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탈출

인간의 범죄와 성적타락 그리고 동성애

이요나 2008. 1. 21. 16:05

인간의 범죄와 성적타락 그리고 동성애

 

(로마서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바울은 18절로부터 말의 방향을 바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였는데 이제부터는 저희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 대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l       진리와 불의의 역행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1:18,19) 기록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란 종말론적 사상으로, 주의 오심으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기까지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종말론적 사상이다. 이미 성경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해 머물러 있느니라(3:36) 기록하였고 또한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5:6) 기록하였다. 이 두 말씀을 보건데 하나님의 진노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많이 않을 것 같다.(이 부분은 2장에서 다루게 된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에 앞서 로마서 1 16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강조하였으며,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강조하였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구조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의 삶의 과정과 그 결과를 언급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말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것은 자기와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하려 한다. 사람이 이러한 믿음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성경은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음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경건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며 불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뜻한다. 또한 진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께서 계획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삶의 원리로서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또한 사람과의 관계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돌판을 주셨는데, 첫째 돌판에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고, 두 번째 돌판은 사람과 그 이웃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두 개의 돌판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서로 뗄 수 없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다면 이웃과도 좋은 관계를 갖고 있을 것이며 만약 당신이 이웃과 옳지 못하다면 당신은 하나님과도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한 것이 된다. 

 

예수께서도 이를 말씀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하셨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당신은 역시 당신의 불우한 이웃을 사랑할 것이며, 만약 네 이웃의 고난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이웃에 대한 불의를 행하고 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진리를 막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겠지만 마귀도 하나님을 믿고 떨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요구는 당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리를 행하므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l       죄와 인간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는 하나님께서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19-20) 기록한 대목이다. 창조로부터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우주적으로 증명되었다. 그 분의 만드신 모든 피조물은 그 자신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을 부정하거나 또는 무지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자기를 낳은 부모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1:21) 증거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누구를 고소한 것일까? 이들은 바로 믿는 우리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미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2:3) 증거하였다.

 

우리의 삶의 돌이켜 볼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날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날을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을 설득하고 있었는가 생각해 보자.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도, 바울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살펴 보기에 앞서 주님을 설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 이런 일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는 인간의 속성 중 하나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을 설득하려 하고 창조자를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 내리려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과연 누가 우리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보다 우리와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러함에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치도 아니하고(21b) 않는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명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또 우리의 인생이 그의 뜻 가운데 있어 우리의 삶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에 의해 작정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에게 아버지의 사랑에 기뻐할 줄 모르는 아들이 있다 하자. 아들을 사랑하여 새 구두를 선물하였는데, "아빠! 이게 내 바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말한다면 당신 기분은 어떻겠는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혜에 대하여 못마땅히 여긴 일은 없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창조이래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진리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였다. 그 결과에 대하여 성경은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상으로 바꾸었다(21b-23)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마음과 지혜가 어두워져 세상의 허망한 것에 사로잡혀 사람과 짐승의 형상을 자기의 우상으로 세우게 된다. 이로서 인간은 영광된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하고 스스로 짐승의 형상으로 바뀐 것이다.

 

1.      , 첫번째 결과 성적타락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첫 번째 결과를 말하여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들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라고 증거하였다. 사람이 그 창조자 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내어버려진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첫번째 심판일 것이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일이 있는가? 내어버림을 받은 사람들은 그 마음의 고통과  상처가 어떠한 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어버린다는 뜻은 함께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내어버려진 자는 고아보다도 더 비참하여 가인과 같이 암흑 속에 유리하는 자가 되어 존재를 상실한 자이기도 하다.

