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탈출

[스크랩] <좌담> 동성애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이요나 2008. 3. 10. 14:14
<좌담> 동성애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작성자
 뉴스앤조이
   작성일
 2003/05/19

 (이요나) 아래 내용은 동성애 문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관점에 대한 토론회 본문이다. 이 내용에 대한 질문들이 많아서,,나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나는 이 토론회에 참석한 사역자들을 공격할 의사는 전혀 없으며 다만 동성애자로 사십평생 살며 또 십여년의 믿음생활 속에서도 동성애를 떨쳐 버릴 수 없었던 필자로서 믿음 안에서 터득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바다.

 

<좌담>동성애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분명하게 죄라고 말해야 한다"

동성애 문제가 한국교회에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천주교 신자였던 한 동성애자의 자살은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물론 동성애 문제에 대한 토론이 한국교회에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안을 찾고 동성애자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5월 15일, 분당두레교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펼쳐졌다. 토론에 참가한 두 사람은 2시간 30분에 걸쳐 동성애 문제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토론은 시종일관 뜨겁게 이어졌다.

오래 동안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해 온 전우섭 목사(다비타 공동체 대표)는 동성애를 인정하자는 입장에서 논리를 펼쳤다. 상대 토론자로 나선 성인경 목사(한국 라브리 대표간사)는 교회가 동성애에 대해 죄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이다. 토론은 박득훈 목사(<뉴스앤조이> 편집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박득훈 : 먼저 좋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어서 감사하다. 최근 카톨릭 신자인 윤아무개 형제가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 사무실에서 자살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리스도인들이 동성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이와 관련된 토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한국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갖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오늘 토론으로 모든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겠지만, 토론의 과정을 통해 동성애와 관련된 하나님의 진리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마련했다. 두 분이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지금 하시는 사역, 지금까지 만난 동성애자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전우섭 : 13년 동안 공동체 사역을 했다. 거룩하고 수도적인 공동체 아니라 기지촌에 자리를 잡고 기지촌 여성, 매춘 여성, 에이즈 감염자, 동성애자, 마약·알콜 중독자, 혼혈아들과 함께 살았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기지촌 문제와 성매매 문제로 출발했고, 1993년 에이즈 감염자들이 나에게 찾아왔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1993년 말에는 동성애자들이 찾아왔다. 게이(남성동성애자),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바이섹슈얼리티(양성애자), 안드로지니(양성체)가 왔다. 오라고 해서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왔다. 1994년에 처음으로 동성애자들만 모여 예배드리는 '로뎀나무그늘' 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 카페와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상담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받은 상담이 수만 건이 될 정도다. 하나님이 이들을 나에게 맡기셨다는 확신이 있다. 60명 공동체 식구들과 같이 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깨졌고 많은 것을 배웠다. 어려울 때마다 성령께서 인도해 주셔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3주전에 우리 공동체의 형제가 자살을 했다. 자살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 땅과 한국교회에서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삶에 대한 회의가 둘이다. 로뎀나무 지체들이 화장(火葬)을 해주었다. 2년 전에도 에이즈 감염자이자 동성애자가 자살했다. 그때도 화장을 했는데, 그 자리에 카톨릭 신부가 왔다. 왜 왔냐고 물으니 그 분이 나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그는 죽은 형제가 자기의 첫 번째 파트너였다고 고백했다. 그날 1부는 개신교식 예배를 드리고 2부는 천주교식 미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이요나) 청년이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받아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가 동성애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달라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접근하면 않된다. 이것은 교회는 결코 성도의 범죄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이 땅의 모든 죄인들이 주 예수 이름으로 회개하여 지체를 이룬 의인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 교회가 동성애를 정당한 행위로 받아주기를 원하는 것은 오히려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범죄하라는 것과 같은 무리한 요구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죄로 알고 극복하려 하는 성도들을 교회가 외면하지는 않는다. 필자는 50여명의 이반들과 트랜스젠더들을 데리고 순복음을 비롯한 장로교, 감리교를 다녔지만 어느 곳에서도 동성애자라 하여 핍박한 일은 없다. 80-90년대에도 그러한데 지금 교회가 핍박한다는 것은 동성애자를 정당화해 달라는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이라 생각한다. 더우기 예수님의 종을 대변하는 신부가 아직도 동성애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성적 파트너를 두고 있다는 말은 참으로 경천동지할 일이다. 이 신부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할 수 없다. 주의 종은 거룩한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주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성인경 : 내가 있는 라브리의 특성상 전 목사님에 비해 굉장히 소수의 동성애자를 만났고, 어떤 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험이 부족하다. 아마 목사님은 임상적인 경험이 많으신 것 같다. 나는 임상경험보다는 동성애에 관련된 사상, 철학의 문제를 많이 분석하고 공부했다. 라브리에서 게이도 만나고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도 만났다. 주로 대학 캠퍼스에 가서 대학생들과 많이 싸웠다. 서울대, 연대, 외대 캠퍼스에서 동성애 논의가 한참 일어나던 94년에서 97년에 많이 싸운 경험이 있다.  한 사람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심각한 동성애자였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거의 1년에 걸친 오랜 상담 끝에 본인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이념적·정신적으로 잘못된 세뇌를 받았고, 그것 때문에 동성애를 선택한 후 지금까지 19명의 파트너와 지내왔다. 지금부터는 동성애를 그만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두세 달 후에 메일이 왔는데 또 동성애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최근에는 이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해야겠다는 전화가 왔다. 그 말을 듣고 굉장히 반가웠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과 사랑, 우애를 통해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성애적인 결혼을 하겠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라, 동성애를 완전히 청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박득훈 : 윤아무개 형제가 동인련 사무실에서 자살한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7조 내용 중에 청소년에게 해가 되는 매체에 동성애가 들어가 있었다. 동성애자 단체들은 이러한 조항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니 이를 삭제해달라고 진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삭제를 요청했고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한기총과 <국민일보>가 동성애 관련 항목의 삭제를 강력히 반대한 것이다. 그게 이 형제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지금 사회에서는 기독교가 동성애자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어느 신문을 보니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피살이라는 글이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자살이나 내용으로는 피살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요나) 동성애는 다른 범죄와 같이 청소년 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가된다. 동성애 정당화를 주장하려는 논리는 동성애를 타고난 성향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동성애는 타고난 것이 아니며 인간의 죄성 속에 거하는 모든 죄 중의 하나다이다. 또한 성경이 동성애를 정죄한 이유는 죄인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이 청년의 죽음의 배후에는 동성애에 대한 옳바른 지식과 믿음의 투쟁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지 못하고 동성애를 정치적 도구화 하려는 극단적 단체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고 본다. 여러분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라 동성애를 극복하는 것이 짅정한 인격회복인가? 아니면 동성애자로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 인격적 회복인가? 내 자식편에서 생각할 때 이 땅의 모든 부모는 모두 내 자녀가 온전한 인생을 사는 것일 것이다.


