기업 복음의 요람을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가장 합당한 곳에 에베소였으며 바울의 사역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기도와 인력과 재정적 지원이 필요했고 바울은 그것을 고린도 교회가 맡아 줄 것을 소망했던 것입니다.(8,9절)

 

이러한 준비를 위한 작업과 또 고린도 교회의 잘못된 신학적 부분을 바로잡고 성도의 본분과 믿음의 질서와 균형을 바로잡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의 여정을 위해 그의 수제자 데모데를 먼저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각 교회에 디모데를 천거하며 그는 성경적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성도를 섬기는 은사를 가진자로 "너희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없다" 말하며 그를 가리켜 나의 아들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아직 젊은 나이로 세상 깊은 곳에 살 던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 너의 나이 어린 것을 업신 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한 바 있습니다(딤전4:12). 아마 디모데의 심정이 온유하고 연약하여 깊은 세상을 살던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심정이 마치 어린양을 사자굴로 보내는 듯하였던가 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 없이 너희 가운에 거하라" 하였고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이 보내어 내게 오게 하라" 명하였습니다. 참으로 디모데를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이 짐작됩니다.

 

바울이 이처럼 디모데를 간곡히 천거하는 이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1장에서 배웠듯이 성경학자인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 담임으로 있으면서 아직 그들의 지식이 하나님의 경륜에 이르지 못했던 관계로 교회 가운데 분열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아볼로의 지식과 가르침이 얼마나 높았던지 바울과 베드로와 그리스도파와 함께 아볼로파가 섰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높은 지식을 동경하여 그가 다시 오기를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자신으로 인하여 그러한 불상사가 생긴 것을 마음 아파하며 고린도교회를 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천거하며 그들의 믿음생활에서 중히 여겨야 할 일들에 대하여 먼저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는 모든 일에서 사랑으로 행하라"(13,14절)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인간사에 집착하지 말고 실제적인 믿음의 본질을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그 정도로 아직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정적인 요소 그리고 명분에 치우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일을 좀더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믿음과 섬김의 증인인 자신의 첫 열매 스데바나의 가족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아덴 지역에서 바울의 전도로 처음 얻은 제자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고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도 이들이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전달하였으며 이 편지 또한 그들에 의하여 고린도에 전달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를 향하여 스베바노 가족을 가리켜 "이같은 자들과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 가운데 함께 하지도 않으며 일도 하지 않으며 높아지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은 스데바노와 함께 온 사람들을 가리켜 "저희가 너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말하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기 중심적이고 갑자기 임한 하나님의 은사로 믿음의 경륜을 가추지 못하고 교만해져 있던 처지로 자신들이 받은 은혜가 사도들의 기도와 간구로 이루어진 것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근원인 사도들이 세상 가운데 처한 어려움을 미처 생각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스데바노 일가가 바울을 사역을 성실하게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자들을 알아주라"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화끈한 말입니까? 오늘날도 우리 교회 가운데는 자기만족에 빠저 종교활동에 매달려 지도층에 아부하고 성도를 섬기는 일에 소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의 궁국적인 의도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모두 스데바노 가족처럼 성도를 온전히 섬기는 실제적인 사역자들이 되기를 권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헌신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성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성도를 부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 중 믿음의 경륜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바울은 먼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천거하였고 또 자신의 열매 스데바노의 가족을 천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영원한 믿음생활의 동역자 아굴라와 브리스가를 천거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재물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내 놓은 사람들로서 그들의 특징은 온전한 말씀을 실천하고 가르치며 성도를 섬기는 일이였습니다.

 

끝으로 바울은 이들과의 성도들의 거룩한 입맞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열매들과 온전한 교제가 잘못된 우리의 믿음을 바로잡고 온전한 믿음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나는 이 기쁨을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에 가서 누릴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성도의 입맞춤이 성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지대한 것입니다. 나는 성도의 거룩한 입맞춤이야말로 세상 가운데 펼쳐지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오늘 이처럼 고린도전서 전체를 공부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저의 부족하고 게으름을 용서해 주시고 미흡했던 부분에 더욱 열심을 내어 복음의 진리를 한층 더 깨닫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도 나와 동일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요.

 

저는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께서 임하시느니라"(마라나타)라고 말한 바울의 마지막 경고를 두려워 합니다.그것은 그만큼 주께서 우리 가까이 와 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좀더 깊이 사고하는 실제적인 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