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여호수아강해

(여호수아3:5) “헌신”(Devotions)

이요나 2011. 5. 7. 09:52

(여호수아3:5) “헌신”(Devotions)

 

( 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l  여호수아의 시대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留宿)하니라"(3:1)

 

여호수아 1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며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가라 하시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리니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것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라.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니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가나안 입성 앞에 두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을 보호해준 라합의 집 창문에 붉은 줄이 메도록 하여, 라합과 그 식구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약조를 맺었다. 두 정탐군은 라합을 통하여 온 땅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 간담이 녹고 두려움에 떨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할 의무와 책임을 가진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앞에서의 성실함과 앞날을 헤쳐나가는 지혜이다. 여호수아는 40년동안 모세를 수종들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충실한 종의 자세를 배워왔다. 또한 하나님은 그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우시며 지도자의 지혜를 부어 주셨다(34:9).

 

바야흐로 이제 여호수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는 무엇이든지 자기 임으로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정복함에 있어 개인적인 생각을 버리고 조급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여리고 평지 길갈에서 삼일간 휴식을 취하며 제사장들과 유사 곧 스텝들에게 앞으로 있을 가나안 정벌에 필요한 믿음을 준비 시키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다.

 

l  첫번째 명령- 성도의 시선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 912m)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3:2-4)

 

모름지기 하나님의 종 모세의 후계자가 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여호수아는 안식의 땅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그의 백성들의 온전한 믿음을 준비시키는데 전념하였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들로 하여금 조상으로부터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구원의 백성들 앞에 살아 있는 역사적 증거 곧 언약궤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궤를 그의 백성들은 친견할 수 없다. 이는 거룩한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신 곳이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사람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성소의 가장 지엄한 곳에 있어 그룹천사의 호위 속에 제사장들이 섬겨야만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가보지 못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 가기 위해서는 언약궤가 앞장을 서야 하고 그 언약궤는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어야 한다.

 

지금까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행군은 여호와의 구름기둥에 의해 움직였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으며 여호와의 구름기둥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세의 종 여호수아를 통해서 전달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여야만 한다. 이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기 전 그 백성들을 권면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며 그는 백성들의 마음과 시선들이 언약궤를 집중토록 하였다.

 

백성들에게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따라가되 2천 규빗 정도 사이를 갖고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호수아는 그 이유에 대하여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가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2천 규빗은 약 912미터의 거리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어쩌면 언약궤의 높이로 인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묵시적 암시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식의 땅에 입성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시선을 집중하고 언약궤를 따라가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시선이 그들 앞에 세운 지도자에게 너무 가까이 집중되어 성경을 주목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성경이 그의 말씀이 맡은 자들에 가려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자기들이 행할 일이 무엇인지 모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과거 12년동안 한국에서 가장 크다는 교회에 출석하였다. 그 당시 나의 시선은 당회장 조목사의 설교에 집중하였었는데 그 목사가 얼마나 크게 보였는지 성경을 볼 수 없었다. 내가 갈보리채플로 인도함을 받기까지 나는 조 목사가 하는 모든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았다. 어쩌면 주께서 나를 갈보리채플로 인도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그에게 취하여 실족하였을 것이다.

 

아제 이스라엘은 전에 지나보지 못했던 이 길을 지나 새로운 영토를 얻기 위해서 들어간다.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은 이제 사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언약궤를 따라야 했는데 언약궤 안에는 물론 하나님께서 저들과 맺었던 언약 곧, "너희가 나의 율법과 계명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했던 율법이 적힌 돌판이 들어 있다. 이제 그들은 그 언약궤를 메고 가는 제사장들의 뒤를 따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행진을 시작했던 것이다.

 

l  두번째 명령- 성도의 성결

"여호수아가 또 백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들이) 백성 앞서 나아 가니라(3:5-6).

 

하나님의 백성들의 시선을 오지 여호와의 언약궤에 집중시킨 여호수아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실 일들을 목전에 둔 성도들에게 성결을 명하였다. 성결은 우선 마음과 언행과 삶의 정결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머리에는 정금으로 만든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붙여만 한다 (28:36).

 

신약에도 이와 같은 맥락의 말씀이 기록되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향하여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엄히 명하였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의 성결을 요구한 것이다.

 

계속하여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여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 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10) 하였다. 이 말씀에는 너희가 위에서 언급한 성도의 합당한 경계의 말씀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 전제된 것이라 하겠다.

 

이제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향하여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 이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11-13) 선포하였다. 참으로 놀랍고도 위대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선언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 순종이 없이는 할 수 없다.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도 말이다.

