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14:12,13) “바벨론의 비밀”
(사14:12,13)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우선된 도덕적 속성은 자율인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율적 선택권을 주셨다. 또한 하나님의 우선된 정서적 속성은 사랑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또한 인간은 신을 숭배하도록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따라서 인간은 무엇인가를 숭배하도록 유도되며 만약 인간이 진실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해도 그 무언가를 예배하여야만 한다. 당신의 숭배의 주요 대상은 당신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인간 또한 숭배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한 욕구는 이미 어렸을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은 “아빠 나를 봐주세요”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아이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들에 대해 칭찬 받기를 한다. 칭찬을 받고자 하는 의식 이것이 곧 숭배의 원리이며,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나르시소스 신’이라고 불렀다.
I.여호와의 날(이사야 13장)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6)
A. 바벨론 – 바그다드 남쪽의 유브라데 강변에 위치한 바벨론 왕국의 수도
‘신들의 문’이란 뜻을 가진 바벨론이란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한 것은 창세기 10장이다. 바벨론의 지정학적 위치는 지금의 이라크에 속한 바그다드의 남쪽 80km지점 유브라데 강변에 위치한 바벨론 제국의 수도였다.
바벨론은 창세기 10장 10절에 기록된 함의 아들 구스의 아들로 태어난 세상의 최초의 영걸이라 불린 니무롯에 의해 건설되었다. 이 역사적 증거는 B.C.2500년경의 수메르인의 역사에도 사르곤 왕에 의해 파괴 된 이 도시의 신전을 니므롯이 복구하였다고 기록되었다.
그후 이 도시는 함므라비 왕(B.C.1750)에 의해 바벨론 제1왕조의 수도가 되었으나 함무라비가 죽자 세력이 약화된 바벨론 제국은 갈대아 우르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던 앗수르와 엘람의 공격을 받아 앗수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 갔고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셋3세의 때에 이르러 앗수르와 통합되고 산헤립 이후에는 앗수르 왕을 바벨론 왕이라고도 칭하였다.
그러나 산헤립이 죽은 후 그 아들 에살핫돈 왕 이후부터 쇠약해진 앗수르는 변방 속주였던 나보폴라살에 의해 왕권이 찬탈되어 신바벨론(갈대아) 왕조가 창건 되었으며 바벨론 왕국은 메데와 연합하여 B.C.612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하였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한 후 150년 뒤 주변국가의 흥망성쇄 속에서 오랜 세월 주변 국가들에 침공을 받아 온 남유다 왕국도 주권을 상실하고 앗수르와 애굽을 등에 업으려다 실패하고 바벨론에 의해 여호야김의 아자비로 왕이 된 시드기야 때에 느부갓네살 왕의 예루살렘 포위로 18개월 만에 함락되어 이스라엘은 페르샤(바사)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기까지 바벨론 70년간 포로생활에 들어갔다(B.C.586). 7).
성경에서 바벨론은 또 다른 영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계17:5) 증거하였다. 또한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는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유대인을 향하여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7:43) 책망한 바 있다. 이와 같이 바벨론은 역사 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대적의 대상이었으며 계시록 18장에서 바벨론 성이 무너질 때까지 영적 전쟁의 현주소가 되고 있다.
그러면 신약이 증거하는 바벨론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우리가 베드로 서신에서 한 가지 근거를 발견하게 되는데, 사도 베드로는“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5:13) 기록하였다. 이 기록에 대하여는 그 해석이 분분하지만 나는 베드로가 말한 바벨론은 로마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 당시 로마 교회가 세워져 있어,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었고 바울은 그곳에서 죽임을 당했으며 베드로 역시 로마에서 순교를 당했다.
B. 바벨론의 멸망
바벨론의 멸망은 B.C. 726년 아하스 왕의 죽을 때 이사야에 의해 예언되었다(사14:28). 바벨론 제국은 남유다를 멸망시킨 느부갓네살 왕 때에 그 세력을 떨치고 다니엘이 예언한 것처럼 금신상의 머리에 해당하는 막강한 통치력을 발휘하여 느브갓네살 2세 때에 이르러서는 갈그미스 전쟁에서 애굽을 장악하고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을 함락 시켰다(왕하24:2)
그러나 정치적 혼란으로 내분이 자자지자 국력이 날로 쇠약해 지기 시작했으나 B.C.556sus 나보니더스 왕의 집권으로 바벨론은 일시적으로 국권이 안정되었으나 그가 아들 벨사살에게 왕위를 이양하고 달을 신봉하는 종교에 심취하여 엘람의 데마로 떠나간 후 벨사살 왕의 타락한 생활로 바벨론 제국은 100년의 막을 내리고 페르시아(바사)의 고레스 왕과 메대의 다리오왕의 연합군에 의해 B.C.539년에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단5:30).
오늘 13장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 열국들을 동원시키셨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한 군대를 부르며 손을 흔들어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 가게 하라(2) 하시며 먼나라의 군대를 불러 검열하셨다(4).
