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6:10) 완전한 순종
(수 6: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l 육신의 예표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6:1).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바야흐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하나씩 차지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예표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 특별히 요단을 건넜던 일은 우리 안의 옛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죽은 자로 여기는 일을 예표하고 있다.
이는 곧 바울의 가르침과 같이 로마서 7 장에서 살지 않고 로마서 8 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로마서 7장은 육신의 일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에 해당된다. 바로 내가 가졌던 죄성의 참모습을 깨닫고 그것을 어떻게 할 줄 몰라 안타까워 하는 딜레마에 이르는 과정을 뜻한다.
"내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그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어 짐이 바로 바울이 성령을 좇아 행하고 사는 삶을 깨달은 로마서 8 장에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리하여 여호수아는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주신 그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옛사람을 죽은 것으로 여기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새로운 삶에의 첫 발을 내어 디뎠다. 그 중 가장 먼저 차지해야 할 소유물은 요단강 서편 첫 성이었던 여리고였다.
아직 포위 당한 것도 아닌데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여 여리고 성은 그 성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6:2). 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내가 이미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라'하지 않았느냐 하신 말씀의 재해석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다 우리에게 소유로 주신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그 곳에 가서 그 소유로 주신 것들을 차지해야만 비로소 우리 것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해 왔던 죄와 육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싸워 이기고 정복하여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 더 이상 육신에 메여 종노릇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내게 주셨으니 이제 믿음을 가지고 들어가 그것들을 차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그것을 소유로 주셨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우리의 소유들을 차지해야만 그것들이 정말로 우리 것이 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그 성들을 차지해야만 했다.
l 이상한 명령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들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들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6:3-5
이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다. 어떻게 보면 땅 집고 헤엄치기와 같고 누어서 떡먹기이다. 처음 엿새 동안은 하루에 한번씩 군사들이 성 주위를 돌고,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하고 제 칠일 되는 날에는 동일한 방법으로 일곱바퀴 돌되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울려 불면 백성들이 큰 소리로 무엇인가를 외쳐 부르면 그 성벽이 무너지질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불고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쳐 불렀을 때 여리고 성벽이 허물어져 내린 사건을 자연과학적 논리로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데, 여리고 성은 요단강 가에 있으므로 지반이 약하고 장마철이기 때문에 지반 전체에 물이 차여 처음 엿새 동안 300만이 되는 백성들이 성 주변을 돌아 성벽의 지반이 약해지도록 주변의 땅을 밟아 진동시킨 후 일곱째 날에 양각나팔을 길게 불 때 300만의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칠 때 성벽의 울림 현상의 진동을 받아 허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척 스미스 목사는 여리고 성이 있던 유적지에 가서 그 성벽 일부분의 잔해를 보았는데 그 성이 무너지기 위해서는 대포라도 쏘아야 할 정도의 두터운 성벽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엔디코 카루소라는 테너 가수는 탁자 위에 유리잔을 놓고 17 보 뒤로 물러서서 그 우렁찬 목소리로 한 음정을 길게 뽑아 냄으로써 유리잔을 깨뜨릴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리잔이었지 여리고의 성벽은 아니다.
그 누구라도 여리고 성벽의 잔해를 본다면 이는 그 어떤 자연과학적인 설명이 있을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 여리고 성벽들을 무너져 내리게 하셨다는 기록을 의심 없이 믿게 될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신 말씀이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어떤 회의나 의심을 갖지 말라 하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명령은 실제로 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삼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맨 제사장의 뒤를 따라 아무 소리는 커녕 마음에 그 어떤 불평을 갖지도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성벽 위에서는 숨을 죽이며 이 기이한 행렬을 보고 있을 것이고 요단강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가는 성은 긴 성일 것인데 그것도 하루만이 아니고 엿새 동안 한바퀴씩 돌고 돌아와 숙소에서 지내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바퀴를 돌다가 그때 소리를 외치라니 참으로 쉽지 않은 명령이다. 이는 주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느냐를 보시는 것이다. 또한 여호수아가 얼마나 스텝교육과 백성들 교육을 잘 했느냐를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먼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들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행하라” 명하고 또 백성에게 나아가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해할지니라” 명하였다.
이에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였으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뒤를 따랐으며 엿새날까지는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번 씩 돌고 진에 돌아와서 자고 여전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들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였다(6:4-14).
