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음성

[스크랩] 아직 내가 살아 있는 이유 (Self-InrInterview)

이요나 2013. 9. 27. 10:33

      아직 내가 살아 있는 이유

 

아직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는 세상에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다. 오직 나를 모태에서 택하시고 땅끝에서 부르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이야기이다. 아직 이 땅에는 나와 같이 하늘을 바라보며 감격의 영광을 노래할 나의 아들들이 살아 있다. 그들은 지금 지옥 훈련 중이다. 이들에게 나는 아직 할 말이 있다

 

 

목차

플로로그

천년사랑

1부; 43년, 7월4일생 

2부: 심리학 & 정신의학

3부: 성정체성 신드롬

4부: 회복자 증언

부록: 동성애 상담 가이드라인

 

독신인 목사에게 추석은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차례 지낼 필요가 강제로 폐쇠된 종교적 지위에서 목사에게 추석은 더이상 명절도 아니다. 내 나이가 되면 찾아 갈 곳도 없고 모두가 추석을 세느라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전화마저도 끊이고 핸드폰은 몇일 동안 낮잠을 자고 있다.

 

 

동생집에서 제수씨가 아침식사를 차려 놓고 재촉을 한다. 그나마 3정거장 정도의 거리로 이사를 갔으니 무거운 마음과 몸을 이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함께 늙어가는 동생부부와 함께한 식탁에 무슨 낙이 있을까보냐마는 행여 집나간 조카 아들놈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은 내가 훨씬 늙었다는 증거이다.

 

지난 설에 보고 못보았으니 자못 보고 싶어진다. 이번에 만나면 종아도 쳐서라도 굴복을 시켜 말을 듣지 않으면 족쇄라도 채워 묶어두어야겠다는 마음이지만 조카 아들네미를 보면 한순간 기쁨에 얽켜 가슴아픈 소리를 입밖에 내지 못한다. 이것이 애비의 마음인가 보다.

 

  (그러나 조카 아들넘은 얼굴마져도 보여주지 않았다)

 

4살 터부리 동생 내외와 마주 앉아 갈비찜이랑 전이랑 꾸역꾸역 입에 넣어보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이어갈지 생각이 떠 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육십년을 혼자산 남자의 굳어버린 입인가 보다. 그래서 누군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손사래를 치고 도망을 갈 때까지 재잘거린다. 말이건 막걸리던 수일 동안 쌓였던 말보로 텃트릴 심산이다.

 

사무실로 돌아와 무엇을 할까 찾아보니,  하다못해 신문사도 연휴라서 소일거리조차 사라졌다. 인터넷을 열고 이메일을 열어보니 스팸뿐이다. 심심한 차에 냉장고를 열어보니 자기대면을 공부한 제자 목사가 갖다  넣은 오색 송편이 방긋이 웃는다. (이래서 목사에게는 제자밖에는 없는가 보다)

 

송편 한두개를 입에 오물거리며, 무얼할까 서성거렸지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옛날 일본에서는 여행을 따나 호텔방에 묶으면서 성경도 읽고 호텔 로비에 앉아 물끄럼이 사람들의 왕래를  바라보는 것으로 낙을 삼은 때도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두해는 워커힐, 신라호텔에 묶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설음이 쏟아져 내리기 때문이다.

 

유독 추석이 되면 가을을 타는 버릇이 있다. 낙옆이 떨어지는 것도 싫고 가을 바람조차 싫다. 내가 27살 되던 해 내 어미가 은행잎이 흩어지는 가로수 길로 마지막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추석을 지내고 한 주간 후 누나집에 다녀 온다고 하신후 영영 돌아 오지 않으셨다. 그길로 또 다른 아들을 낳기 위해 영명의 공간 속으로 길을 떠났다.

 

   (그후 15년, 1991년 7월 4일  어머니의 혼백은 어미가 원하던 아들을 만났다.)

