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눈물 (091122)
(눅 19:41,42)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그동안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지 못하게 하셨다. 귀신들린 자들에게도 엄히 꾸짖어 말씀하셨고, 하물며 자신의 동생들에게까지 나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하셨다. 그런데 오늘 누가복음 19장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우리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낮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내셨다. 왕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셨기 때문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당신이 타실 나귀를 위해 예수님은 두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며 사람이 아직 타 보지 않은 나귀가 매여 있으니 풀어 가져오라 하시며 사람이 그것을 왜 푸느냐 물으면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하셨다. 제자들이 주의 말씀대로 마을에 들어서니 어린 나귀가 매여 있었고 주인이 남의 나귀를 왜 푸느냐고 물었다. 이에 주께서 이르신 대로 바로 성취된 것이다. 이것이 곧 예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이미 성경에 예언된 일로서, 다시 말하여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예수께서 성취하신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여“시온의 딸들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 증거하였다.
흥미롭게도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온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와“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외쳤다. 이 또한 군중들 스스로 한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이미 다윗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찬송한 노래이며 또한 예수께서 왕으로 입성하신 이 날은 수천 년 전에 이미 예언된 말씀이기도 하다.
바벨론에 포로된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던 중 이스라엘의 칠십년에 대한 말씀을 깨닫게 되었는데 기록하여“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단 9:25)라고 전하였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날을 예언한 것이다. 여기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이 떨어질 때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로부터 느헤미야에게 그 칙령을 내린 때는 아닥사스다 왕 20년 니산월이므로 곧 기원전 445년 3월14일이다. 그때로부터 메시야가 오실 날은 69이레로서 483년이 되며 바벨론력으로 계산하면 173,880일이 되는데 그 날이 바로 기원 후 32년 4월6일로서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날이다.
그런대도 바리새인들은 왕의 입성을 영접하는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하였다. 그당시 유대교 중심세력으로 예루살렘을 관리하고 예배의 구심체가 된 종교지도자들은 어찌 이를 몰랐을까? 그들이 소망하던 평화의 날이 그들 눈에 숨기웠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만일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 당신은 어떠한가? 이미 성경이 교회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증거하였거늘 그 말씀들이 당신의 눈에 숨긴바 된 것은 웬일이냐? 그것은 네가 예수의 오심을 소망하지 않기 때문이며 세상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너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너는 왕의 눈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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