이들이 그렇게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요단강에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신 주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목격하였고 그 증거의 돌이 그들의 진중에 그대로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들은 광야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 왔으므로 과거 애굽에서 나온 자신들의 부모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여리고 성벽 위에 둘러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구경하고 있던 여리고 성 주민들의 마음 속에 참 이상하다는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방패들고 칼 찬 군사들이 앞장서고 그 뒤를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불면서 따르는데 그 뒤로는 이상하게 생긴 궤를 멘 이상한 복장의 사람들이 뒤를 따르고 그 뒤로 또 무장한 군사들이 따르고 있는데 삼백만이나 되는 거대한 무리들이 엿새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돌기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측도 못하고 냉가슴만 앓았을 것이다.
회의론 자들이 무슨 말을 하던지 성경은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내 길을 너희가 측량할 수 없다'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길을 측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신의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항상 인간적인 자기 욕심에 빠지고 만다.
l 여리고 입성과 여호수아의 경고
"제 칠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번 도니 성을 일곱번 돌기는 그날 뿐이었더라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6:15-16).
이는 믿음의 외침이다. 성벽은 아직도 굳건히 서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믿는 믿음으로 외쳤다. 이 믿음의 외침은 승리의 외침이 되었고 여리고 성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할 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 묵묵히 행할 때 하나님의 이적은 지금도 일어 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의 순간에도 그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승리의 순간에 취하여 경거망동하고 그 마지막에 행할 일들을 소홀히 하므로 실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6:17-18).
이제 정복의 시작과 함께 정복한 땅에서 빼앗는 전리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가나안 첫 성 여리고에서의 승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일이셨으므로 그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마땅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모든 전리품들을 여호와의 집 곳간으로 가져오라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취할 수 없음을 명하셨다.
그후 다른 성읍들을 함락시켰을 때에는 전리품을 일부 백성들이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셨지만 여리고 성에서 만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물에 대한 욕구를 제어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한 순종을 하는가를 시험하신 것이다. 여기서 18절의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라고 한 부분을 '이스라엘 진으로 저주가 되어' 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참조_KJV)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최종적으로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속한 전리품 품목을 열거하며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6:19) 경고했다.
l 여리고 성의 함락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6:20-21).
믿음이 장인 히브리서 11 장은 믿음의 정의와 역대 선진들이 믿음으로 이루어 낸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11장30 절에 언급된 여리고 성의 함락이다. 히브리서에 ‘믿음으로 7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되어 있는 이 부분은 여리고 성벽이 무너진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던 기적의 선물이었다고 전해주고 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자 그 땅을 사전에 정탐한 두 사람에게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 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내라 명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세한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탐한 청년들이 들어가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그 외에 것은 모두 불로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
흥미롭게도 성경기자는 라합의 집의 구원을 말하여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6:25)고 상세히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의 모험은 그 아비의 가족들이 구원하고 명실공히 히브리서 11 장 믿음의 장에까지 등재되었으며 예수님의 족보에 든 여인 중의 하나로서 마태복음 1장에도 등재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오직 믿음으로 성취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 수 있다.
l 여리고성의 저주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6:26).
이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한 일종의 흥미로운 예언이다. 하나님께서 허물어뜨리신 여리고 성을 다시 짓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말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명한 예언은 열왕기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되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둘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열상16:34)
이와 같이 여호수아의 예언이 약 500 년 후에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기록된 벧엘 사람 히엘이 건축한 여리고 성은 예언대로 파괴 되었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얼마 전에 또 여리고 성이 다시 새로 지어 졌지만 주후 68년경 로마에 의해 최종적으로 파괴 되었다.
오늘날 그 곳에는 텔(Tel)이라 하는 망대가 세워져서 그 망대 위에 올라가면 고대의 여리고 유적지를 굽어 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텔(Tel) 망대가 있는 곳은 비옥한 땅으로 지금은 전형적인 아랍 도시인 여리고 시가지 생겨 오렌지, 바나나와 같은 과일들을 파는 노점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만약 성지순례를 가실 때에는 이곳을 방문하여 여호수아의 예언을 기억하면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오늘 여호수아 6장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실현된 새 삶의 터전은 모든 욕심과 욕망을 저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을 한 후에 그 축복의 재물을 탐하여 낭패를 당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리고 성의 바쳐진 물건의 저주를 기억하며 자신을 스스로 성결케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아멘 아멘(JO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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