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탈출

동성애, 새로운 문화로의 변신

이요나 2007. 12. 25. 15:12

동성애, 새로운 문화로의 변신

 

최근 세계 각국에서 유명 정치가나 연예인들 중에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공개하는 일들이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기사가 날 때마다 세상 사람들이 별로 얼굴을 찡그리지 않게 된 것을 볼 때 이제 동성애는 현대인이 공유해야 하는 보편적인 성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 나는 인터넷을 통하여 미국 새생명교회((New Life Church) 당회장인 태드 해가드 목사의 동성애에 관한 충격적인 기사를 읽었다. 해가드 목사는 미국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전미복음주의자연합(NAE)의 대표로서 백악관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명망 있는 목사 중 하나였다.

기사에 의하면 2003 3 NAE 대표에 선출된 태드 해가드 목사는 2004년 매사추세츠주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 전국을 순회하며 반대 모임을 조직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에는 콜로라도주에 상정된 동성결혼 금지법안이 통과되도록 다른 교단 지도자들과 함께 지원하는 등 동성애 반대운동에 적극 앞장 서 왔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마이크 존스란 청년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태드 해가드 목사와 3년 동안 동성애 관계를 지속해왔다고 고백하였다. 참으로 황망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내 안에서 견딜 수 없는 속도로 짓눌러 오는 영혼의 고통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마치 내 눈 앞에 지옥의 사자가 내 이름을 들고 마중 나와 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돌을 던질 지언 정, 할 수만 있다면 동성애의 속성을 아는 나는 태드 해가드 목사에게 달려가 그 상한 심령을 껴안아 주고 싶었다. 우리 크리스천들의 이웃 사랑은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경우일지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회개의 기회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Coming Out"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떠한가? 1996년 동성애자였던 성공회 서동만 교수의 "Coming Out"은 교육계와 사회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러나 서교수는 여론과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동성애자들의 인권의 희생물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묻혀 버리고 말았다.

 

민주화 시대의 개막과 함께 곳곳에서 자유의 물결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유명 개그맨 홍석천 씨가 화려한 "Coming Out"을 하였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던 메스컴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발목에 족쇄를 채워 버렸다. 그를 사랑하던 팬들 또한 하루 아침에 얼굴을 돌리고 마치 외계인을 보듯이 비웃고 있었다. 결국 그는 비정한 눈물을 흘리며 브라운관을 떠나야 했다. 그의 조급한 용기의 대가로 돌아 온 것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동성애자라는 낙인뿐이었다. 어쩌면 그의 이유 있는 용기는 암흑을 돌출하고자 하는 시대적 충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 "Coming Out!"을 충동하던 동지들은 과연 그에게 무엇을 보상하였는가? 이처럼 우리나라의 민주화는 균형이 상실된 두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한 최근 메스콤에 남성 동성애자 곧 게이 생활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가수 하리수씨의 화려한 등장은 트랜스 젠더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리수씨의 결혼은 마치 새로운 육체의 시대를 선포하는 신호탄처럼 제한된 거리를 누비던 동성애자들의 얼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이를 계기로 이미 물밑 작업이 완료된 남녀 동성애자 인권단체와 트랜스젠더들을 비롯한 소수성 인권단체들의 목소리는 양심의 소리를 제어하고 사회 일각으로 그 얼굴을 확고히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소수성 인권 문제를 등에 업은 민노당은 성별전환특별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여 공청회를 거듭하며 동성애자의 성적지위를 합법화하기 위해 국회 속으로 돌진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보수일색의 풍토를 지속해 온 우리나라의 도덕과 윤리는 자유의 급물살을 타고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겉잡을 수 없이 용솟음치는 격동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자녀들은 새로운 육체의 색깔에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책임은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께서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셨고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l       자유의 혼란시대

이미 서구에서 그들의 삶의 형태는 인류의 삶의 영역 속에서 또 하나의 묵인된 성문화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이며 이미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의 합법화가 추진되고 있다. 어쩌면 성생활 합법선언은 인권적 측면에서 볼 때 당연한 권리라고 보겠다. 그러나 창조자의 아름다운 성적 질서를 누리는 경건한 사람들에게 있어 이들의 주장은 매우 난처하고 불편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이러한 물결은 정치적으로 폐쇄적인 국가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번져가고 있다. 아마 이들의 투쟁은 전세계 속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이 합법화되고 그들이 추구하는 동성애적 성생활이 보편화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떠한가?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자들의 이러한 성생활 자유선언은 윤리와 도덕을 중시하던 한국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서방나라야 어떠하든지 간에 최소한 동방의 예의지국이란 윤리를 중요시하던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동성애는 금기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함께 조심스러운 눈으로 괄목해야 할 것은 유명대학교를 선두로 확장되고 있는 수 많은 동성애 서클이다.