 

창세기 6장에는 인간 세상에 벌어진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은 일이다. 그 일로 하여 하나님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6:3) 말씀하셨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 부분을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도 육체이기 때문이라 기록되었다. 이 기록들은 창조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그로서 인간은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끝없는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간 세상에 유입된 다른 육체의 출연을 예고한 것이라 하겠다. 유다는 종말의 세상을 가는 우리에게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1:6) 증거 하였고 다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다(7) 기록되었다. 킹제임스 성경은 다른색다른 육체로 기록되었다. 설혹 이 부분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하드라도 우리는 이 내용에 대하여 민감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떠난 사람들에게 나타난 첫번째 현상을 가리켜 마음의 정욕이라 증거하였다. 정욕이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솟아난 성적욕망을 말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인간에게 나타난 육체의 정욕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인가의 근거를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계속하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 증거하였다. 여기서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는 것은 성적타락을 뜻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하신 을 서로 더럽힌 것을 뜻한다.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자기의 형상과 모양대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 이것은 창조하신 사람으로 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 그 지으신 만물들을 다스리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그를 위한 모든 몸의 구조와 질서를 두셨다. 이로서 그 지으신 남자와 그의 아내가 한 몸을 이루는 부부생활이 출발한 것이다. 이에 아담은 자기에게 이끌어 오신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23)증거 하였고 하나님은 그에게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라(2:24) 명하셨다.

 

여기서 한 몸이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하심과 같은 집합적 단일체로서의 연합 곧 영육간의 불가분적 합일체를 뜻한다. 이로서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기록된 것이다. 이는 부부 된 남자와 여자의 영과 혼과 그 몸이 하나가 되어 창조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19:6) 말씀하셨고 바울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말하여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5:31) 증거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거룩한 부부생활을 힘써 지켜 범죄한 인간의 성적 행위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난 특성 중 하나는 성적 타락이다. 이는 고대로부터 발생된 이방신전의 특성이기도 하며 그들은 종족을 번성 시키기 위한 다산을 명분으로 무질서한 성행위로서 서로의 몸을 더럽혀 왔다. 성경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 음행의 올무를 놓은 이방인 선지자 발람을 영원히 저주하였으며(1:11, 2:14), 이에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증거 하였으며 이를 작은 것으로 여겨 음행과 간음과 동성애에 빠진 자들은 하나님의 기업에서 영원히 제외 하였다(고전6:9).

 

2.      , 두번째 결과 동성애 타락

계속하여 바울은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26-27)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신 두번째 결과이다. 흥미롭게도 킹제임스 성경은 욕심애정으로, 심지어라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문맥을 따라 보건데 동성애 행위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나타난 지나친 애정 행각의 결과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여 음행에 빠져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람들이 행하게 되는 성적 욕구 상태라 하겠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음행과 간음을 행하고 있다면 어느 순간에 당신은 동성애를 즐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동성연애자로 만드신 것이라 말하면 안될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진 사람들이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므로 인간에게 나타난 성적 역리 현상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불고 있는 동성애 이슈 가운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성경 속에서 동성애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대표적인 주장은 신약에 기록된 동성애에 대한 경고는 주 예수를 믿는 동성애 성향자들과는 관계가 없고 동성애 섹스를 즐기는 난잡한 동성연애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이상한 논리다. 이러한 논지는 어느 성경학자의 "신약성경이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 것이 아니고 인간들의 보편적인 성적 타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비성경적 괴변에서 출발하였다.