 

l  세번째 명령- 위대한 믿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3:7).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오늘이 바로 내가 너를 택하여 세우고 기름부은 지도자임을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알게 해 줄 그 날인 것이다. 내가 이제부터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하여 여호수아가 자기 종임을 그 백성들에게 입증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로 커다란 믿음이 요구되는 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홍해바다 앞에서 모세에게 네 지팡이를 바닷물 위에 들으라 하셨을 때와 같이 모세가 지팡이를 바다 위로 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라 현실 감각과 인간의 생각을 모두 내려 놓은 채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요단강 물에 발을 담궈야만 강물이 멈출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먼저 요단강 물에 발을 담그고 그 물 속에 섰을 그때에 언덕에 흘러 넘치는 요단강 물을 멈춰 서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명령을 전달하는 여호수아나 언약궤를 멘 제사장 모두에게 죽음을 불사한 큰 믿음이 필요했다. 제사장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 말씀을 믿을 수 없으면 언약궤는 강으로 들어 갈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넜던 때는 사월이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유월절 행사를 치렀는데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첫 달 십 사일이고 여기서 첫 달이란 우리 달력으로는 사월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당시의 상황을 말하여 그때는 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였고 그 시기에는 항상 강물이 언덕까지 넘쳤다고 기록하였다.  

 

사실 삼과 보리 추수는 밀 추수보다 두 달 정도 앞 서는데, 가나안 지역의 삼 농사가 이미 추수를 끝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기생 라합이 두 정탐꾼을 지붕 위에 벌여 놓은 삼대 아래에 숨겼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이 때에 요단강 물이 가장 많이 불어났는데 그 이유는 강 북쪽에 있는 헐몬산에 쌓였던 눈들이 다 녹아 요단강으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그럴 때 우리는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대하여 괴로워하고 거부하며 반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희가 나의 명령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 말에 순종하라고 하신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으신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 우리는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 앞에 나는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하고 항변할 것이 아니라 이것은 나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일이라 생각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일하심을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영광스런 일들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십 삼 절에 보면 '온 땅에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그 요단 물 안에 발을 멈추면 (그 후에)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라고 기록되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실행하자 바로 그 말씀대로 되었다.

 

이들의 믿음의 결과에 대하여 성경은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가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3:14-17) 기록되었다.

 

물이 벽처럼 한 곳에 쌓이고 백성들이 마른 땅을 건넜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도 과학적인 근거로도 설명할 수 없다. 삼백만이나 되는 거대한 행렬이 요단강 물이 변방에 쌓여 벽을 이룬 사이로 마른 땅을 밟고 건넜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설화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남길 수 없는 영광스런 장관을 영영한 징표로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제사장이 서 있던 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여 백성들이 있는 곳에 세우라 하셨으며, 또한 여호수아도 이 기이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징표하기 위해 제사장들이 서 있던 요단강에 열두 돌을 세워 두었다.(5-9) 인류 역사 속에서 그 땅에 세우진 열두 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세워둔 제사장들이 서 있던 요단강 속의 열두 돌은 아마 그대로 있을지도 모른다.

 

(여호수아4:23) 열두 돌의 표징

 

( 4: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l  영영한 기념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이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4:1-3)

 

이 명령은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역사적 사건을 보전해 둘 과학적 기구가 없었던 시대에서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설혹 영상이나 사진 기술이 있었다 하드라도 시대가 흐르면 진위 여부에 휘말릴 것이다. 그러나 삼백만이 건너온 요단강 물 속에서 각 지파에서 선발한 사람들이 손수 메고 나온 돌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이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 두 사람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4,5) 명하고 다시 그들에게 말하여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4:6-7) 하였다.

 

열두지파에서 선발된 열두 사람은 여호수아의 명을 따라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한 가운데 서 있는 제사장이 있는 곳에서 각각 큰 돌을 하나씩 어깨에 메고 나와 그 백성들이 유숙할

길갈에 세웠다. 이 일로 하여 길갈이라는 곳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고대 중동역사에 아주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들이 길갈에 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여리고와 요단강 사이에 있는 이 길갈이라는 곳은 아주 편편하고 모래가 많은 사막 지역으로서 돌이 거의 없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러한 곳에다 요단강 바닥에서 가져온 커다란 돌 열 두 개를 쌓아 기념비를 만들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아무리 영광스럽고 위대한 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과거의 일들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l  살아 있는 열두 돌

나는 때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께서 저들의 과거에 행하셨던 일들을 잊어버릴 수 있는가를 보고 놀라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가족들에게나 자신들에게 참으로 기적과 같은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을 여러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나와 나의 형제들은 지금부터 이십여년 전 내가 43살 되던 해에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었던 악한 영들의 역사에서 나를 온전케 하신 놀라운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내 형제들은 내가 변화하던 그 순간에 없었지만 그들은 변화된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를 가던지 내 아픈 과거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또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증거한다. 우리 교회 청년들은 이러한 나의 증거에 대하여 얼굴을 붉힐지 모르겠지만 이 증거는 한국의 갈보리채플 사역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미국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이 깊은 세상 바다에서 건져 낸 열두 돌 그의 열두 제자들이 증거하듯이 말이다.

