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탈출

동성애, 성경적 접근

이요나 2007. 12. 25. 15:11

동성애, 성경적 접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한복음8:36)

 

오늘날 동성애는 사회문제가 아닌 새로운 성문화로 포장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동성애가 만연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그만큼 성경이 말씀하신 종말의 날이 가까웠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창세기 19장을 살펴 보건데 그 당시 소돔성 사람들은 동성애에 대한 꺼리김이나 반감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롯의 집에 들어 온 천사들의 미색에 매료되어 나이 많은 사람이나 젊은이들이 함께 몰려 들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보다 훨씬 앞 선 광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곧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와 레위기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어 있지만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성경적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오늘 나는 동성애의 근원을 살핌에 있어 먼저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인 인간의 이상을 정복한 사단이 인간의 육체를 자기의 것으로 장악한 성경적 근거를 먼저 살펴 보고자 한다.

 

창세기 6장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땅의 여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기록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누구로 보아야 할 것인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어떤 학자들은 창세기 6장은 5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영적 계보를 계승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셈의 후손들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천사로 유추한 경우는 없다.

 

이 부분은 히브리어 어원을 따라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하겠다. 여기서 우리 성경의 사람들의 아들이란 "베네 하 엘로힘"이다. 또한 이 단어가 성경에서 제일 먼저 쓰여진 곳은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1:6)고 기록된 욥기서 1장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히브리어 원어는 창세기 6장과 동일하다. 따라서 창세기 6장에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로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문점을 제기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세기6:2) 기록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들 곧 천사들이 여인과 성적 관계를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은 그 어디에서도 천사들의 성적 능력이 있다고 언급한 곳은 없지만 천사가 사람과 성적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기록 또한 없다. 

 

l       육체와 타락한 천사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 곧 타락한 천사에 관한 이야기는 유다서에서 다시 언급된다. 유다서 6절에는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 기록되었다. 여기서 자기 지위를 떠난 천사란 누구를 말한 것인가? 이들은 하나님의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얻을 후사들을 섬기라(1:14) 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천사의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탐한 타락한 천사들이 틀림없다.

 

여기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는 말씀은 베드로전서 3장에서 다시 유추하게 된다.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하시니라(벧전3:18,19) 증거하였다.

 

여기서 베드로가 사용한 타르타스(Tartarus)로서 지옥 곧 하데스(Hades)보다 아래에 위치한 곳으로 타락한 천사들을 특별히 가두는 감옥이다. 이와 관련하여 베드로는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다(벧후2:4,5) 증거하였다. 여기서 베드로는 창세기 6장의 노아 홍수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가 말한 어두운 구덩이란 바로 (Tartarus)를 말한 것으로 유다서와 동일한 해석을 유추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창세기 6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타락한 천사로 해석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하신 유다서 7절의 말씀 가운데 다른 색이란 단어를 킹제임스 성경은 다른 육체(Strange flesh)로 번역하였다. 다른 색이나 다른 육체나 성경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 유다서 저자의 의도는 동일하다 하겠다.

 

그러면 과연 다른 육체(Strange flesh)란 무슨 의미일까? 이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된 창세기 6장의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귀납된다. 유다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를 성경적으로 유추하여 종말을 사는 우리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만약 누가 다른 의문을 갖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다가 올 계시록의 시대에서 불행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l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책임

성경은 동성애를 단호하게 정죄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동성애를 단죄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율법에서 증명된다. 물론 성경의 정죄는 동성애에 국한 된 것만은 아니다. 율법은 인간의 모든 성적 무질서에 대하여 죽임을 선고한다. 만약 오늘날 이러한 율법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싶다. 그러므로 율법을 생명으로 아는 유대인들은 민족의 우월성을 자랑할만한 위대한 백성이라 하겠다.

 

사망은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에 있어 가장 가혹한 형벌이다. 죽음은 생명체에서 무생물체로 돌아 가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허무함을 언급하여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9:10)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죽음이란 생명의 존재 가치의 상실이다. 그러나 다시 살 수 있다면 죽음의 문제는 결코 절망이 아니다. 이미 성경은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8:21) 기록하였다.

 

그렇다. 사망의 권세는 다시 살릴 수 있는 권세자 앞에 무용하다. 사도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증거하였다. 다시 말하여 율법이 모든 죄를 사망으로 정죄한 것은 죄의 권능을 무효화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내가 죽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났으니 율법의 정죄가 죄인 된 나에게 도리어 은혜가 되었다 함과 같다(로마서7장 참조).