정죄보다 포용이 먼저

전우섭 : 기독교인이라면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 죄가 있다 없다도 중요하겠지만 그들도 구원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왜 못하는가?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그 관점에서 선교 정책이 나올 것이다. 처음부터 그들을 구원 대상에서 제쳐놓은 것이 문제다. 이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다.
<국민일보>와 한기총의 대응방식은 상당히 잘못 되었다. 특히 한기총에 있던 박영률 목사가 예전에 TV에 나와 트랜스젠더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목회자가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물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어떻게 돌보겠다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무조건 반대부터 한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성인경 : 나도 동감한다. 사랑으로 하는 말과 정죄하는 말에는 차이가 있다. 에베소서에 있는 말처럼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먼저 사랑으로 포용하고 존중하는 태도만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죄인들을 대할 때, 정죄를 먼저하고 그 다음에 사랑하는 방법은 잘못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요나) 정죄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정죄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성경은 우리보고 사람을 정죄하라고 하지 않는다. 인간의 몫은 사랑일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묵인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되 죄를 범하면 경계하고 책망하라 가르치고 있다. 고린도전서5장에서 바울은 음행한 형제의 죄를 묵인한 책임을 교회에게 묻고 있다. 또한 박영률 목사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그분은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정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 사회가 정당하게 받아 줄 수 없는 성경적 원리를 말한 것이다. 박목사님의 주장은 동성애를 극복하는 일에 주력을 해야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양정지건 : 이번 사안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인경 : 법으로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조금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삭제 아닌 다른 묘안을 찾아야 한다. 동성애자들을 만나보면, 동성애를 포기하느니 미국으로 이민을 가겠다는 사람이 많다. 동성애자를 국외로 추방하는 법과 사회 풍토를 바꾸는 의미에서, 법을 부드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 등급을 나누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요즘 영화에 동성애에 대한 내용이 양념처럼 다 들어가는데, 무조건 전면 금지한다면 영화나 비디오 중에 볼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동성애에 대한 사이트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것도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동성애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라브리에서도 동성애에 대해 충분히 교육을 해서 동성애에 대한 위험성을 알고 접근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전우섭 : 나는 막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차단하면 더 호기심이 생기고 더 문제가 커진다. 알 것은 다 아는 것이 좋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자고 이성애자는 이성애자다. 삭제 조항을 넣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요나)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 동성애을 통제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동성애를 행위가 사회적으로 노출되고 상업화되는 것은 다른 성범죄와 같은 범위 안에서 제도적으로 보완할 필요성은 있다. 모든 법은 모든 사람 앞에 평등하여야 하지만 도덕과 윤리의 범위내에서 공평할 수 밖에 없다. 평등만을 이유로 동성애 행위를 합법화한다면 밝고 아름다운 사회 구현을 소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의 법이 되기 때문이다.  


박득훈 : 동성애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문제는 동성애가 옳으냐 그르냐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동성애는 선척적인 원인으로 생긴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학습에 의한 동성애는 극히 일부"
"선천적 동성애자는 극소수…학습과 이념적 세뇌로 동성애자가 만들어진다"

전우섭 : 동성애에 대한 온갖 정보를 접해보고 이들과 같이 살아본 결과, 이것은 선천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학위를 제출하려고 준비중이기 때문에 연구를 많이 했다. 동성애자는 동성애자를 한 눈에 알아본다. 스쳐 지나가도 알아본다. 이들에게 서울역에서 동성애자를 찾으라고 하면 찾아서 데리고 온다. 그런 연구를 하며 더더욱 느낀 것은 이것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이성애자는 그냥 이성애자로 가고 동성애자는 동성애자로 간다.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자들도 그냥 가는 것이다. 다만 동성으로 가는 것이다.

 (이요나) 동성애를 선천적이라 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믿지 말아야 하며 성경은 다시 써져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선천적이란 하나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의 소경은 부모의 죄도 본인의 죄도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하셨다. 따라서 불구자로 태어난 사람들은 그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며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두 보상하실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죄의 문제다. 나역시 어려서부터 동성애성향이 있어 타고난 것으로 보았으나 이것은 동성애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논리를 제공한다. 결코 동성애는 타고난 것이 아니며 유전도 아니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들어 온 죄의 문제로 이 근원은 악한 영들이다.


