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2:17)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도성이며 민족의 주권이며 주체적 상징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천년왕국의 찬란한 꿈은 예루살렘 성전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 도성 예루살렘은 바벨론 느브갓넷살 왕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성전은 난공불락의 천혜의 요새에 세워졌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에게 그 일을 허락하셨고 느브갓네살 왕은 성벽을 포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점령한 후 성전을 파괴하고 천년왕국의 부귀와 영화를 빼앗아 갔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이야기이다.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에스라가 성전재건과 함께 이스라엘의 영적회복에 헌신한 율법학사라 할 때, 느헤미야는 종교개혁을 통한 정치, 경제, 사회개혁을 주도한 민족 지도자이다.
흥미롭게도 성전을 건축한 에스라가 제사장 출신인 것에 반해, 성벽재건에 공헌한 느헤미야는 바사왕국의 술관원이다. 술관원은 왕과 왕후와 대신들 가까이서 왕궁의 연회를 주관하는 의전실장으로서 내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직책이다.
율법을 중시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느헤미야는 엄연한 매국노로서 후손들까지도 매국노 자손이라 지탄을 받을 인물임에도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적개혁의 선봉장으로 쓰셨다. 이는 그가 악한 영적세력 가운데서도 하늘의 하나님께 금식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을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성읍은 돌로 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모든 사람들은 성문을 통과하여야만 성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따라서 성벽은 백성의 안전한 삶의 표상으로 요소마다 높은 망대를 세워 파수꾼으로 침략자의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성읍의 장로들은 성문에 모여, 성안의 제반 업무를 의논하고 결정하였으며, 백성들의 삶의 문제들을 재판을 하였다. 그러므로 성벽의 견고함은 백성들의 자부심이었고, 성벽의 파괴는 백성들의 커다란 수치였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느2:17) 호소한 것이다.
나는 느헤미야를 읽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기독교 국가 미국에서 동성애자를 찬성하는 후보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는 이단자가 맞서 다투고 있고 일천만명의 성도와 선교대국의 명성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교회에서는 교회세습과 음행과 탐욕의 사건으로 얼룩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웅대한 성전을 짓고 수천의 성도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한들, 성도의 삶을 훼방하는 악한 세력들을 막아 줄 성벽이 무너졌다면 교회 안으로 넘처 흘러 들어오는 세상의 타락의 물결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느헤미야는 에스라가 율법을 가르쳐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동안, 성전과 성도들의 평안한 삶을 위한 성벽재건을 위해 혼심을 쏟았다. 눈물의 기도로 왕의 조서를 받아내고, 홀로 성벽을 답사하고 효과적인 공사를 위해 각 지파별로 작업할당을 하였으며, 훼방하는 자들을 오직 기도로써 막아냈다.
또한 그는 백성들의 온전한 회개를 통해서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의 갱신을 인쳐언약에 대한 책임을 삶 속에서 실행케 하였으며, 지역과 인구를 재조정하여 백성의 실제생활에서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제 우리 교회가 무엇을 중요시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어야 한다. 성전을 다시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벽이 무너지면 우리의 성전은 파괴될 수 밖에 없다. 성도의 삶의 벽을 굳건히 쌓는 것이 성도의 온전한 삶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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