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49)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눅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 말씀하셨다. 사실 사도행전의 누가복음의 후속 편으로 누가가 쓴 사도들의 교회 개척사이다. 왜 주님은 거듭하여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까? 이는 그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권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계속하여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말씀하셨다. 사실 그들은 3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며 진리를 배우고 주의 능력을 체험하고 보내심을 받아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권세가 나타났었으나 실제 생활에서는 항상 실패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주님의 죽으심을 본 그들은 의기소침하여 상실감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 곧 성령세례이다. 그들의 싸움은 영적전쟁이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2) 증거하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오늘날 부름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말씀인가에 있다. 물론 주의 제자들은 주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성령의 강림하심을 입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지금도 살아서 우리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음으로 부름을 받은 제자들도 그의 말씀과 같이 능력의 입힘을 받아야 한다. 그 능력이 없이는 우리는 주를 부인하고 또 주의 부활하심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과 같은 힘없는 믿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위로부터 능력의 입히움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달려야 할 것이다.
나는 갈보리채플을 떠나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사실 그동안 나는 정말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내 힘으로서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영적전쟁이었다. 물질이며 육체적이며 마음의 유혹으로부터 계속되는 영적전쟁들.. 더 힘들었던 것은 함께 한국 갈보리채플 사역에 부름받은 형제 목사들의 시기와 질투로 한때 나는 갈보리채플 목사권을 정지 당하기까지 하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나의 작은 목회에서 나타난 것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버림을 받았듯이 나는 6년 세월을 나의 예루살렘 미국 갈보리채플과의 단절된 목회를 했어야했다. 그런 상실감 속에서 나의 직분을 지키며 묵묵히 서울 갈보리채플을 지켜 온 것은 갈보리채플은 나의 예루살렘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나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를 견디지 못하여 자기 갈 곳으로 갔다. 그들은 나와 함께 할 사명도 없고 우리와 함께 기업을 나눌 부르심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의 약속을 믿고 나와 함께 성경의 말씀을 살피며 그 뜨거운 열정 속에서 주의 능력이 입히울 날을 기다리는 제자들은 오늘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다. 아멘아멘!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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