이들을 이성애자로 바꾸려고 예배 시간에 예쁜 여자 사진을 걸어 놓기도 한다. 동성애자들에게물으면 예쁘다고 한다. 그러나 같이 살고 싶냐고 물으면 그 때부터 대답은 노(No)이다. 나는 동성애가 선천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이성애자가 이성을 좋아하는 것이 그냥 타고나는 것처럼, 이들도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함부로 정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천사는 무성(無性)이다.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간다. 천사 입장에서는 이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자 여자 결혼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사는 것보다, 혼자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성애자도 있고 이성애자도 있고 동성애자도 있는 것이다.

 (이요나) 우리 인간은 모두  죄성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도둑질을 하거나 살인을 하거나 도박을 하는 사람이나, 마약을 하거나 성폭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죄를 지을 죄성은 모두 갖고 있지만 그 죄성을 다스릴 수 있는 지각과 본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열역학 제일법칙과 제2법칙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왜 나에게 동성애의 죄성이 들어 왔는지 물으면 그 원인을 알 수 없다. 그것은 다른 죄성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에 노출된 인간의 고뇌인 것이다.

 (이요나) 또한 천사가 무성이란 주장도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천사의 성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는 모두 남성이다. 창세기 6장 2절에서는 사람의 딸들을 자기 임으로 아내로 취한 '하나님의 아들' 이란 단어는 욥기1장6절에서 천사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예수께서 사두개인의 질문에 천사와 같이 시집도 안가고 장가도 않간다는 말은 천사는 하나님의 부리는 거룩한 영으로서 인간과 같이 육체적인 속성을 갖지 않는다 하신 것이며 부활 후 사람들로 그와 같음을 언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무성애자가 있다는 말도 합당하지 못하다.


성인경 : 천 명 중에 한 명, 만 명 중에 한 명 정도 선천적으로 유전자적인 기질에 의해 동성애자가 생길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동성애자들이 다 그런 사람들인가? 전 목사님 말씀에 동의하기 힘들다. 내가 만난 많은 대학생 친구들은 의식화가 된 친구들이다. 이념적으로 세뇌가 되었고 동성애 관련 책들과 성정치학으로 세뇌가 되어 의도적으로 동성애를 선택한 것이다. 유전적인 원인에 대해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만약 모든 동성애자가 다 유전자적인 원인이라면 하나님이 남색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감정적으로는 동성에게 끌릴 수는 있다. 남자가 남자를 보고 잘 생겼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고, 여자가 여자에게 끌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극복하고 범죄 행위에 말려들면 안 된다. 전 목사님의 의견은 조금은 결정론적이고 동성애를 조상이나 유전자적인 문제로 책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

전우섭 : 일대일로 만나면 모른다. 그러나 집단으로 앉혀 놓으면 틀리다. 게이, 레즈비언, 안드로지니, 트랜스젠더가 성격이 다 틀리고 내용도 다르다. 게이는 굉장히 소심하고 의존적이나 예술성이 강하다. 그래서 예술인 중에 동성애자가 많다. 레즈비언은 터프하고 진취적이다. 트랜스젠더는 8:2로 남자가 더 많은데, 여자처럼 말하지 말라고 훈련해도 좀 노력하다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남자인데도 앉아서 오줌을 눈다. 이것이 과연 학습되고 노력해서 되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이 그들이 타고난 모습이다.

 (이요나) 동성애를 유전이라고 증명하려면 유전인자를 발견해 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동성애는 선천적 장애로 분류하여 동성애를 일으키는 DNA를 밝혀내는 과학적인 일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만약 동성애가 유전이라면 동성애자는 장애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동성애는 인간의 몸 안으로 몰래 처들어 온 악한 영의 역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동성애는 선천적이 아니며 후천적 성향으로 보아야 하며 또한 학습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와 관계를 갖었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게 이런 사람들을 양성애자로 보는데 그들은 분명 이성애자이며 동성애자에게 미혹되어 섹스를 한 것일 뿐이다. 물론 지나쳐 계속 같은 행위에 빠진다면 솔직히 말해 그는 변태성욕자이다.

 

오늘날 동성애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동성애를 정당화하려는 극단주의자들의 정치적 수단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동성애를 성문화로 바꾸려는 성정치는 사회를 범죄화하려는 것과 같으며, 이는 종말의 날에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성애로부터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믿음의 의지와 성경적 생활로서 떨처버릴 수 있는 죄성이다.

 

또한 게이들이 앉아서 소변을 누는 것은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자로 살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서 나오는 행동이지 생리가 아니다. 그러나 레스비안이 서서 소변을 보고 싶어도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생리적 자연현상이 아닌가?


박득훈 : 소위 방아쇠 이론이 있다. 방아쇠를 당겨야 총알이 나가는 것처럼, 동성애자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 요인이 환경이라든가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 의식적으로 발사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우섭 : 동성애자가 이성애자가 되어 결혼을 했다고 끝나는 것인가? 그 다음에 그 성향이 또 발동을 해서 양성애자가 되는 것이다. 가정도 있고 교회도 있는 한 목사님이 있다. 그는 청년기에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동성애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이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살면서 다시 발동했다. 서울에 와서 세미나를 하다가 다른 목사님을 만나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변화되어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결국 결혼을 해도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이요나) 동성애자는 결혼을 했어도 동성애자이다. 그러나 만약 동성애를 극복한 사람이 다시 동성애가 발동되었다면 그 사람의 의지의 부족이다. 성경은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은 후 다시 더러운 곳에 눕는 것과 같다 하였다. 만약 동성애를 극복한 사람이 의로운 생활로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능히 그에게 그 능력을 주신다. 그러나 그가 옛 습관을 동경하여 돌아선다면 하나님은 막지 않으신다. 그것이 사람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각 인간에게 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신 그 인격을 존중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왕 결혼을 했으면 죽을 힘을 다해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모든 남자들도 성적 유혹을 갖고 있어도 결혼후 음행이나  간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시시각각으로 오는 많은 유혹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누가 동성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혼한다면 그의 생활은 정말 비참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든가 또 결혼을 하였다면 동성애를 극복하는 것만이 옳은 길이다. 그 방법은 오직 의인으로서 성경적 삶을 사는 길이며 죄성을 벗고 새로운 심령으로 변화되어 새 사람을 입는 길이다. 믿는 자가 그렇게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능력을 주셨고 또 믿는자에게 불가능이란 결코 없다.


