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소쩍새 소고(小考)’

이요나 2008. 10. 17. 18:19

 

‘소쩍새 소고(小考)’


날이 갈수록 세상 돌아가는 조짐이 심상치 않다. 지구에 닥쳐 올 재앙보다도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 무겁다. 그러나 확신하건데 아직은 절대로 끝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직 적그리스도의 날이 이르지 않았고. 오늘의 진통은 그날이 오기 앞서 필히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기 위해서는 여름이 있게 마련이고 국화꽃이 피기 위해서는 소쩍새는 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조짐들은 그만큼 종말의 시간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는 예증이다.


최근 나는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과연 내가 그 말씀처럼 주를 사랑하고 있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내가 심기는 서울 갈보리채플에 빚진 사람 같아서 미안하다. 사례 한번 받아 보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고 못난 목사 때문에 위대한 갈보리채플의 이름이 세인들 속에 망신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람들의 뜻을 따라 적당히 비유를 맞추며 간이라도 빼어 주었다면 외견상 우리 교회의 모습은 한결 여유로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와 같은 일을 당하면 나는 그들 눈에는 함께 있기조차 부끄러운 형제들이 소중에 지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형제들이 정말 진정으로 우리 교회를 사랑해서도 아니고 또 나를 지극히 사랑해서도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이 달성되면 떠날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느날 불연듯 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자신이 택하시고 제자로 세우신 가룟 유다를 포기하신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그렇게 되리라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를 붙잡을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성경이 미리하신 말씀을 넘어섰다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아직도 성경은 동일한 메시지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부름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과 또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함에도 누가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가룟 유다처럼 자기생각에 몰입하고 있다면 결국 그는 성경에서 포기 된 자처럼 되고 말 것이다. 이 또한 주께서 그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믿는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지키는 일이다. 세상의 흐름에 생각과 몸을 내 맡겨버린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믿음의 신의를 저버리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겠는가? 또한 교회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갈라디아서 너희가 서로 짐을 함께 지라 하였다. 형제가 함께 짐을 지면 가볍다. 만약 당신이 형제의 짐을 함께 지지 않으면 누가 당신의 짐을 함께 지겠는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면  예수께서 내 짐을 져 주실 것이다. 그리하면 주께서 편히 쉬게 하실 것이다(요나)



'세미한음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081116 “괜찮을 것이다“  (0) 2008.11.17
20081102 ‘형상회복’  (0) 2008.11.01
'인생과 떡‘  (0) 2008.10.04
“하얀 추석“  (0) 2008.09.13
2008 0831 진리가 무엇이냐?  (0) 2008.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