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디도서 강해

(디도서2:11)구원의 목적

이요나 2007. 3. 2. 10:56

(디도서2:11)구원의 목적

(딛2:11)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런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우리는 1장에서 선교사의 책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세계각국으로 많은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 원주민 선교가 아니고 무슨 한국인 단합대회 같은 교회 조직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 일본의 한국교회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왜 바울이 디도에게 이러한 편지를 남겼는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오랜세월 그리스도교회가 원주민 속에 서도 원주민들이 더욱 악해지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바울은 어느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는 말은 그 이유가 더러운 이를 탐하는 잘못된 사역자들의 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나는 동경에서 7년간 생활을
 하였는데 그곳 성도들의 생활은 세상사람들 보다 더 악했습니다. 술장사 도박 사채놀이 건달 기생들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악한 사람들의 집단과 같았습니다. 교회는 육체를 팔아 영혼을 사려는 도살잘과도 같았습니다.

 * 건전한 교리
바울사도는 1절에서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것을 말하라'는 말씀입니다. 최근 우리교회 교육전도사로 있는 형제가 친구들 때문에 고역을 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친구들이란 우리 교회에 나오던 젊은 청년들이였습니다만 무엇이 틀어졌는지 다른교회를 나가며 모세에게 나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비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 친구들은 결국 구원에 관한 내용에 대하여 계속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한번 구원을 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가룟유다는 없었을 것이며 데마도 구원을 받았을 것이고 음행하는 자를 사단에 내어 준 것도 언어도단이 될 것입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공평하신 품성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중생와 성화에 대해 온전한 지식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우리 교회에서 고린도전서 정도를 공부하고 튀쳐 나갔습니다. 제가 설교도중 술먹고 음행하며 담배 피는 자들은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생각을 말라는 말을 듣고부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담배를 물고 승천할 생각은 아예 말아야 합니다. 하늘이 두쪽나도 음행하는 자나 담배를 피던가 술 취한 자들은 결코 하늘에 못 올라 갑니다. 이것은 항상 현제 완료형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목사는 모든 가르침에서 건전한 교리에 합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 아침에 터득되는 지식이 아니라 성결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생활 속에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을 때 더해지는 은혜인 것입니다.

최근 저는 디모데서나 디도서를 통해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터득하지 못한체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뿐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성경을 순서에 입각하여 전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알게 됩니다

 *늙은 남자

바울은 2절에서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목회에 있어 그 가르침이 늙은 남자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바울은 늙은 남자들의 절제를 요구하였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절제라는 단어 앞에 '맑은 정신을 갖고'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술취한 것처럼 엄벙덤벙대지말고 선택적 가치를 구분하라는 말입니다.

나이 많은 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너무 조급히 어떤 일을 쉽게 결정해서 실패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젊은이의 실수는 다시 돌아 갈 기회가 있지만 늙은이들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신중함과 자제(우리 성경은 경건과 근신)을 요구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건이란 헬라어 '셈노스'는 위엄있고 진지한 행동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여기서
 
근신은 자제의 마음 즉 통제할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결국 노인들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이가 들면 남은 인생을 정리하면서 근신하고 절제로 자신의 위엄을 지켜야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조급해지고 무엇인가 쉽게 결정하여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 쉽니다. 최근 각 교회의 장로들이 이러한 문제에 휘말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늙은 여자

두번째로 바울은 늙은 여자로는 술의 종이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라고 그르쳤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술의 종이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헬라문화의
 풍습과 기후와 문화생활과도 관계가 있겠습니다. 아직 그 당시 여자들은 사회참여가 확장되 있지 않은 때로서 여자들은 집안에서식탁를 준비하며 손접대를 도맡아 오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게 되었고 여러가지 스트래스로 인하여 자연 알콜 중독자들이 되었습니다.

더우기 나이가 들면 자녀들도 다 성장하였고 자신의 할일이 없어지게되면 주변의 여인들과 어울려 술타령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비단 술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해서는 않됩니다. 많은 여인들이 백화점이나 또 찜질방 온천 등을 전전하며 술취한 여인처럼 사치행각을 벌이고 있습니다.

바울은 노인 여인들로 젊은 여인들을 가르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풍습에도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집갈 처녀나 또 며느리가 들어 오면 부인들은 젊은 여인들로 남편을 섬기며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5절에서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하며 선하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인들로 하여 발생하는 문제가 많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를 가면 여인들이 더욱 많습니다. 어떤 교회는 여인들의 사교장처럼 되어 가고 있기고 합니다. 그들은 얼마나 대가 쎄든지 남편을 제멋대로 휘두르기까지 합니다. 교회에서 남자들은 어쩌면 바보같아 지기 일 수입니다. 여자들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받는다는 말씀에 다시한번 귀를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젊은 남자들의 모범
바울은 6절에서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지금 이 말은 디도에게 젊은이들의 모델이 되라는 것입니다. 모범이 되되 먼저 선한 일과 부패치 않는 교훈 다시 말하여 가르침의 순수성을 말한 것입니다. 또 바울은 바른말 즉 일상의 보편적인 대화에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은이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면 심한 농담에까지 휩쓸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후일 그들이 잘못했을 때 정작 다스릴 체면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친구로 생각하고 책망할 때 대적하게까지 됩니다. 사실 저는 젊은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런 일이빈번하게 일어나곤 합니다. 성경에 이런 부분까지 세세히 기록하였다니 정말 놀랍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9절부터 바울은 종들의 태도를 말하여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하였습니다. 종들이 주인을 대하는 태도가 먼저 기쁨의 순종과 공손한 언행입니다. 또 물질적인 손해를 입혀서는 않되다는 말씀 또한 귀감이 될만 합니다.

* 하나님의 양육하심

바울은 11절에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런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의 살아 있는 동안의 긴 기간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 양육하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세상 살면서 온전한 자기 인생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모든 세상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켜
 온전한 언행과 품위로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 즉 그리스도의 온전한 양육 가운데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지키는 것이 복스런 소망 즉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지름길인 것입니다.

바울은 끝으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하였습니다.

지금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문제와 성결한 삶의 문제를 별개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인생이라 생각하고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왔으니 그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깨끗케 하신 것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하심'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깨끗함이란 영과 혼과 육 그 모든 것을 다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들에게 오직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것을 가르치라 한 것입니다. 부디 모든 것에서 성결하한 백성이 되어 그의 친백성으로 하늘의 상급을 받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