이런 사람들이 논쟁을 벌일 때 즐겨 말하는 성경 말씀은 바로 로마서 1장이다. 그들은 로마서126절로 27절의 말씀을 가리켜 여기서 바울은 동성애로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본성의 순리를 역행하여 동성애자들과 난잡한 성행위를 즐기는 일반 이성애자들이나 양성애자들을 정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보건데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라는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의 의도가 변태적 이성애자들을 향한 것이라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논쟁을 끌어내는 이들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사실 이들의 논쟁의 본질은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관계를 갖는 것은 타고난 본성이므로 비정상적인 행위가 아니고,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적인 관계를 갖는 것과 양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과 관계를 갖는 것을 정죄한 것이라는 괴변을 늘어 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하나님께서 동성애자로 지었다는 끔찍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우리가 살펴 보았듯이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로서의 한 몸이 되는 것을 허락하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괴변은 어쩌면 그들의 마음 속에 자신들의 더러운 성적 행위에 가면을 씌어 동성애를 고품격 정신적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악의가 깔려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어느 신학자나 목사들이 이런 논리에 찬동한다면 그는 성경을 모르는 무지한 자이던가 아니면 동성애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분명히 말하건데 이들의 용서받지 못할 실수는 논쟁의 대상을 잘못 선택한데 있다. 성경기자 중 가장 논리적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사도 바울에게 도전장을 내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들의 논리와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사도 바울보다 위대한 선지식의 소유자들이며 이는 바울을 선택한 예수님의 중대한 실수로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는 우리의 믿음은 무너지고 성경은 쓰레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가 본질적으로 성령이라고 할 때 감히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성경의 말씀에 도전장을 내민 이 사람들은 영원한 멸망 가운데로 던져질 것이다.


여기서 이제 우리는 동성애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그들이 이성적인 성적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아주 어린 나이로부터 동성애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또한 이들 중에는 고귀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온 자녀들도 상당히 많다.

 

 또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모두 동성애자도 아니고 그들의 자녀들이 모두 동성애자인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이유와 원인도 알 수 없이 어느날 그 마음 속에 동성애적 본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성에 대한 이성적 판단의 능력이 없을 때 이미 동성애적 성향이 나타나 어쩔 수 없이 동성애 욕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이들이 동성애에 빠졌다 해도 이들의 원죄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공평치 못하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은 여기서 동성애자들을 정죄한 것이 아니라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인간이 행한 경건치 못한 일들 곧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보편적인 죄의 원리를 설명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나는 동성애자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냉혹함을 원망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성경적 진리를 깨달아 죄된 자신의 마음과 몸을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내려 놓고 창조자 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청해야 할 것이다. 피조물된 우리가 창조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8:20) 하였고 또한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8:19)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불의한 생활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한 인간의 죄를 통분이 여기고 그로 인하여 걸머진 죄의 십자가를 주 앞에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건 데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러한 더러운 정욕에 내어 버리신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누구라도 주 예수 앞으로 나와 자기의 죄를 내려 놓고 마음으로 믿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영접하면 예수님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거룩한 의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 기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된 삶에 참여케 하실 것이다. 그 분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결코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의 때에 주의 계획하신 뜻을 위해 예비한 사람들이다.

 

3.      , 세 번째 결과 모든 인간의 불의

바울은 계속하여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찬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1:28-31)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죄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자신의 양심 밖으로 배제하여 버릴 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들이 주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할 때 급속도로 타락해 버린 것은 역사적 증거다. 그들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 꺼리낌 없이 자행하여왔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32) 기록하였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누가복음 1811절에 나오는 바리새인처럼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 하지는 않는가? 사람들은 자신은 이런 지독한 죄는 범하지 않았다고 변명하며 자신은 거룩한 자 중에 서 있으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나 악한 일을 연출하는 배우의 TV프로를 보며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의 행위를 함께 즐기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아는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정욕 속에 숨어 역사하는 은밀하고 더러운 것들이 어떠한 경우에라도 역사하지 않도록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 결국은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될 것이다(6:8).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인간의 불의한 생활을 다루면서 왜 동성애적인 속성을 언급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부족하면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한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고, 바울이 여기서 동성애자를 단죄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되 경건의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정욕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의한 삶의 태도를 하나님의 질서를 벗어난 동성애적 속성에 대유(代喩)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은 위대한 범죄하는 교회 지도자들일 수도 있고 진리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당신과 나일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창세기 4장과 5장에서 두 계보가 소개되고 있다. 4장에는 가인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소개되었고, 5장에는 아담으로부터 죄성(罪性)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소개되었다. 이 두 장의 기록은 단지 역사적 사실성만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인 역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던 예배자였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당신에게 하나님 앞에 어떤 예배자가 되어야 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