박득훈 : 선천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적으로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전우섭 : 나는 거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아무리 이념적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땡기지 않으면 못하는 것이다. 이성애자가 동성을 결혼까지 하며 좋아할 수 없다. 절대 불가능하다.

성인경 : 내가 만난 대구 사람은 어릴 때 엄마에게 심각한 상처를 받아서 모든 여자를 다 싫어한다. 그래서 남자에게 끌리는 케이스다. 이런 경우도 종종 있다고 본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사람이라도 자꾸 보고 들으면 동성애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

전우섭 : 우리 로뎀에도 2/3는 동성애자고 1/3은 그런 케이스다. 그런데 환경적으로 된 사람들은 실제로 동성끼리 결혼하고 섹스하며 살지는 못한다. 결국 그들도 동성애자에 들어오면 소외당한다. 단지 여자가 싫은 것이지 그 다음 행동까지는 취하지 못한다.

 (이요나) 나는 이 글들을 읽으며 지금 동성애에 대하여 토론을 하는 분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할 수 을까 새삼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빙각의 일부이다. 사실 동성애의 선천적이다 후천적이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동성애는 인격의 최악의 모욕이며 수치로서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죄의 통로라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이 종말의 세계를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때로 보는 것은 세상이 갈수록 타락하고 동성애가 만연될 것을 예표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심판에 직면되어 있다는 것이며 어느 한 사람도 자유롭지 못하며 오직 주 예수를 믿어서 구원에 이르는 길일 뿐이다. 그러므로 믿는 동성애자를 극복시키기 위해 교회들의 온전한 가르침이 필요하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내하며 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동성애는 극복의 의지가 있고 온전한 믿음의 투쟁을 통하여 회복된다.  그런데도 선천적으로 몰아 동성애자로 살아도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큰 범죄가 될 것이다.


박득훈 : 동성애자 자신은 왜 동성애자가 되었다고 말하는가?

전우섭 : 백이면 백 타고났다고 대답한다. 로뎀의 지체들은 자기들 말로는 수천 번 동성애를 극복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한다. 40일 금식기도도 하고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에게 '왜 나는 이런가' 항의도 하고 자살 시도도 하고 상담도 한다. 그럼에도 안 바뀌는 것이다. 그들이 선천적이라고 대답하는 말이 아무런 과정 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많은 아픔을 거쳐 나온 것이다. 인간의 죄로 동성애자가 생겼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이들은 태어났다. 태어났다는 부분에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다

 

성인경 : 사람에게는 윤리나 세계관 같은 이념적인 보호막이 있다. 이 보호막이 강의나 이념 교육을 통해서 제거가 되는 것이다. 무장해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윤리적으로 매춘이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이 매춘에 대한 다양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론적으로 해체가 되는 것이다.

박득훈 : 이성애자 중에도 성에 대해 민감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이 있듯이, 동성애자 중에도 그런 스펙트럼이 존재할 것 같다.

 (이요나) 전우섭 목사님이 이끄는 로뎀나무 지체들의 문제는 동성애로 살아도 영적구원에는 전혀 문제 없다는 잘못된 성경적 지식으로 무장된 믿음생활에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동성애를 벗어나려고 40일을 금식을 했다면 그 사람의 금식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죄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동성애 조차 해결할 수 무능의 존재인가? 그렇다면 성경에 기록된 무수한 기적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다만 동성애자의 잘못된 인식과 그 잘못된 지식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들의 역사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으로 무장된 온전한 믿음의 의지만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주님은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든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하셨다. 믿는 자안에 계신 성령은 믿는 자들이 듣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너희가 무엇을 들을 것인가 삼가하라"(마4:24) 하셨으며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삼가하라"(눅8:18) 하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깨달은 마음으로 주께 간구하면 그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이다.



동성애와 동성연애는 구분해야 한다

전우섭 : 그래서 동성애와 동성연애를 구분하는 것이다. 욕구라는 것은 이념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념으로 무장했다고 해서 밥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성욕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노력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절제를 하는 사람이 동성애자고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동성연애자다. 동성애는 성적 지향점이다. 이성에 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절제하고 고고하게 신앙을 지키는 것이 동성애자다. 그래서 수사나 신부 중에 동성애자가 많다. 우리 사이트에도 신부와 수사들의 상담이 많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밤마다 파트너를 바꾸는 것은 동성연애다. 난 그건 반대한다. 그들에게 직접 말한다. 동성애자는 섹스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요나) 전목사님의 글 여러곳에서 이런 논리를 보아 왔다.  전목사님이 동성애자들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결코 이런 잘못된 주장을 해서는 않된다. 동성애자와 동성연애를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은 오래전 동성애자 신부에게서 처음 나온 말이다. 그 말은 자신이 거룩한 동성애자임을 변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범죄는 없다. 또한 가루 속의 누룩은 온덩이 번지며 HIV 보균자에게 에이즈 발병은 시간문제이다.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이상적 사랑이니 프라토닉러브니 하는 것은 자신을 행위를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것일 뿐이다. 원래 섹스(에로스)라는 말은 거룩할 수 없고 이상적일 수 없는 육체적 속성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이성애자들이 매일 섹스를 즐기지 않아도 이성애자라고 부르듯이 동성애자와 동성연애자는 동의어다. 전목사의 말대로라면 성중독자만 이성애자라고 보아야 한다는 말과 같다.