 

추석이 되면 온통 내 머리속은 어머니 생각으로 가득찬다. 무엇인가 놓친 기억이 있을까 어린시절을 뒤집으며 어미의 기억을 찾아내래고 애를 써보지만 어미의 흔적은 손애 잡히는 것이 없다. 어미의 속주머니에 비니루에 싼 못난 이 아들의 꼬깃한 사진이 내 어머니의 유일한 유물이다.

 

내가 어미를 다시 만난 날을 기억하며 나는 컴프터를 켰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자서전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자랑거리가 없는 나의 자서전은 추잡하고 가슴아픈 이야기뿐일 것이라 선듯 나서지 못하였다.

 

그래도 이 추석에는 허전한  공백을 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나를 인터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다음 주 간에는 두번의 초청강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필경 나의 설교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항상 나의 가슴 아픈 속내를 털어내기를 원한다.

 

컴프터를 열고 [Self-InrInterview]  라는 타이틀을 처 놓고 내가 기자가 되고 내가 패널이 된 심정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또 이참에 동성애자들이 궁굼히 여기는 동성애의 심리학적 사고에 대하여도  언급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오랜 동안 내가 왜 동성애자가 되었는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답을 찾지 못했다. 분명 초등학고 시절부터 동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을 길이 없다. 성경도 그부분에 대하여는 답변이 없다. 고작 아담이 죄를 지었고 너는 아담의 후손이다로 결론을 짓는다.

 

그동안 수많은 동성자들을 상담할 때 마다 그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상담자라는 위치가 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성경을 떠나 그 무엇으로 그들의 속을 후련케 할 수 있으랴. 성경은 결코 인생의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직 장래의 소망과 현실의 선택을 요구한다. 

 

성경에 기록된 인생의 과거는 모두 남의 이야기들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동성애는 타락한 사람들의 더러운 행위라는 사실만 발견한다.

 

그래도 나는 동성애의 원인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답변해 줄 책임이 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동성애 전문 상담자라는 호칭을 갖고 있지 않은가? 매일 동성애는 죄일 뿐이라는 말로 종지목을 댈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성경적 상담자로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동성애를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는 그들과 싸우기 위함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을 믿는 그들에게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이 얼마나 모순된 이론을 갖고 있는가 알려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 성향의 자녀를 둔 부모들과 또 오늘날 악한 세월 속에서 자녀를 낳아 키워야 하는 어린 부모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철저한 성경적 자녀의 교육이 얼마나 소중하며, 무지몽매한 기복신앙의 모순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를 깨우치기 위해서이다.

 

분명한 것은 동성애는 양육과정에서 생기는 정신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심리학자나 정신의학 학자들의 자녀 임상에서 밝혀낸 일들에 대하여 귀를 기울여 볼 필요는 있다. 물론 그들의 이론으로 동성애자를 회복시킬수는 없다. 그들이 능히 할 수 있었다면 정신질병치료 메뉴얼에서 동성애 코드를 내려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들의 주장도 들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무엇을 그들에게서 배우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자녀교육에 무관심하며 제멋대로인가를, 그 결과 자녀들의 연약한 심령이 어떻게 상하고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답습하기 위함이다.

 

나는 추석 연휴 3일간 "셀프 인터뷰"라는 타이틀 속에서 나를 인터뷰하고, 성정체성 신드롬을 말하였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모순을 말하고 성동일성장애, 성정체성장애, 동성애,  양성애 더 나아가 무성애를 말하는 세상의 논리를 말하고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 몰은 회복자의 증언을 말하였다.

 

입술이 부르트며 식사도 거른체 100여 페이지를 써내려 가면서 2000년도에 창조이야기를 쓰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초등학고 1학년인 금삭이는 벌써 고등학생이란다. 그래도 아직 글을 쓸 수 있는 여력이 내게 있어 감사한다. 추석에 쓴 셀프 인터뷰는 200부 한정판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아직 아직까지 글을 쓸 수 있는 여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2013/0920 이요나)

출처 : 성교육상담센터 홀리라이프
글쓴이 : 이요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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