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떡‘
(히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그 들은 바 말씀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얼마 전 얼마전 탈랜트 안재환의 자살사건이 뇌리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 유명 여배우 최진실의 자살이 또 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마치 이 때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인터넷상에서는 연일 자살 바이러스들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단 하나뿐이 목숨을 스스로 마감하겠느냐마는 그러나 이들이 죽음은 빵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을 포기할만한 뚜렷한 명분도 없다. 어쩌면 이들은 죽음 저편에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망하게도 이들에게 또 다른 세상은 없다. 죽음 저편의 생명은 이생과 한 줄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이유든 스스로 이 줄을 끊은 자에게는 두 번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불꺼진 객석은 무저갱을 열어둔 불랙홀이 있을 뿐이다.
아들의 몫으로 비명의 강을 건너간 어미의 통곡을 가슴에 담은 아들은 이러한 비보를 들을 때마다 심장의 생살을 찢게 된다. 맥없이 생명줄을 내려놓은 이들의 허망한 울부짖음이 모두 내 고통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 그 책임이 생명의 떡을 맡은 우리에게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주님은 우리에게 “나는 하늘로 내려 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요6:51) 하셨고 그의 떡을 먹어 살진 우리는 이웃된 그들에게 내게 있는 떡을 나누어주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생명의 떡을 받고도 영생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중에 있을까 두렵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풍족한 떡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떡을 소화시키지 못하였다면 그 떡이 어찌 그를 살지게 하겠는가? 덜삭은 떡덩이가 창자를 뒤틀지 않겠는가? 그로 하여 믿는 자들 중에서도 소화불량 환자들이 배를 움켜쥐고 고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의 책임이 아닌가? 나는 이들에게 떡을 맛있게 먹는 법을 알려 주고 싶다.(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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