박득훈 : 동성애에 대한 가치 판단의 문제가 있다. 성경은 동성애를 어떻게 말하고 있나.

전우섭 : 동성애를 논할 때 항상 쓰는 구절이 정해져 있다. 성경 원문을 보면 다 '야다'로 나와있다. 야다는 쉽게 말하면 매춘이다. 동성애가 아닌 동성연애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이 동성애를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이 없다. 간음한 창녀를 보시고 그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신 분이 동성애자를 만났다면 어떻게 말하셨겠는가? 아마 "야 이 더러운 새끼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득훈 : 그러나 창녀에게도 나중에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전우섭 : 마지막 것을 먼저 말하는 것이 문제다.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 치라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한다. 돌로 치고 난 다음에 말하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돌로 먼저 치고 다시는 죄 짓지 말라는 말을 한다. 두 번째 말씀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세 번째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다. 거꾸로 말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자.

 (이요나) 성경을 외곡하지 말라. 또 복음 사역자가 성경의 외곡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성경에서 '야다'라는 말이 창세기에서만 10번 나왔다. 모두가 성행위를 말한다. 매춘도 성행위 속에 들어 간다. 아담과 아와가 동침을 하여 가인을 낳았다라는 말에서 동침도 '야다'이다. 그러나 남자들이 몰려와 남성의 모습으로 롯의 집을 방문한 천사들과 상관하겠다는 것은 동성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믿지 않는 국어학자에게 물어봐도 맞는 답이다.  

 또한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신 말씀도 전목사의 인용은 합당치 않다. 어느교회에서도  누가 동성애자라고 해서 정죄하며 돌을 던지지 않는다. 다만 동성애자의 동성애적 행위가 교회 안에 노출되었다면 그것은 성경이 금한 범죄의 행위이므로 경계하고 그가 회개하면 용서하고 회개치 않으면  성경의 권고을 따라 교회에서 내어 보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에 기록된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한다고 해서 교회가 동성애를 핍박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않된다. 이것은 도둑이나 마약을 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잘못되는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 왕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경의 말씀대로 가르치는 것을 대적하는 것은 악한 일이며 성경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사람들과 경건치 못한 일에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 기록하였다.

 

또한 요한복음 8장의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창녀의 비유를 말하건데 주님은 그를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간 후에 주께서 창녀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하셨다. 계속 창녀로 살아도 된다는 말씀이 아니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여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하셨다. 우리는 성경을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면 않된다.


성경은 동성애를 분명한 죄라고 말한다

성인경 : 그것은 동성애자들을 동정하거나 존경하는 해석이 아니고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모욕하는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다시 말해 '동성애는 죄'라고 밝혀야 한다. 목사님은 동성애에 대한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없다고 하셨지만, 사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구절이 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레위기, 로마서, 고린도전서, 디모데전서…, 이게 다 바울과 모세를 통해서 이야기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동성애자를 직면하지 않아서 생애 중에 동성애에 대해 말씀하지는 않으셨지만, 충분히 성경을 통해 누구도 오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했다. 동성애는 특히 사악한 죄다.
한 동성애자가 동성애자 교회에 나가니 그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들이 "동성애는 사악한 죄가 아니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7년 동안 동성애는 엄중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내다가, 자기가 직접 성경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교회와 목사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그 일을 겪은 후 마음을 다시 먹었다. 죄는 죄라고 말하되 그 다음에는 사랑하고 용서하고 우리가 같이 부둥켜안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순리이지, 말씀을 부드럽게 한 후 그들을 위로한다는 것은 오히려 고치기 더 힘들다.

박득훈 : 성경이 동성연애와 동성애를 구분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인경 :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은 목사님이 말하는 동성애자는 아니다. 동성연애자다. 동성애자와 동성연애자를 구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일부 동성애 성정치학을 논하는 사람들은 둘을 구분함으로써 오히려 사안을 희석시킨다. 둘을 구분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이론적 장치에 불과하다. 레위기나 다른 곳에서 말하는 것은 동성애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동성애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요나) 성경은 결코 동성애자나 동성연애자를 결코 구분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과거 어느 동성애자 신부에 의해 주장된 괴변이다. 그러나 도둑이라고 해서 매일 도둑질하는 것은 아니며 알콜 중독자도 매일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매일 술을 먹어도 알콜 중독자가 아닌 사람이 있고 1년을 끊었다가 단 한목음으로 넘어지는 사람이 있다. 언제가 도둑이 아니며 언제 중독자가 아닌가?  더러운 옛습관을 벗고 심령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새사람을 입을 때에야 비로서 그 사람은 도둑도 중독자도 동성애자도 아니다. 우리 믿음의 지식을 가진 자로서  올챙이냐 개구리냐와 같은 말작난하지 말자 !


박득훈 : 성행위에도 탐닉과 절제가 있다.

전우섭 : 나 역시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판한다. 지금까지 설교하며 성경에 있는 것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이 구절을 가지고도 설교했다. 설교를 하며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동성애자들에게도 탐닉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발정 난 똥개처럼 다니면 너희들 인권은 누가 지키냐고 책망하기도 한다.