 

십 여 년 전 연세대학교에서 'Come Together'라는 동성애 써클이 조직되면서 이제는 각 대학교 별로 동성애자들의 써클이 활성화되었고 이제는 동성애 축제에 문화관광부에서 지원금을 보조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그뿐이 아니라 동성애자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까지도 이제는 사회 일각으로 나와 동성애자들을 위한 교회까지 구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간간히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사회 각층에서 찬반 시비가 분분하고 있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시시비비와 관계없이 이들이 추구하는 동성애적 성생활은 날이 갈수록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성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l       동성애 인권운동의 모순

물론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사회생활 보장권은 모든 사람들과 같이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며 절대로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성애를 보편적 성문화로 정당화해도 된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것은 이 땅에 공존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맡겨진 도덕과 윤리에 속한 문제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창조자의 뜻과 목적에 반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동성애자들이 선택한 그들의 성적 생활 방법을 법적으로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의 인권의 기본 틀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극단적 처방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동성애자들인 그들도 본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들의 인권은 동성애자로서의 삶의 방법을 보장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논의 되어야 할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성생활을 합법화 하자는 것은 마치 마약을 하는 사람들의 필요적 요구를 인권적 측면에서 합법화 하는 것 보다 더 악하고 무섭다. 사실 최근 대마초와 관련된 일부 연예인들이 브라운관 앞에까지 나와서 대마초는 마약이 아니며 담배와 같은 측면에서 선택적 기호로 분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은 기호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며 주류 판매가 합법화되었어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대마초가 합법화 되어도 그것은 각 사람들의 기호적 선택이 될 것이라는 괴변을 늘어 놓는다.

 

만약 그들의 말처럼 대마초 판매가 상품화 되면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은 떼를 지어 대마초를 물고 망상의 산으로 올라 UFO를 기다리게 될 것이며, 그날에는 죽은 비틀즈가 다시 지옥 문을 열고 나와 우리 아들들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나는 결코 이런 무질서의 세상이 우리 앞에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알코올중독에 대한 경계심이 강화되어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상담사들과 중독회복을 위한 시설들이 속속 세워지고 있다. 그런데 동성애만큼은 성중독 차원이 아닌 성문화 차원으로 다루며 이들의 생활을 합법화하고 장려해 나가려는 정책으로 바뀌어 가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왜 국가는 성매매 특별 단속법을 만들고 또 성폭력 행위자들은 전자팔찌까지 채워야 한다고 아우성들인가 모르겠다. 이것은 성생활은 오직 부부간에 권리라는 도덕과 윤리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왜 유독 동성애만 성문화 차원으로 격상시키려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런 논리라면 성매매도 성적 본능을 위한 성문화 차원으로 개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여기에 어떤 영적 비밀이 숨겨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l       동성애와 정신의학의 대결

 어떤 학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접근을 생체 호르몬 분비의 이상과 같은 태생적 연구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하려 한다. 그들이 동성애의 발생 원인을 호르몬 분비의 이상에 두려는 것은 일부 동성애자들의 친여성적(남성적) 외모와 언행들로 하여 여성스럽거나 혹은 지나치게 남성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외견상의 현상은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동성애적 성향을 표현하려는 생활습관에서 온 것이지 호르몬 분비의 영향이라 할 수 없다.