 

또한 사망이 죄의 결과라 할 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한 권세자 앞에서 죽음의 사자는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마땅히 두려워 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12:4,5) 말씀하셨다.

 

물론 아직도 사단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승의 자랑을 미끼로 우리의 육체를 볼모로 잡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이 사망의 권세로부터 우리를 해방할 하실 자를 예비하셨으니 그가 곧 만인의 구세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가 우리의 죄를 모두 십자가 위에서 도말하시고 또 우리를 위해 부활하여 산 자의 머리가 되신 것이다. 이로서 죄인 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를 말하여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 긍휼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2:3-5) 증거하였다. 그러니 우리가 다 함께 정죄를 받은 자로되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다시 죄 가운데로 넘어질 것인가?

 

바울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엄히 경계하며 너희는 이제 누룩 없는 하얀 가루이니 너희 거룩한 몸으로 주께 영광을 돌리라 권고하였다. 이것은 모든 죄에서 자신을 성별하라는 뜻이다. 또한 성경은 악의 모양은 모두 버리라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은 현대사회 속에서 누룩처럼 번져 나가는 더러운 죄의 역사로부터 어떻게 우리 몸을 보전할 수 있는가에 있다.

 

l       동성애자의 성경적 책임

사람이 어떻게 동성애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변은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힘으로도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스스로의 의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실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성경에 이르되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인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하셨고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10:11) 하셨으므로 만약 당신이 이 말씀을 의지하여 스스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인으로 맞이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어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얻는 영혼회복의 위대한 순간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이다. 이보다 더 간단한 진리는 이 세상에 없다. 성경은 이미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이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12,13)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자신이 스스로 죄인 됨을 깨닫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동성애 탈출의 토대이다. 아니 그는 더 이상 동성애자가 아니다. 그는 법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된 것이다.

 

믿음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성(神聖) 체험으로 세상의 모든 신들과 미혹의 영들로부터 해방되는 영광스런 순간이다. 단 한 순간, 마음으로부터 솟아난 입술의 고백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되는 신적체험을 하게 되며 거룩하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고백은 세상의 썩어질 육체의 정욕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동시에 새 생명의 세계로 진입하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증거한 것이다.

 

l       육체와의 영적전쟁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의문에 부딪치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로부터 속죄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과연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인가?하는 의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의롭다 하심 칭의의 판결을 받은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을 자격을 얻은 성도로서 우리는 모든 죄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성경은 이미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증거하였고 다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기록하였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말씀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비록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 하드라도 우리의 몸은 여전히 동성애를 비롯한 다른 죄의 성질 가운데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아직 죄를 벗어버리지 못한 육체의 습성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없다 하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뀐 것일뿐 아직도 죄의 성질들이 우리의 몸 속에 남아 있어 거듭난 우리를 공격하여 다시 범죄 하도록 유혹한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세상의 신들과 격렬한 영적전쟁을 치르게 된다.

 

당신의 단 한 순간의 믿음의 고백으로 당신에 속한 그 모든 권리를 송두리째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넘겨 준 사단은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의 연약한 육신을 유혹하여 다시 죄에 얽히도록 끊임없이 역사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당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성령의 인친 자라는 것이다. 성경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8:35a) 기록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당신의 믿음이 연약하여 세상의 단맛에 질들인 육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데있다. 이것이 크리스천들의 가장 큰 딜레마로 사도 바울 역시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7:23) 탄식하였다. 이것은 죄성과 싸워 이길 수 없는 연약한 육신의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의 정신적 의지만으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유혹의 영들의 역사와 죄의 고통이 어떠함을 능히 아는 당신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다. 이제부터의 당신의 육체적 문제는 당신의 믿음에 달린 것이다. 이를 위하여 성경은 이미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8:36) 증거하였다.

 

l       오직 성경 말씀의 능력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하셨고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리 될 것이라 약속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이러한 믿음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이에 대하여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10:17) 기록하였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의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기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오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15-17) 하셨다.

 

그렇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는 길은 오직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만 가능하다. 그 어떤 철학도, 사상과 이념도, 사람이 가르치는 그 어떤 도덕과 윤리도 사람을 거룩하게 할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죄에서 구속을 받은 우리는 이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보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그의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을 보내시어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계신 것이다. 이 길만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령으로 당신을 돕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당신의 믿음의 건투를 기원한다.

 

 

동성애성경적접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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