박득훈 : 동성애자들이 신실하게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전우섭 : 조절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나쁘게 보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복음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성인경 : 난 반대한다. 성경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레즈비언 커플을 만났는데, 우리가 깜짝 놀랄 말을 했다. 그들은 6년 동안 살면서 한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로 너무너무 사랑하고 늘 그리워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을 진실한 사랑이라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순수한 감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박득훈 : 성경이 실제로 정죄하는 것은 탐닉하는 동성연애자라는 위의 구절에서 그런 논거를 찾는 것은 좀 어렵지 않겠는가?

성인경 : 위의 구절들은 동성애자와 동성연애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을 나누는 것은 성정치학을 논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논리이다. 동성애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이다. 여기에 우리가 놀아날 필요가 없다.

"동성애는 하나님이 주신 결혼제도에 위배된다"
"결혼은 보편적 제도, 동성간의 결혼 가능성 열어 놓아야"

박득훈 :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족 제도를 주셨다는 점에서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다.

성인경 : 고린도전서 7장은 고린도 지방에 유행하는 동성애에 대해 말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성관계는 부부 사이에서만 가능하고 반드시 이성과 가져야 한다고 적혀있다. 그 외의 성관계는 인정하지 않는다. 온당하지 못하다고 본다. 이를 지키는 것이 창조질서의 섭리이고 이를 지키는 것이 옳다.

전우섭 : 창세기의 내용은 보편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보편적인 결혼 제도를 만들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혼자 사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타고난 고자도 있고 노력에 의한 고자도 있다"고 답하셨다. 이는 창세기 2장의 명령과 위배되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의 결혼만이 정당하고 그것이 완벽한 시스템이라면 타고난 고자는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바울도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결혼도 인정했으나 독신에 더 무게를 두었다.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보편적인 제도이나 독신도 있고 무성인 천사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체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다.

성인경 : 독신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다. 결혼을 통한 섹스도 있고 처음부터 독신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혼과 독신은 허락하셨으나 동성끼리의 결혼은 허용하지 않으셨다. 성경 어디에도 이를 허용한다는 이야기가 없다.

전우섭 : 남과 여의 결혼만이 백프로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창세기에 독신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 어디에도 없는 말을 어디에도 있는 것으로 말해서는 곤란하다. 남과 여의 결혼제도는 완벽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다. 성경의 보편성은 인정하나 이것을 너무 강력하게 이분법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다.

박득훈 : 결혼의 보편 원리에 대한 예외 조항을 예수님과 바울이 두었다. 이것이 동성간의 결혼도 허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서 입장이 갈리는 것 같다.

성인경 : 독신은 결혼 원칙의 보편적 원리와 정면 배치되지 않고 그 원리에 근거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전우섭 : 엄밀히 말하면 독신도 죄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인 것이다. 동성애 결혼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박득훈 : 주제를 좀 바꾸어서, 동성애를 자신의 취향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푸코를 비롯한 포스트모던 측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요나)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독신도 죄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경은 독신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은사라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결혼하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사람이 육체적 욕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부부간에도 잠시 기도할 동안에만 떨어져 있으되 곧 다시 합방하라 하였다. 그  이유는 마귀로 틈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이 아름다운 부부의 생활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로 비유한 것이다.


전우섭 : 푸코를 이어 받은 서동진이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는 책에서 세 가지를 파괴하자고 주장했다. 첫째는 이성애 중심의 사회이고 둘째는 성인 중심의 사상과 성, 셋째는 생식 중심의 성이다. 이 책은 동성애자들에게 교과서가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한다. 기존 질서를 부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 뒤의 대안 제시가 없기 때문이다. 신본주의에 맞서는 인본주의도 반대한다. 그러나 성적 지향점에 대해서만큼은 인정을 하는 편이다. 성적지향점과 선택에 대해서는 인권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동성애 인정하면 뚝이 무너진다 무조건 막는 것이 대안 아니다

성인경 : 목사님 말씀은 동성연애가 아니라 동성애 자체는 받아들이자는 말인데, 그런 사상이 노리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 주장은 꼭 동성애만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 이후에는 양성애도 인정하고 매춘도 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푸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성애 인정은 다른 모든 분야로 확장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정상적 결혼 관계 외의 모든 성적 행위도 우리 권리로 쟁취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이 논리의 지향점이다. 처음부터 문을 열면 다 열어 주어야 한다.

전우섭 : 현대 사회에서 이런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21세기는 커밍아웃의 시대이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서 공유하는 시대에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성행위에 원칙이 있다. 돈을 주고 하는 것과 사랑이 없는 성행위는 반대한다.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추어야지 자꾸 막는 것에만 주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확산의 여지가 있다고 구멍을 아예 막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성인경 : 목사님은 대안과 처방에 대해서는 탁월한 식견이 있으시다. 그러나 뚝도 무너져 내린 것을 막으려면 굉장히 힘이 든다. 뚝이 무너지지 않도록 예비 조치를 해야한다. 몸은 내것이며 그 어떤 사상, 종교, 권력, 전통, 관습도 내 몸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성정치학의 논리이다. 다시 말하면 몸의 자기주체론이다. 이것이 가장 위험한 사상이다. 고린도전서 7장을 보면 결혼한 사람은 자기 몸의 주장을 못한다고 되어있다.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몸을 맘대로 굴려서는 안 되고 윤리와 질서 안에서 굴려야 한다. 몸주체론을 허용하여 일단 열어주면 모든 것이 다 열릴 것이다. 몸주체론의 핵심이 섹스다. 어떤 섹스라도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라는 것이다.

