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신유은사2) 병고침과 죄사함

이요나 2000. 7. 12. 06:57

(신유은사2) 병고침과 죄사함

*서론*
나는 하나님께서 질병을 고치시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나는 무엇이라 답변할 수 없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기도 하고 또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대한 응답의 확률은 5대 5입니다. 고침을 받을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신유의 은사(gifts of healings)는 복수형입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기도를 받고 치유 받은 사실이 있다면 그 때 당신은 신유의 은사(a gift of healing/단수형)의 하나를 체험한 것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신유은사를 행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신유의 은사가 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심으로 자기의 몸이 고침을 받았을 때에 그는 신유은사 중 하나를 체험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로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셨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 중의 한 사람은 신유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은사가 누구를 통하여 나타난 것인지 모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병을 고침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병고침을 받고 어떤 사람은 고침을 받지 못한 것일까요?

이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병자들에게 임하신 여러 가지 방법과 또는 신유 은사가 나타난 장소, 바디란케션(몸동작 언어) 등, 여러 공식 같은 것을 만들어 기도원이나 교회를 돌면서 신유집회나 병고침을 위한 상담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우롱하는 처사입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똑 같은 방법으로 나타나시는 것만도 아니고 또 어느 특정한 사람이 항시 사용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주권을 가지고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고전12:11) 따라서 사람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자신의 뜻대로 자기가 부른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시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원칙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못고칠 병은 없다! *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신유의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기 위하여 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사람들이 베드로가 지나가는 길에 데려다 놓은 병자들이 그의 그림자가 스치기만 하여도 병이 나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러한 능력이 그의 사역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서를 보면 그의 제자 디모데가 위병으로 고생할 때에 바울은 그를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였지만 고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자주 일어나는 위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마시라 하였습니다. 또 빌립보교회의 지도자 에바브로디도는 옥에 갇힌 바울을 섬기다가 중병에 들었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죽음 직전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다.(빌2:27) 또 바울의 선교 여행 중 드로비모가 병을 얻어서 뒤에 남겨 둔 일도 있습니다.(딤후4:20) 또한 바울은 자신의 질병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기를 3번이나 기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고후12:7,8)

갈라디아서를 보면 바울이 전도를 위하여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이 몸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떠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행16:7) 그러나 그 당시 바울을 통하여 일어난 신유의 은사는 대단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가르칠 때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일을 행하게 하셔서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기만 하여도 병이 떠나가고 악한 귀신들이 나가니라".(행전19:12)

*병고침 보다 더 중요한 것 *
예수께서는 자기 고향이신 나사렛에 방문하셨을 때 고향 사람들의 불 신앙으로 소수의 사람들만을 고쳤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의 믿음이 없음을 보고 매우 놀라셨습니다.(막6:5) 결국 고향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 신앙으로 하여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어떠한 병이라도 고칠 수 있었던 것인데 믿음이 없어서 기회를 놓쳤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의식과도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병으로 하나님께 고쳐 주실 것을 기도하였을 때 주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12:9)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병 고침을 받지 못한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것 이상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직 고침을 받지 못하였는데도 주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단순히 고침을 받는 것보다도 귀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직 고침을 받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주께 자신을 맡기고 주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 줄 것을 믿고 신실한 믿음으로 주께 나아가는 그러한 믿음은 정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벧전4:19)고 권면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주의 주권 속에 있음을 믿고 모든 것을 주의 손에 의뢰할 때 비록 병고침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는 주의 손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며 그의 영혼이 안식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병을 통하여 그에게 믿음을 더하시는 주의 은혜인 것입니다.

*안주실 이유도 없다 *
고린도전서 12장 29절에서 바울은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 하는 자겠느냐"고 질문하고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분명히 모두가 사도가 아니며 모두 예언자가 아니며 모두 교사가 아니며 모두 능력을 행하지 못하며 모두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며, 모두가 다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나 또한 목사가 된 이래 오랫동안 능력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와 병고침의 은사를 사모해 왔습니다. 금식도하며 어떤 때는 밤을 새워 떼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 들어서 더욱 강렬하게 믿음의 은사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는 몇 가지 은사를 체험하였습니다. 방언도, 방언의 통역도, 그리고 예언의 은사도 체험하였습니다. 또한 비록 작은 경우지만 귀신을 쫓아내는 신유의 은사도 여러 번 체험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가르침의 은사 속에서 지식의 은사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강렬한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기를 더욱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복음사역에 있어서 믿음의 은사와 신유의 은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이렇게 떼를 쓴다고 해서 꼭 주신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시지 않을 이유도 없습니다.

* 지금 우리가 할 것은? *
성령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이므로 주권이 오직 그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전지하심과 계획하심에 의하여 그의 필요하심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 일생에 놀랄만한 은사가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기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꼭 내가 달라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나는 이것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간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일 것입니다. 나는 오늘 성경에서 병든 자를 위한 우리 교회가 행할 바를 배웠습니다. 다름 아닌 야고보서 5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병든 자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장로들이 기도하면 자기의 병이 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문제는 솔직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요즘 교회에서는 목사나 장로들이 이러한 문제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목사는 주일 날 설교나 하고 장로는 교회 운영을 하는 사람들로 알 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병이 들어도 병원이나 기도원은 갈 망정 질병으로 교회 지도자들을 청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풍조입니다. 또 성경은 청함을 받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름이란 오리브 기름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나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고 행하는 자에게는 그대로 될 줄을 믿습니다.

* 교회의 기도! *
야고보는 계속하여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범죄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믿음의 기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주께서 고치실 것을 신뢰하는 믿음의 기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병이 죄와 관련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으시며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함을 얻을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하셨습니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기도를 할 때에는 죄 사함의 기도가 함께 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 야고보는 계속하여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권면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너희의 죄를 서로 고하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문제는 바로 이점에서 솔직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죄를 감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상 자신의 체면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성경은 자신의 죄를 서로 고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간에 꼭 필요한 온전한 교제입니다. 서로가 사로를 감추면 우리의 기도는 거짓말 투성이가 되며 우리의 성결은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인됨을 위하여 자신의 죄를 고하고 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너희의 죄를 서로 고하라" 라는 말씀을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온 성도의 일치된 마음으로 올리는 교회의 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병든 자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종말을 사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야고보서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