 

과거 학계에서는 동성애를성도착증’(paraphilias) 의 일종으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1973년 미국 정신의학협회(APA)가 동성애를 정신장애와 질병에서 삭제하므로 동성애를 성문화로 안착시키려는 게이들에게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 일은 1971년 어느 동성애인권회복주의자가 정신병학회(APA)에서 마이크를 들고 정신병 의학은 우리의 적이다. 당신들은 우리를 잔인한 실험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당신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는 압박 시위를 하여 이 함성은 전 미국 게이 행동주의자들에게 불이 붙었다. 그로 하여 여론의 함몰지경이 된 ‘APA’는 과반수 이상의 정신병 의사들이 동성애는 정신적 장애라는 의견을 표명했음에도 게이 인권주의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결과 1973년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게이 행동주의자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동성애를 장애와 질병에서 제외시킨 것이다.

 

그후 이 불똥은 교회로 튀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호모포비아’(homophobia) 로 규정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로부터 게이 인권주의자들은 동성애자 본인들이 요구하더라도 정신과 의사가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치료하려는 의료조치까지 위법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하기에까지 이르렀으며 여러 경로를 통하여 교회의 동성애 정죄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지도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APA’의 이런 결정 이전에 의학 잡지에 소개된 동성애 치료에 관한 1021가지 사례는 상당한 성공적 사례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적인 대세를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려는 사람들을 도리어 무식한 사람들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성전환 수술을 받은 동성애자들이 성별전환의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정신과 의사로부터 정상적인 성생활 불가능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동성애는 이미 정신병 범주에 들지 않는다 규정되었으므로 정신과 의사의 진단을 받는 것 그 자체가 모순이다.

 

또한 트랜스젠더들의 성생활은 비록 그들이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하드라도 객관적으로 볼 때 그들의 성행위는 동성애자들의 범주에서 벗어 날 수 없으므로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 발급은 트랜스젠더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물론 그들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들을 서로 다른 부류라고 억지 항변을 내세우겠지만, 그러나 동성애자나 게이가 같은 뜻인 것처럼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는 성적 성향에 있어 동일선상에 있다고 하겠다. 만약 억지로 구분하려 한다면 올챙이와 개구리의 관계라고 하겠다. 

 

l       정신병인가? 귀신의 역사인가?

의학이 발달되면서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귀신에 대하여 매우 냉소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목사인 나는 비정상적인 성행위에 대한 정신과적 대응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흥미롭게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우회적인 표현이 언급되어 있으며 대부분 죄로부터 오는 영적 현상으로 다루고 있다.

 

나는 수년 전 모 대학교병원 정신병동에 성도착증세로 입원한 형제를 상담한 일이 있었다. 그 형제는 대선구도에까지 오른 모 후보의 친인척으로 당시 서른 살의 명문가의 외아들로서 그의 병명은 성도착증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목사의 접근을 상당히 꺼리는 눈치였지만 그 형제의 어머니의 간곡한 청으로 나는 매주 2번에 걸쳐 면회 중에 성경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말이 성경공부이지 정신질환자들이 서성대는 정신과 병동에서는 차분한 대화도 나누기 힘들다.

 

우리가 처음 성경을 펴고 출애굽기 첫 장을 막 읽기 시작했을 때, 밝은 표정을 하고 우리를 대하던 형제에게서 갑자기 영적 금단현상이 나타났다. 다행이 그 현상은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않고 함께 성경을 읽던 세 사람 가운데서 나타난 것이라서 우리는 돌발적으로 나타난 기이한 영적현상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이 한절씩 성경을 읽어가는 동안 그 형제의 차례에 이르면 얼굴이 파랗게 질리며 일그러졌으며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눈이 풀리고 입에서 거품을 물기까지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어머니와 내가 한절씩 읽는 그 찰나에 그 형제는 몇 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눈을 뒤집어 까며 졸고 있었고 놀랍게도 졸음을 제지하기 위해 어깨에 손을 댄 그의 어머니에게까지 동일한 현상이 순간적으로 전이되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처음 겪는 나도 내심 크게 놀랐으나 경이롭게도 나는 그 상황을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 의식과 시선은 극도로 긴장상태였지만 내 안에 어떤 권능자의 능력이 그를 주시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첫날 우리는 불과 7절에 해당하는 출애굽기 1장 단 한 단락을 읽는데 삼십 여 분을 허비하였다. 그 시간 동안 내 안에서는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영적 투쟁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심방이 거듭할수록 형제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고 나중에는 혼자서 성경 한 장을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가기에 이르렀다. 6개월 후 출애굽기 마지막 장을 읽던 날 그 형제는 나의 약속대로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정신적 상황을 정신질병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귀신의 역사로 보아야 할지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다. 이러한 사례는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생활을 하고 있다.