전우섭 : 어제 고신대에서 강의를 했다. 그곳이 얼마나 보수적인 곳인가? 그들은 끊임없이 막으며 자기들만 맞고 그 외에는 틀리고 자신들이 진리를 파수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고민이 있다. 점점 자기 세력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는 그것이다. 진리를 파수한다고 막았는데 세력은 작아지고 진리는 진리대로 힘을 잃는다.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흐름은 막을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것은 흐르게 놔두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로뎀을 만든 것도 동성애자들이 지하로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막으면 지하로 들어가고 그렇게 되면 지하에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나온다. 그것이 더 문제다.

박득훈 : 동성애자들에게 이제 더 이상 소수자 논리나 억압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시효성이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요나) 세상은 동성애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복음의 본질상 동성애를 비롯한 악한 행위들을 경계하여야 한다. 성경은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자(교회)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하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을 비출 것이다.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비성경적 생활에 습관된 소돔성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을 바로 가르쳐 동성애의 죄됨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또한 믿는 동성애자들에게 성경의 말씀 안에서 자기를 대면하게 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동성애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과 모습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전우섭 : 본인들은 아직도 소수자라고 생각하고 억압받는다고 생각한다. 또 사실은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유효성이 있다.

동성애자, 더 이상 소수 아니다

성인경 : 소수이긴 하지만 이들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은 굉장하다. 트랜스젠더 하리수 한 명이 청소년에게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물론 아직도 동성애자는 소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소수 논리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하는 사회의 일원이 되야 한다. 지금까지 인권을 논쟁했다면 이제는 사회의 책임 있는 자로써 바른 윤리와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동성애자 숫자가 7%가 되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다. 다행히 아직 1%도 안 되는 것이 감사하다. 숫자가 다수여야 파워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소수지만 윤리적·도덕적·사상적 영향력은 지대하다. 하리수 한 명이 청소년들의 사상을 바꾸는 일에 목사 천 명보다 더 큰 일을 한다. 이들이 소수 논리를 말하는 것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회피논리이다. 굉장히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박득훈 : 동성애자가 실제로 이성애자보다 파트너를 더 자주 바꾸는 편인가.

전우섭 : 그렇다. 이들은 심리적으로 싫증을 많이 느낀다. 직장을 다녀도 자주 옮기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1년 이상 잘 사귀면 상품을 준다. 동성애자가 일생을 약속하는 것은 기적이다. 만 명 중에 한 명 꼴이다. 목회를 하면서 그들을 이성애자로 바꾸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하나님이 바꾸어 주시면 감사한 것이다. 과거에는 동성애자들을 통해서 에이즈가 많이 전염되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이성애자들을 통해서 전염된다.  

박득훈 : 동성애자가 된 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교회가 동성애자 달란트 활용해야

전우섭 : 일반 교회서는 상담이 어려울 것이다. 일반 교인들이 자꾸 이들을 죄인 취급하지 말고 잘 섞이도록 해야한다. 그들은 엄청난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음악과 예술 분야에서는 이성애자가 게이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 달란트들을 건전하게 쓰도록 교회에서 계발시켜 주어야 한다. 교회가 자꾸 이들을 비판만 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성인경 : 나는 동성애자로 남아 있으면서 교회에 있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만약 동성애자로 교회에 있다면 우선은 존중해야 한다. 동성애자가 교회에서 버티기 어려운 것은 주변의 멸시와 정죄, 비판의 눈이 무섭기 때문이다. 교회를 떠나 선교단체에 가도 이런 어려움은 유사하다. 교회가 이들을 멸시하는 태도를 버리고 인간으로써 존중하고 여전히 사랑하고 활동을 같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성애자가 교회에서 찬양 인도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라브리에서도 동성애자가 세미나를 인도하기도 한다. 달란트를 계발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해 주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칠 때까지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요나)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말이 않된다. 교회는 모든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회개한 의인들이 주의 영광을 위해 모인 공동체이다. 물론 각 교회마다 그 역활이 다르겠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악과 혼돈의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바르게 가르쳐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넉넉한 자유를 누리게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교회가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동성애자를 멸시한다는 생각은 또 다른 저의가 내포되어 있다.


박득훈 : 자신의 동성애 성향에 대해 깊은 갈등을 느끼고 있는 크리스천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전우섭 : 우리는 상담을 할 때 두 관점에서 한다. 과거지향적인 사람은 동성애 문제를 자신의 모든 문제로 받아들인다. 미래지향적인 상담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앞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우리 상담의 포인트는 미래지향적 상담에 있다. 동성애자인 것을 인정하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서 미래지향적인 것을 찾는 것이다. 동성애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그 문제만 놓고 고민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동성애 문제를 삶 가운데 있는 문제 중에 조그만 것으로 만들면 그때부터 문제가 보이고 풀리기 시작한다. 미래를 보면 현재의 동성애 갈등이 축소된다. 축소가 되는 순간부터 문제 해결이 보이는 것이다. 한참 갈등하는 사람을 무조건 정죄하는 것과 미래를 보게 하는 것,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성인경 : 원리는 마음에 드는데,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 지 궁금하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빨리 회개를 촉구해서 동성애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청년에게 장시간을 투자했으나 너무 물렁하게 대해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죄책감을 본인이 느끼고 있을 때에는 오히려 좀 더 빨리 자극을 해서 획기적으로 돌아설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전우섭 : 그들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 본능은 없어지지 않는다. 죄책감을 느끼면 느낄수록 상담을 하다가 안 되면 다른 곳으로 간다.

