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은 빈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계 형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와의 형제자매와의 관계 그리고 성장을 따라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복잡한 관계가 형성된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관계 대상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행복한 삶을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관계를 거듭하면서 불행한 생활을 살고 있다. 모두가 자기가 맺어가는 관계임에도 좋은 관계 형성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형성은 날카로운 톱니바퀴의 결합과도 같다고 하겠다. 조금만 빗나가도 양쪽 톱니가 굉음을 내며 불통을 튀긴다. 이렇게 어긋난 톱니바퀴는 날들이 부러지고 망가져서 다시는 맞출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언제고 그 사람과 다시 만나려면 새로운 톱니바퀴를 준비하지 않으면 않된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사상과 이념과 철학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이 조화롭게 일치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부부사이라도 작은 일로 싸우고 토라지고 깨어져 영영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
목회에서 관계 형성은 매우 중요한 목회덕목 중에 하나이다. 목회는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목회의 성공과 실패에 관계형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원리로만 볼 때 나는 진즉부터 실패한 목회자임에 틀림없다. 18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빵점이기 때문이다.
내 지체의 열손가락과 발가락처럼 손바닥처럼 늘 볼 수 있는 적은 무리임에도 나는 그들의 필요를 만족 시키지 못하고 있다. 수만명을 만족시키는 목회자들을 볼 때 그들은 마치 마술사와도 같다. 기적의 손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성경에서 목회는 목자와 양의 관계를 비유하고 있다. 짐승은 사람과 도저히 같은 비전과 목적을 가질 수 없는 관계인데 성경은 하나님은 목자 성도는 양에다 비유하고 있다. 이는 분명 목자와 양의 관계 설정을 뜻한다.
예수께서도 자기에게 나아오는 수천명의 사람들을 보시며 ‘목자없는 양같다“ 말씀하시며 무리를 불쌍히 여기어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막6:34) 이 말씀으로 보아 여기서 양들의 필요는 먹을 것을 말씀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원했던 것은 말씀보다는 떡이었던 것 같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요6:26)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목자와 양이 서로 상반된 입장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자는 양들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양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삶의 축복에 대하여 열심을 내고 있다. 나 또한 나와 관계를 갖고 있는 성도들의 삶을 축복하고 싶다. 직업을 찾는 자에게는 일터를, 집이 필요한 자에게는 집을,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돈을, 결혼을 하고 싶은 자에게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고 싶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능력으로 볼 때 참으로 못난 목사이다.
그러나 부활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아가페) 한다면 내 양을 먹이라’ 하셨고 다시 내 양을 치라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양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는 죄인된 우리를 자녀의 관계로 형성하기 위한 화목제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의 피를 나눈 형제들과의 사랑의 관계이다.(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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