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20081102 ‘형상회복’

이요나 2008. 11. 1. 15:29

‘형상회복’


사람에게 생각이라는 것이 없다면 어떨까? 아마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은 생동감도 없고 또 삶의 의식도 없고 새로운 이상이나 철학도 없을 것이고 생명과 삶의 시간은 있으되 지식의 발전과 지혜의 흐름조차 없는 밋밋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식물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살아 있는 생물로 지으신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여기서 사용된 생물이란 히브리어 ‘네페쉬‘라는 말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는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 곧 사람과 짐승은 물론 기는 것, 공중의 새와 물고기들도 포함된다. 이로서 모든 생물들은 그 정하신  혼의 역량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연구하며 자기의 삶을 설정해 나간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며 모든 분야에서 무궁무진한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은 가히 천하만물을 다스릴 만물의 영장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는 마치 먹고 살아가는 일에 노예가 된 기분이다. 한낮 지나칠 일장춘몽의 인생살이인데도 한 세상 살아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그 어느 시대에도 생명의 만족케 한 영웅도 없었고 평안의 날도 없었다. 돌고 도는 인생수레 속에서 지지고 볶고 아귀다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렇게 덧없이 한 생을 마치고 만다.


욥기에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욥은 ‘평안한 자의 마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린다’(욥12:5) 말하였다. 사실 인생 중에서 욥처럼 평안의 복을 누리던 사람도 없었고, 그처럼 혹독한 재앙을 겪은 사람 또한 없다. 그러기에 욥은 능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 ‘이제 모든 짐승들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들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말하였다. 이 말은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의 지혜가 짐승이나 새만도 못하다는 말이다. 주어진 자기 삶을 사는 데는 짐승이 인간보다 낫다는 말이다.


짐승들이 주어진 생명을 한 것 누릴 수 있는 것은 창조자의 생각의 궤도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짐승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실패는 바로 그의 형상과 모양의 궤도를 벗어나려는데 있다. 이는 마치 집안의 애완견이 주인의 침상을 넘보는 것과도 같다.


이지음 나는 내가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심히 두렵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미로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도 없고 해결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는 세상의 끝이 오고 있다는 조짐이며. 이미 한 영웅이 가까이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아직 그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서서히 백말을 타고 빠른 걸음으로 달음질처 올 것이다. 그가 나타날 때 세상은 환호할 것이며 그는 얽힌 실타래를 풀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더욱더 힘써 그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한다.(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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