 

l       사회적 오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마약이라든가 다른 범죄들에 대하여는 엄격한데 비하여 유독 동성애에 관하여 관대해지려는 또 다른 이유는 동성애가 마치 자신들과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한발 더 나아가 동성애를 제3의 성문화로 접근하려 한다. 이에 비해 마약이나 알코올은 어떠한가? 세상은 그 어떤 경우에도 알코올이나 마약중독자들의 추구하는 행위를 결코 환상적 문화로 받아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마약 중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법의 제재를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최근 동성애의 범람에도 많은 사람들의 의식구조는 동성애를 성적인 범죄 곧 간음, 성폭행과 같은 범죄행위로 보지 않고 또 다른 선택적 성문화 범주로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로 하여 이제 동성애의 문화는 영화는 물론 TV 드라마의 한 장르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대적 추세를 맞추어 작가들은 소위 말하는 꽃 미남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와 강렬한 성적 연출로 동성애를 신비롭게 미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동성애는 신비 속에 감추어진 성적 유희와 같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왜곡된 성문화의 돌출로 하여 어느덧 현대인들의 욕정은 육체를 초월한 성적 유희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에이즈가 동성애자들과 무관한 것이라면 동성간의 성적 유희는 또 다른 육체(Strange flesh)의 시대를 재연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는 선천적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여 동성애는 마약과 같이 우리 생활에 전염하여 중독되지 않는다고 치부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어떤 경우라도 자신들은 결코 동성애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도달하면 동성애적 충동을 느끼며 사람들은 실제로 은밀한 경험을 시도한다. 여기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동성애자들이 원하는 성적 파트너는 동성애자뿐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격동적인 섹스다. 그러므로 우리가 동성애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관대한 생각을 갖는 사이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은 동성애의 매력에 한발한발 미혹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l       동성애 세대차

최근 나는 동성애의 세대차를 취재하는 미국 시사저널지인 뉴스위크(NewsWeek) 한국판 취재기자와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 미국 저명한 목사의 동성애 폭로 기사에 충격을 받은 터라 나는 그와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관점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그 동안 우리 세대는 크리스천이던 비 크리스천이던 종교적 관계를 떠나 동성애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며 그로 하여 동성애는 어느 사회에서도 합리적은 대응을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세상은 동성애 문제만큼은 다른 도덕적인 것에 비하여 지나칠 만큼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실 동성애는 각계각층의 사람들 속에서 은밀한 관계를 갖고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였으며 그 결과 동성애를 정신적 질환에서 분류하여 선택적 성문화로 발전시켰으며 더 나아가 합법적인 혼인관계에 이르기까지 도달하였다. 만약 동성애가 미개 종족들과 같은 특별한 인종에 속한 성행위였다면 문명과 학문과 상식을 주도한 서방세계에서 이러한 묵시적 합의는 절대로 이끌어 내지 않았을 것이다.

 

취재 기자의 말에 의하면 최근 미국 젊은 세대들 속에서 동성애는 선택적 성문화의 자유시대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더 이상 동성애는 동성애자들만의 성적관계가 아니라 오늘은 남성과 내일은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가져도 좋다는 보편적인 의식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젊은이들의 이러한 의식변화는 오랜 세월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합법적인 동성애 혼인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 온 동성애운동권자 1세대들에게 큰 충격이 되었다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추구해온 이상적인 세계는 양성애적 성행위가 아니라 동성애자들간의 합법적인 성생활을 추구해 왔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은 이미 우리나라의 TV드라마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방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의식은 날이 갈수록 헤어 스타일이나 의복의 디자인이 여자냐 남자냐의 범위를 추월하듯이 양성애적 성관계 또한 창조적 성생활의 범위를 떠나 선택의 성문화로 그 발상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본생활에서 그러한 변화를 목격하고 체험한 나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인류의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목사로서의 나의 관심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시대에 대한 성경적 관점이다. ()

[이요나 목사 동성애 리포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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