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합법적인 프로포즈

이요나 2011. 8. 6. 21:41

거룩한 삶을 위한 이요나 목사의 세미한음성
이요나 목사에게 이멜을 calvary@hosanna.net
No.114. 2011. 08. 05 (금)


"합법적인 프로포즈 "

"(룻 3: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

이방여인이며 과부인 룻이 그 지역 유지인 노총각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몰래 숨어 들어가 그의 발치에 누워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은 죽음을 무릎 쓴 용기 있는 행동이라기 보다는 돌 맞을 무례한 행동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자신의 남편의 기업을 잇고자 한 나오미의 작전으로 율법이 하락한 합법적인 프로포즈이다. 따라서 룻이 행한 이 일은 근본적으로 당신의 죽은 형제 아비멜렉에 대한 형제로써의 의무를 행하여 그의 가문의 대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라는 율법적 요구였다. 다시 말하여 내가 이방인 과부일지라도 나의 청혼은 합법적인 프로포즈라고 주장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방여인 과부 룻의 프로포즈를 받은 보아스의 태도다. 그는 룻에게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내 딸아 두려워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하였으니 말이다.

여기서 내 딸이란 표현은 프로포즈를 한 여인에게는 상당히 거북스런 표현일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이방여인 룻에게는 정말 커다란 위로가 아닐 수 없다. 그 시대에 이방여인이며 또한 과부인 룻이 유대인들 속에서 사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와 시어머니의 삶을 보살펴 준 보아스가 자치하면 멸시와 죽임을 당할지도 모를 룻의 프로포즈를 내어 치지 않고 도리혀 ‘내 딸’이라는 호칭을 한 것은 그를 이방인이 아닌 혈족과 같이 여기며, 또한 그녀의 처지가 과부일지라도 자기의 딸이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 온 것 같이 긍휼이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언행으로 보아 어쩌면 보아스는 그동안 눈여겨 지켜 본 이방여인 룻의 매력에 푹 빠졌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선조 살몬 할아버지가 이방의 기생 라합을 통해 이어진 핏줄로서 이방 여인 룻의 매력을 흠뻑 취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판에 혈통을 초월한 룻의 사랑의 고백이 있었으니 보아스의 사모의 연정은 무지개처럼 피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 보아스로서는 아무리 핑크 빛 연정에 취했을지라도 율법이 정한 높은 벽을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엘 곧 기업 무르기 법칙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룻에게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지니라” 말하여 그녀의 죽음을 무릎 쓴 프로포즈를 일시 수락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율법을 지키려는 보아스의 믿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그가 마음만 먹어다면 첩으로도 드릴 수 있고 기업무름의 원칙 같은 것은 무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여러가지 편법이 나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율법의 원칙 속에서 그를 합법적인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룻과 같은 심정으로 갈보리채플의 기업을 무를 자를 찾고 있다. 그 이유는 나는 갈보리채플 타작마당에 들어 온 이방여인 룻과 같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그들 보기에 혈통이 다르고 부정한 여인 같을 지라도 내가 갈보리채플 타작마당에 들어 온 것은 나의 계획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갈보리채플의 기업을 잇고자 한 것은 나의 욕심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역경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나를 부르신 이가 이 일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JO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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