흥미롭게도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흡사하다. 어쩌면 이사야는 오늘날의 정경을 눈으로 보듯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911사태 이후 미국 부시 대통령은 우방국가들로 구성된 연합군을 모아 이락을 공격하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옛 바벨론은 오늘의 이락에 해당된다. 이사야는 5절에서 여호와의 진노의 병기를 언급하고 있다. 이는 바벨론을 멸망 시키기 위해 신무기가 등장 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C. 멸망의 여호와의 날(6-16)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때의 상황을 말하여 ‘사람의 마음이 녹으며’(7), ‘임산한 여자 같이 고통(8)과 같다 하였고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실 것이라 하였다(9).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빛을 내지 아니할 것이며 해와 달이 빛을 잃을 것이라’(10) 증거하였으며, 그러므로 그 곳에는 사람이 정금보다 희귀해져 오빌의 순금보다도 희귀하게 되리라 하였으며(12), 하늘을 진동 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13) 하였다. 이는 그 전쟁에서 핵무기가 사용될 것을 예고한 것일 것이다.
또한 이사야는 그날의 상황을 말하여 메대사람들은 은, 금을 돌아 보지 않고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것이라 하였으며(17) 갈대아의 자랑 바벨론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멸망할 것이라(19)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그 지역에서 문물을 교역하던 아라비아 사람의 떠날 것이며 궁성에는 들짐승의 처소가 될 것이라 하였다. 나는 이러한 일이 우리의 눈으로 목격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다. 여호와의 날 곧 여호와의 진노의 날은 바로 이 세상을 멸망시킬 여호와의 날의 시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록에서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기록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 일들을 계시록 6장에서 18장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계시록 기자는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며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계18:14) 하였으며, 다시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계18:21) 증거하였다. 우리는 이 일들은 다니엘이 말한 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70이레’(seven) 중 아직 남은 한 이레(seven) 후반전에서 일어 날 것이라 믿는다.
II. 하나님의 경영 (이사야 14장)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듯이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24)
A. 야곱을 다시 택하심(1-2)
이사야 선지자는 14장 서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일으키실 것을 기록하여 “여호와께서 야곱을 긍휼이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 나그네 된 자가 야곱 족속에서 가입되어 그들과 연합할 것이며”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연합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보게 된다. 여기서 사용된 연합이란 말은 창세기 2장 24절에서 처음 사용된 말로서 남자가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연합이란 뗄 수 없는 영혼육의 일체를 뜻한다.
이 말씀과 관련하여 우리는 호세야서에서 하나님은 그의 짝된 이스라엘에게 이혼장을 던지셨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 버리신 이스라엘을 다시 선택하셨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에게 버리실 권세와 취하실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 선택하심에는 누구와 의논할 필요 조차 없다. 버리신 이스라엘을 다시 선택하시는 것은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의 본토로 돌아 올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는 로마 폼베이의 공격으로 멸망 받은 이후 예수께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따라 1948년 5월18일 이스라엘 독립으로 성취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그네된 생활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의 땅으로 다시 돌아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황무지 된 그 땅을 옥토로 만들과 이제는 그들을 압제하던 나라들을 주관하고 있다. 이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는 2700여년 전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3,4) 증거하였다.
사실 역사상으로 바벨론 국가의 멸망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더 이상 바벨론이란 국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땅에 5000년의 오랜 역사 속에서 멸하고 없어진 나라가 다시 그 그의 땅에서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오직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경영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한 바벨론은 어디를 뜻한 것인가? 이는 이미 다니엘을 통하여 예언한 바와 같이 바벨론 왕국을 머리로 하여 한 금상을 이룬 거대한 역사 속에 감추어진 비밀한 바벨론의 역사이다. 이는 매데와 바사와 헬라제국과 로마제국을 이어 온 오늘의 유럽연합국의 실체를 뜻한다. 지금 우리 앞에 이 제국의 실체는 서서히 들어 나고 있고 이러한 중에 이스라엘은 자기의 본토로 속속 돌아 오고 있는 것이다.
B. 인간의 욕망-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사실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인간은 비록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되었지만 그의 신적 이미지와는 다르며 내면에는 신적 위치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더욱 높은 것을 향하여 나아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성취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케 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성취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그의 충만한 지식에 이르러 그의 약속을 따라 영생에 들어 갈 때에 성취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예수님 오시기 1000여년 전에 살았던 다윗은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17:15) 노래하였다. 이는 다윗이 영혼의 잠에서 일어날 때 죄의 육신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를 것을 믿고 노래한 것이다. 이것이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의 소망이다.
요한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 (요일3:2)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아직 우리가 장차 어떠한 모습이 될 것인지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에겐 확실한 약속이 있음을 믿는다.