 

여호수아는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물은 멈추고 끊어질 수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영원할 것을 믿었던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 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 있더라"(4:9)는 기록이다. 이제 언약궤를 어깨에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을 건너면 강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강둑이 넘치도록 흐를 것이다. 그러면 그 영광스런 기적의 역사는 물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사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영광의 증거를 바다 속에 남겨 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위대한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백성 된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늘까지라고 말한 것은 물론 여호수아기가 기록되었던 그 시점을 말한 것이지만 어쩌면 오늘 현재까지 그 돌들이 거기 있을지 아무도 확실히 모른다. 아마 요단강 물의 흐름 때문에 위치가 변동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그 돌들을 찾는 것을 시도한다면 참으로 흥미로운 모험이 될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것을 행한 것은 아마도 물이 멈추어 쌓여졌던 지점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궤를 멘 제사장들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이르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요단 가운데 섰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사만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4:10-14).

 

l  절묘한 타이밍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을 명하여 요단에거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 여전히 언덕에 넘쳤더라"(4:15-18).

 

오늘날 성경을 비난하고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자연현상의 일부로 설명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연계에서 알려진 현상 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려 들지 않고 또 모든 것들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학적 테두리 안에서 설명할 수가 없게 되면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여러분들도 아마 들어보셨을 얘기 중의 하나지만 홍해가 갈대바다를 잘못 번역한 것이라는 사람들의 얘기인데 그들에 의하면 이 갈대바다는 두 자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얕은 지역으로써 강한 바람이 불면 그 물이 옆으로 밀려나면서 물을 건너가기 비교적 쉬운 지역들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에 보면 밤새도록 강한 바람이 불었다고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 강한 바람이 두 자 정도 밖에 안되는 이 갈대 지역을 건너기 쉬운 지역으로 밀어 내어 건넌 것이므로 별 대단한 것이 못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애굽의 말을 탄 군대가 두 자 밖에 안되는 물 속에 빠져 전멸했다는 기록은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그들의 말들이 정말 흥미롭다.

 

또 요단강이 멈추었다는 기록을 반박하면서 요단강의 윗 부분 저 얍복강이 요단강으로 합류되는 지역에 가면 강물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비교적 덜 단단한 강가의 땅이 특별히 아랫 부분만 깊숙히 침식되어 있는 곳들이 있는데 그 당시 강둑을 넘치는 홍수로 하여 갑자기 급류한 물이 이 지역을 강타하여 윗 부분이 붕괴되면서 자연적인 댐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 댐이 상류 부분에서 요단강의 흐름을 막아 제사장들을 앞장서서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기발난 상상인데 설사 이 이론을 사실로 인정한다 할지라도 여호수아가 어떻게 약 100 ㎞이상이나 떨어진 하류에서 제사장들이 요단강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에 조금 전에 강 둑이 무너져 댐을 형성할 있으며 또한 그 흙 댐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지막 한 사람이 요단강을 건너는 그 순간까지 요단강의 흐름을 막아 300 만 백성들이 다 건넌 직후에 다시 요단강을 흐르게 할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 절묘한 타이밍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현대과학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요단강을 건넜으며, 이 사건으로 하여 그날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우러러 보았고 또 그의 생존한 날 동안에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다. 이제 여호수아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후대에서 그대로 전해야 할 사명을 백성들을 전한다. 이는 사시는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그의 택한 백성이 함께 영원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l  여호와의 엄위

"정월 십 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치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4:19-24).

 

! 이제 우리는 두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 들어갔을 때에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요단 저 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전멸시킨 것을 우리가 들었으므로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았노라'했던 것을 기억해 보자. 그리고 이제 이 요단강 물이 멈추는 광경을 여리고 성 사람들이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에 그 충격이 어떠했겠는가를 한 번 상상해 보라.

 

그 당시 여리고 사람들 가운데는 요즈음처럼 회의론자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여리고 성곽 위에서 수천년 동안 유유히 흐르던 요단강 물이 갑자기 멈춰 한 곳에 쌓이고 삼백만의 인구가 그 앞을 유유히 걸어서 요단강을 건너가는 광경을 보았을 때 그들의 간담이 어떠했을까?  어쩌면 그들은 이 시점에서 벌써 자기네들의 운명을 알았을 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망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라고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성경은 이 일들을 상세히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