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유령같이 느껴질 때
요한복음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천상의 비밀을 펼쳐놓은 퍼즐들을 보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끼게 된다. 사도 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활 속에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기념하며 그의 행하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생각들을 한편 한편 퍼즐로 맞추어 놓은 것 같다.
요한은 태초의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증거함에 있어 한계 속의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어 그 행하신 일들을 모아 각 장별마다 먼저 삽화를 넣은 다음, 세부 내용들을 개진하여 그 비밀한 이름들을 강론하였다. 그로 하여 요한복음을 읽노라면 눈을 떠 보이는 것과 눈 감아 보이는 것이 마치 신기루와 같아서 하나로 모아졌다가 흩어지고 흩어진 것이 다시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옴을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 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증거하였다.
요한복음 1장에는 먼저 어둠을 밝히며 홀연히 나타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이 그려져 있고, 2장에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혼인잔치의 삽화 뒤에 도사리고 있는 더러운 종교 행위들이 그려져 있다.
또 3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그리스도의 실체를 발견하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의 어리석은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고, 4장에는 삶에 찌들어 갈급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의 생수를 주기 위해 먼 길을 찾아 나선 예수님과 추숫꾼 된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으며, 또한 5장에는 38년 된 병자의 일어선 사이로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문이 열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6장에서 인생의 두 가지 문제를 종결하시는 만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사람이 이 땅에 살아 온 이래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는 죽음을 보지 않고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사람들은 하늘을 생각하게 되고, 또 이상과 철학과 종교적 신념 을 만들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창세이래 어느 시대이고 영생의 문제를 해결한 신도 없으며 사람도 없다.
우리는 앞에서 영생에 관한 여러 가지 그림을 보아 왔다. 이 영생의 열차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종과 문화와 종교와 그리고 지역과 시간을 초월하여 그 정하신 마지막 날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 비밀한 하나님의 생명을 계시한 것이 성경인 것을 믿으며 이를 가리켜 우리는 생명의 말씀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상고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 오지 않는 것은 저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려 하기 때문이라 말씀하셨다(요5;39-44). 이는 마치 한 침상에 누운 부부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런 일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 시도 쉬지 않고 영생을 꿈꾸며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빵과 재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상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빵과 재난을 해결할 지도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온다해도 유령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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