바울은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15:49) 증거하였고 그 약속은 바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하신 말씀에서 확증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성경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3:10) 하심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탄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자신을 높혀 자신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한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꿈은 이루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하였기 때문에 노력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중에 어떤 이는 ‘하나님을 높이고 즐겁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닮고자’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높임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닮고자’ 한다. 또한 어떤 이는 ‘하나님을 위해 영광을 추구’하고 있는 반면, 다른 이는 ‘자신을 위한 영광을 추구’한다. 어떤 이는 ‘하나님을 닮고자 한다’ 하고, 다른 이는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한다.
C. 루시퍼의 기원- ‘내가 신이다’
우리는 창세기 3장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에서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을 보게 된다. 사단의 추종자 뱀이 하나님이 금하신 실과를 먹게 하기 위해 하와를 유혹하러 에덴동산에 왔을 때, 사탄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그것을 먹지 못하게 금한 이유는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신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하와는 그 속에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불일 듯 일어나 자신의 의지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 유혹에 넘어갔다.
그러나 하와와 아담이 그 과실을 먹자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의 형상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로부터 그들은 더 이상 신의 형상이 아닌 흙의 존재였고 그 마음은 죄에 물들어 버렸다. 그로부터 그들은 그들의 영의 지배가 아닌 그들의 육체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으ㅟ 사람이 아니니라”(롬8:9) 기록하였다.
사탄의 유혹과 같이 오늘날 몰몬교도들은 이와 비슷한 덫을 놓고 있다. 몰몬교도들은 만약 몰몬교 믿음에 충실하면 죽어서 신의 위치에 오르게 되고 배우자와 함께 우주에 있는 행성 중의 하나에 갈 수 있을 것이며 거기서 자손을 낳게 되고 그 자손들이 신과 같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더 나아가 인도의 힌두교는 명상과 금식을 통해 인간은 아비타와 같은 신의 존재에 도달 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그들은 아비타를 말하여 육체를 갖고 있는 신으로 여겨 그를 숭배한다. 그 결과 세계 도처에서 그를 예배하며, 도처에 그를 숭배하는 신전들이 세워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문명국가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활동이 활발한 뉴에이지운동은 힌두교를 좀 더 쉽게 받아들여 지도록 새로운 형태의 옷을 입고 서방문화에 침투한 우상숭배 운동이다. 뉴에이지에 속한 의식을 통해 신적 상태에 도달하도록 촉구하며 초월명상에 몰입하도록 부축이고 있다. 이들은 우주적 명상에 도달함으로써 의식 혁명을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중 셀리 멕클린(Shirley McClain)은 자신의 영적 인도를 받아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라고 소리쳐 외치도록 쇄뇌시키며, 더 큰 소리로 외치며 몰두하면 신적 위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이미 TV복음 전도자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관상기도란 사실 자유주의 신학자 성공회 신부가 만든 명상 프로그램으로서 이 원리는 힌두교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인간은 충분히 신이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인간처럼 항상 돈에 쪼들리는 것처럼 헌금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사43:10) 하셨고 다시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44:6),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사45:5) 하셨으며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라.” (사45:22)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인간은 신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처음부터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그 영광은 그리스도의 형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D. 미혹의 공통성
이 모든 시작은 오늘 이사야 선지자가 거명한 계명성 곧 ‘루시퍼’이다. 우리는 또 에스겔서 28정에서 그의 창조된 기원과 패망의 원인들을 살펴 보게 된다. 사실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사기꾼이다. 왜냐하면 그는 사기의 대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몰몬교도들과 TV전도자들은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증거하기 위해 요한복음 10장을 즐겨 언급한다.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너희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요10:34-36) 하셨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그들은 그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대개 다윗의 시를 인용하여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느니라” (시82:6)고 말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 다음 구절을 읽는다면 자신들의 존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 구절에 “너희는 보통사람들과 같이 죽으며”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말한 성경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율법에 기록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라고 쓰여 있다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여기서 출애굽기 22장8,9절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출애굽 당시 사람들의 어떤 과실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은 재판장 앞에 와야만 했으며, 여기서 사용된 히브리어 ‘재판장’은 ‘엘로힘’ 곧 ‘신’이다. 율법에 재판장을 신으로 불린 것은 재판장에게 역사하는 영적 권위를 말한 것으로 그들 앞에 선 사람들이 모두 그의 판결에 순종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에서 하나님께서 신들이라고 부른 유일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재판할 재판장으로 선정된 사람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겠다는 생각은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축복된 생각 또는 저주의 생각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는 하나님을 닮아서 그의 형상대로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아니면 ‘나는 나를 높임으로써 나를 영광되이 그리고 추종 받게 만들 것이다’ 가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는 이사야 14장 15절에서 교만한 바벨론의 지배자 루시퍼의 멸망을 보게 된다. 그는 성경에 이르심과 같이 음부 맨 밑에 빠져 유황불 속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22절에서 단호하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쳐서 그 이름과 남은 자와 아들과 후손을 바벨론에서 끊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으며 이 일은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하나님의 경영’ 이라 하셨다. 이 세상에 그 누가 하나님의 경영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창조자이시며 만군의 왕이시며 시작과 끝이신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사탄의 길은 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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