박득훈 :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문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교회가 이런 청소년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전우섭 : 그런 문화가 있다고 해서 동성애자가 많아지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 자체는 본능이다. 청소년들이 동성애 문화를 많이 접한다고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호기심에 그런 문화에 접할 수는 있지만 결국 좋은 이성을 만나면 이성을 찾아간다. 크게 우려할 문제는 아니다. 단 지나치게 음란하게 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성인경 : 등급제를 지켜야 한다. 어른들 스스로가 등급제를 지키지 않아 우리 사회에서 등급제가 유명무실하게 되어 버렸다. 법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는 셈이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이런 것을 잘 지킨다면 훨씬 좋은 문화를 청소년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요나) 동성애를 본능으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 하나님은 남여의 성을 본능으로 주신 것은 섹스의 구실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된 계획을 위해 주신 부부생활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성을 문화화 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상업주의로 발달되면서 술문화를 만들어 세상에는 날이갈수록 알콜중독자의 세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벌써 600만이나 된다. 이에 세상은  벌써 트랜스젠더와 같은 용어를 만들어내어 동성애를 성문화화하고 있다. 이것이 사단이 사람들의 영혼을 무너뜨리는 작전이다, 소돔과 고모라도 이렇게 멸망을 받았다 유다서는 이를 말하여 저희도 간음을 행하며 다른색을 따라 가다가 멸망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다른색이란 단어 속에서 우리는 성문화되어버린 것을 알 수 있다.  



박득훈 :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서로 극복해야할 편견이 있다면 무엇일까.

전우섭 : 동성애자들은 피해의식을 많이 갖고 있어서 너무 예민할 때가 있다. 이성애자도 그들을 편견을 갖지 않고 보아야 한다. 앞으로는 동성애자들이 더 많이 커밍아웃할 것이다. 교회도 그 문제로 더 시끄러워질 것이다. 지금부터 목회자들에게 동성애자들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교회에서 이들에 대한 특강이나 세미나를 열 필요가 있다. 그들의 달란트를 개발해서 교회에 동참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그 아까운 달란트를 그리스도 문화로 흡수할 정도의 파워를 교회가 갖추어야 한다.

 (이요나) 동성애자들이 정신적 피해의식은 그들 인생 전부에 속한다. 그로하여 동성애자들은 우울증에 사로잡히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며 극단적인 경우 가족과 사회구성에서 분리되어 카밍아웃을 하기도한다. 그러나 어떤 상태에 있던지 그들이 갖는 고통은 끊어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질서의 틀을 놓으셨고 사람의 영혼을 권념하시기 때문이다. 이로서 사람들은 영혼의 곤핍함에 못이겨 믿음을 발견하고 소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믿는 자들도 육에 사로잡힌 사슬을 끊어내지 못하는  육체의 연약함 속에 있어 악을 끊어내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진리의 말씀 속에 역사하는 성령의 권능 안에 있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나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이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구한다.  


성인경 : 목사님 교회 출신 청년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이 일은 하나밖에 없는 일이고 영향력이 대단한 일이다. 목사님과 한국교회에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동성애에 대한 입장을 좀 더 선명하게 하는 것이 동성애자들을 위해 더 좋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막고 한국교회의 문제를 막을 수 있다. 목사님이 가지신 동성애 지향성에 대한 개방이 동성애자들이 숨는 길이 되고 있다. 그것이 수많은 청년들이 변화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며 숨어 들어가는 방어벽이 되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 한국교회가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돕는 것이다. 원칙을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의 고민이다. 사랑으로 접근하려다 원칙을 양보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원칙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위해 희생할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교회가 성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설교하기 바란다. 현대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 있는 문제가 섹스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아가서에 대한 설교를 평생동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다. 하더라도 영해(靈解)로 한다. 성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가서 설교는 없다.

양정지건 : 동성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전체 인구의 4∼13%가 동성애자라고 한다. 과거 조선시대에도 동성애자가 존재했고 성경에도 그런 예가 있다. 이러한 사실은 학습을 통해 동성애자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성인경 : 4%는 너무 많다. 지금 미국도 13%는 안 된다. 미국은 현재 7%이다. 미국에서 7%가 되기까지 불과 30년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1% 미만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도 7%가 되는 데 30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공개적인 동성애 교회가 수도 없이 생기고 동성애 목회자 안수 문제 등이 나올 것이다. 지금 숫자가 적을 때, 우리가 제대로 말하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어느 나라나 동성애자가 있었다고 보지만 그 숫자는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이 커밍아웃을 하고 사회 여론을 조성하고 미디어가 떠들고 이념적 배경이 번성하니까 동성애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던 사람들이 편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요나)이 땅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는  한 인구의 1%를 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역적 통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태원이나 종로3가를 중심으로 통계를 낸다면 3%선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1%로 미만에도 훨신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하나님의 영이 그의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양정지건 : 동성애자 단체에서는 로뎀교회가 동성애자 인권 문제에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커밍아웃을 어떻게 보는가.

전우섭 : 그들은 신앙과 관계없이 움직이는 이념 서클이다. 말하자면 운동권이다. 너무 앞서 나가고 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하는 것이어서 그들과 같은 길을 가기는 어렵다. 커밍아웃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이를 억지로 일률적으로 하라는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커밍아웃을 운동에 이용하려면 안 된다.

박득훈 : 이제 토론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두 분 말씀을 들으며 동성애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견해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동성애자에 대한 깊은 헌신된 마음으로 이겨나간다면 견해차가 오히려 우리를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끌 것이다.

양정지건 (2003-05-19 오후 2:35:07)

출처 : 크리스챤상담실
글쓴이 : 요나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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