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민노당과 진리의 정체성

이요나 2007. 12. 30. 12:05

대선이 끝난 후..정당의 정체성에 대한 자성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나는 원래 민노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니였지만 민주 노동당의 발전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던 사람 중에 하나다. 내가 민주노동당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 출발할 당시 나름대로 민중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인권과 권익을 대변해 줄 정당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며 나 또한 작은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한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결과의 참담함을 목도하며 그동안 십여년간 민노당이 발전하는 가운데 염려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떠나게 했던 몇가지 일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민노당은 다른 정당들이 크게 다루지 않는 민권에 속한 많은 일들에 앞장을 서 왔다. 사회 전반적인 힘을 구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며 약자들의 편에 서서 많은 권익을 위해 대변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일들을 보며 민노당이 한 일들이 과연 우리 국민들이 원하였던 것인가를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것은 나의 생각 뿐만이 아니라 민노당을 사랑하는 대다수의 견해일 것이다.)

 

물론 이번 대선에 참패를 한 후에 당내에서도 정체성을 위한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주사파적인 사상과 이념을 가진 지도자들의 일선 후퇴와 당 정체성 쇄신을 외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러한 목소리를 내는 그들 또한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실 그들도 민노당의 정책과 이념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말은 그 나물에 그밥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다 알 거니와 그동안 민노당이 좌파 노선에 앞장 섰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선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어차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국민은 북한은 외면할 수 없으며 통일이라는 대명제의 사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북한의 이념과 사상에 대해 마음을 열고 용납해야 할 시대에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민노당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자기 고집과 자기당착에 빠져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여 국민들이 민노당을 향한  진정한 의미에 대한 배반이라 하겠다. 물론 이것은 통합신당을 주도한 현 정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승리는 경제를 살리자는 명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문제는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CEO들의 절대적 사명이며 현안이다. 이 문제를 소홀히 한 것은 현정권 젊은이들의 자가당착적인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지 다음 정권의 지도자들은 누구라도 두번 다시 실수할 문제가 아니다. 또한 우리는 꼭 경제전문가 대통령이 되어야 경제를 살린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 꼭 믿을만해서도 아니도 또 그동안 그들이 일들을 잘해왔기 때문도 아니다.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절대적으로 지지한 것은 그들의 사상과 이념이 통합신당과 다르고 민노당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좌파적이진 않지만 10년 동안 물먹은 그들은 이제 좌파를 포용하는 진보와 개혁을 향한 국민적 여망을 알고 있다.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선택한 것은 여러가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발전과 경제, 외교, 사회, 교육, 노동, 그리고 북한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은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며 건전하게 자리잡고 흘러내려온 국민적 합의 속에서 보편적인 생각을 하고 점진적인 발전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발전은 어느 누가 앞서서 외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일개인의 리더쉽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가한다.  오랜 삶 속에 형성된 민초들의 현실적 소망과  보편적인 지식, 그리고 자주적 민족성의 개발과 정신 문화의 향상을 따른 사고와 의식의 발전에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발견되고 개혁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합리적인 정치 현실 속에서 각분야에 헌신된 리더들의 바른 양심과 의로운 봉사로 말미암는다.

 

나는 국민들이 민노당을 떠난 것은 그들이 지향하는 잘못된 정책노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 예를 들어 민노당은 지난 몇년동안 소수성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성전환수술의 합법화와 성전환자들의 호적변경 특별법과 같은 도덕과 윤리에 속한 문제에 깊숙히 관여해 왔다. 더구나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 남여 동성애자들이 민노당 핵심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권익을 위한 일을 추진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균형적 사고의 확대와 조율일 것이다.

 

나는 몇차례 민노당에서 개최한 성전환특별법 공청회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소수의 목소리를 귀히 여긴다는 민노당의 명분은 마치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들 곧, 자기들 사고와 이념들을 포진하며 사회저변의 소리를 깔아 뭉게는 현장을 여러번 목도하였다. 

 

다시 말하여 자신들의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만 모아 놓고 박장대소하며 보도기사와 명분을 위한 양념으로 초청한 반대의 소리를 내는 패널의 양심의 소리는 사회자가 면박성 조크를 던져 장내의 야유를 선동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회중 속에서 양식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보았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인민재판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들었다. 그러나 양식있는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가 사회 저변에서  얼마나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의 작은 탄식의 기도가 하늘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있는것을 왜 그들은 모르는지 묻고 싶다.

 

나는 대선 전 소수성의 인권을 외치며 민노당에 한 역활을 하는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한 여성 리더가 종로에서 총선에 출마한다는 보도를 보았다. 카밍아웃한 동성연애자임을 표명하고 공공연하게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치가 얼마나 발전되어 있는가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분이  종로에 출마하는 것은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종로에 포진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종로는 대한민국 중심의 정치를 이끌어 온 보수의 한복판이다. 이 지역은 한국의 정치를 주도하며 도덕과 윤리를 숭상하며 수천년을 유유히 흘러내린 큰 강물 줄기와도 같다.  마치 그들의 마음은 한국의 역사를 묵묵히 표효하고 있는 고궁의 의연함과도 같다 하겠다.  그런데 갑자기 대선을 몇일 앞둔 어느날 여성 레스비안이 제출한 총선 도전장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녀의 총선 도전장으로 소수의 박수소리가 파고다 극장을 중심으로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할려는지는 모른다. 사실은 나도 그들 속의 한 사람이였다. 그러나  민노당이 민중들 마음 속에 의연하게 일어서기를 소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서 "이건 아니잖아!" 라는 탄성이 속출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진정한 인권을 회복하는 길은 인생의 바른 길을 제시하며 잘못된 길을 바로잡고 비틀어진 마음과 습관들을 고쳐 나가도록 새로운 비전과 삶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지 무지막지한 사람들의 욕망적 요구를 충족하며 그것이 바른 길이라고 우기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밤은 밤이고 낮은 낮인 것이다. 서로 양분된 가운데 낮은 밤을 돕고 밤은 낮을 소망하며 진리의 등불을 밝혀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진리는 약자의 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둠을 밝혀 밝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리의 역활이며 또 정치와 종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속에서 바른 이념과 사상들이 조율되고 민중들 속에서 채택되어 새로운 역사들을 창출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서민과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민노당에 지극한 사랑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민노당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 볼 것이다. 내가 이처럼 관심을 갖고자 하는 것은 그들이 민중의 진심을 깨달아 다음에는 나와 같은 소수의 마음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그들에게 진리에 대한 각성을 권면하고 싶다. 세상은 진리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고 그 종착역은 결국 진리로 충만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노당이 먼저 자각해야 할 것은 불의한 자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민중의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는 항상 바른 의식 가운데 인생을 이끌어 가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부디 밝고 정직한 민중의 대변자의 정당이 되기를 기도한다.(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