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상담

내적치유의 성경적 비판(4) – 현재냐 과거냐?

이요나 2007. 4. 18. 19:19

내적치유의 성경적 비판(4)   현재냐 과거냐?

   내적치유는 인간의 기억을 치료한다는 심리적 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적적인 태도를 재확인하면서 부정적인 인간의 정서를 극복할 때 사용하는 기법이라고도 말한다. 내적치유는 주로 인간의 과거와 관계가 있거나 과거 때문에 생기는 죄책, 분, 두려움, 미움, 질투, 낮은 자신감이나 자존심 등의 부정적인 정서를 다룬다고 한다. 내적치유에서는 인간의 문제가 과거와 관련됐다고 하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과거와 인간의 기억에 대한 것만을 다룬다.

  
피상담자는 누구나 과거를 갖고 있으며 그 과거는 흔히 현재의 생활과 관련이 있다. 또 상담자도 누구나 과거에 대한 견해 즉 과거와 현재와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견해나 이론은 말로 표현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상담자는 누구나 과거에 대해서 자기의 이론에 부합된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또 과거가 상담자에게 주는 문제들은 그 차원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서 과거는 상담의 문제이다. 상담자는 누구나 피상담자의 과거를 다루게 된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항상 자기의 과거에 직면하게 된다. 결혼 생활의 문제로 상담을 받던 부부가 있다. 여자는 믿는 사람이고 남자는 불신자이다. 그런데 4번째 상담 모임에서 여자의 과거가 드러났다. 어려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그의 큰오빠에게 성적으로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담자의 머릿속에 즉시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게 했다: "이 사건과 현재 남편과의 관계가 연관되어 있을까? 관계가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할까?  만일 그것을 다루어야 한다면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등의 생각이다.

  또 다른 결혼관계의 문제에서는 남편이 간음을 했다. 부부가 모두 예수님을 믿는다. 남자가 회개를 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용서했다. 그런데 부인은 말이 많은 여자이기 때문에 성경을 잘 알고 있어도 말을 많이 했다.

그러므로 용서는
(1) 상대에게 그 말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2)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다시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약속인 것도 알고 있었으며,
(3) 또 용서는 자신에게도 그것을 다시 상기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인 것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상담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주 강조해서 했다.


이 때 상담자는 생각을 했다: "저 여자는 믿음도 좋은 여자인데 왜 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가르침이 부족한가 아니면 훈계(훈련)가 부족한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과거의 문제는 없을까?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나? 이 문제 때문에 현재의 문제가 생긴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또 다른 한 여자는 "불안"의 문제로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상담 중 그는 "저는 제가 네 살 때 한 친척에게 강간을 당한 기억이 가끔 순간적으로 나타나는데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런 것을 과거의 회상 장면으로의 전환하는 플래시백(flashback)이라고 하는데 "이런 것은 어떻게 하면 될까? 정말 억제된 기억이란 것이 있는가?" 하는 질문들은 상담자가 당면하는 과거에 관한 질문들이다. 그래서 과거는 상담의 문제가 되고 상담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과거의 문제를 다룰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한 "문화적"인 문제로서 현재 대단히 유행하고 있다. 교인이나 비교인이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어보려고 과거를 더듬는다. 그래서 이제 "과거"는 그 자세가 당당하게 되었다.

 

"과거"와 과거 때문에 "피해"(victimization)를 보았다는 주장은 TV의 Oprah 등에서도 열을 올리는 프로들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의 행동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역기능 가족에 관한 문헌을 보면 미국 내의 가족 중 96%가 역기능 가족이라고 한다. 이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사실은 미국 내 가족의 100%가 역기능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사람은 누구나가 죄인이기 때문에 역기능이 아닌 가족은 없다. 결혼을 해서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역기능가족 안에서 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도 죄인임은 틀림없다. 죄인이며 그 죄가 가족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자녀를 키우든지 그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서 불평이나 반항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기능 가족의 문제는 모든 가족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과거가 현재에 끼친다는 영향 때문에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피해자(victims)이며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가족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돋구어 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던지 그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하게 된다. 나의 가족이 역기능을 했기 때문에 나의 부모가 삶에 필요한 힘을 나에게 주지 못했고 그 결과로 나의 삶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의 행동이 중독적이 되어 나의 기능도 독소가 있는 병적 형태가 됐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문제는 그 이유가 과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도 형제도 심지어는 목사도 모두 불완전했으니 나에게 이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과거의 이론을 믿고 우리의 문제 속으로 하나님을 끌어드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J.I. Packer는 그의 저서 "Knowing God"(p. 74)에서 "오늘 날 사람들은 하나님도 인간들과 같은 인격을 소유한다는 말을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약하고 적합하지 못하고 비효과적이며 좀 서툴게 보인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의 역기능적 배경 속으로 하나님을 끌어들여 우리와 같은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어 "하나님! 당신도 그렇게 대단한 분이 아니시군요.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칠 때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만일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그 때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정말 당신이 하나님이란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당신도 우리와 같이 약하고 별 힘이 없으신 분이군요? 그러고도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나를 도와준다고 하십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를 고쳐준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정말 거기 계시다면 말 좀 해보세요!"라고 말들을 한다고 했다.

  우리가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하나님을 보면 언제나 하나님을 왜곡하게 마련이다. 물론 우리의 경험을 하나님에게 가지고 가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도 하나님에게 가지고 가야 한다. 성경에서도 이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보려고 하면 하나님을 왜곡하게 된다는 말이다. 성경은 이와는 반대로 가르친다. 즉 문제가 과거의 문제든 현재의 문제든 우리의 경험에서 출발해서 하나님에게로 가지 말고 먼저 하나님에게서 출발해서 경험을 보고 그것을 다루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지 정의를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함을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해서 축복이 되는"(롬 8:28)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문화 즉 "피해자(victimization)"의 문화를 반사하며 살고 있다. 무엇이나 잘못되는 것은 모두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건을 지고 가다가 허리를 다쳐도 그 물건 위에 "이 물건을 들고 가면 다칠 수 있다"라는 경고문을 생산자가 그 물건 위에 부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한 관리가 공금으로 도박을 했다가 실직을 당해 정부를 상대로 고소했다. 고소 내용은 "나는 도박을 하는 중독(병) 때문에 도박을 했는데 해직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승소를 하고 다시 그 직장을 찾았다. 어느 학교 선생은 항상 학교에 늦는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교육부를 상대로 고소를 했다. 그는 "강박적 지각 증상(Compulsive Lateness Syndrome)이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도 승소했다. 이제는 사람을 죽여도 얼마든지 무죄가 될 수 있는 것을 본다. 지금 우리는 "피해자(victims)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자기를 피해자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애들이 자기 방 정돈을 잘 못하는 것도 피해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쇼핑(shopping)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강박적 쇼핑장애
(compulsive shopping disorder)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해도 피해자로 자신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적치유가 가져다 준 "피해자" 문화이다. 창조 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 중 하나가 인간의 "책임"성인데 그것이 지금은 어디론지 사라져가고 있소 눈에 보일까 말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